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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3, 4일 정도 앞두고 민심이 굉장히 싸늘했다. 이전에는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명함을 안 받았는데, 명함을 받고는 돌아서서 비웃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되고 있다. 따져보면 (부산 18석 중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는) 17석 중에서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몇 개 안 되는 것 같다."

 

지난 해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된 부산의 A시의원의 경험담이다.

 

"한나라당에 대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던 상황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위협적인 상황이다."

 

2008년 총선 때 무소속 당선 뒤 입당했고, 내년 총선에서도 재선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부산시당 대변인 김세연 의원(금정구, 초선)의 진단이다.

 

"한나라당 당원은 물론이고 선거운동원들도 자기 당 후보 안 찍고, 공무원들도 허남식 시장 안 찍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산의 한 신문사 기자의 전언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계속돼온 부산에 대한 한나라당(신한국당)의 독점적 지배구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비슷한 견해들이 나온다. 김세연 의원은 "지난 20년간 한나라당의 독점적 지배가 지역정치 발전을 촉진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이제 부산 정치판에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대구경북-부산경남의 '우리가 남이가' 동맹 깨지나

 

A시의원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초잡다'는 부산 사투리를 꺼냈다. "경상도 사람들이 '초잡게'(추접스럽게 또는 치사하게)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 정부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문제 등에 대해 말을 뒤집었고, 사소한 일로 사람들을 내쫓았다는 불만이다.

 

그는 특히 "이 정부의 중앙집중정책은 너무 심했다"면서 "비용편익분석 결과 동남권 신공항은 안 된다는 건데, 국민의 60%가 수도권에 사는 판에 비용편익분석을 잣대로 하면 국책사업을 할 수 있는 지역은 한 곳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의 민심 변화에는 약 15년 전 381만이던 인구가 40만 명이나 줄어들고 청년층 실업률이 8.0%(2010년 통계청 기준)로 전국에서 두 번째인, '늙어가는' 경제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 '제2의 도시' 부산이 인천에 밀리고 있다는 우려는 부산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한나라당을 공격하는 민주당의 제1구호도 "한나라당은 20년 집권 동안 부산을 먹여 살릴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인호 민주당 시당위원장은 "지금 부산의 민심 변화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뿐만이 아니라 지역 엘리트와 정치구조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때는 탄핵사건으로 급격히 상승한 반한나라당 정서가 '노인폄하' 발언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식었던 데 비해 지금은 서서히 올라가면서 구조화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부산의 변화는 '3당 합당'으로 고착된, 영남(대구경북+부산경남)의 '우리가 남이가' 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내년 총선부터 전면에 나설 박근혜 전 대표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세연 의원은 "요즘 시대에 누가 나온다고 일방적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이제까지 당 지도부가 국민에 대한 설득력과 비전 제시가 약했다고 일관된 신뢰와 리더십을 보여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A시의원은 "우리 당은 총선에서 '호남은 어차피 안 되고, 수도권도 위험하니 낙동강 전선을 지켜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해서 설득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박 전 대표가 이번 당대표 선거 때 유승민 의원이 보여준 만큼의 정책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달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무상수학여행까지 내놓는 판에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아주 냉소적인 전망도 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본인 지역구인 달성군수는 왜 졌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전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가 대통령이 되면 동남권 신공항은 가덕도가 아니라 밀양으로 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본인 지역구 달성군수는 왜 졌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민주당 등 야당은 구슬을 꿸 수 있을까.

 

한나라당 쪽에서는 "민주당에는 인적 풀 자체가 약하다"며 "어쨌든 우리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비해 저쪽은 희망적인 분위기가 퍼지면서 위기감이 약한 것 같다"고 말한다. 구심점이 없어 '봉숭아 학당'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대성 <부산일보> 정치부장은 "조경태 의원, 최인호 시당위원장, 김정길 전 장관, 김영춘 전 의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 의원과 최 위원장은 시당위원장 선거 때 격렬하게 맞붙었고 김 전 장관은 김 전 의원이 부산경남 몫으로 최고위원을 맡은 것을 비판해 왔다.

 

최인호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만 선거가 다가오면 유기적으로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또 "우리는 아직 절반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인재풀이 없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조경태 의원은 지역구 관리를 워낙 잘해왔기 때문에 3선이 유력하고 김정길 전 장관, 김영춘 전 의원 그리고 저를 비롯해 그동안 부산을 지켜온 당내 인사들 면면을 보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분위기가 좋아졌다지만 지역장벽은 여전하다. 부산진갑 출마를 선언하고 지역활동을 시작한 김영춘 전 의원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주는 게 부산에도, 한나라당에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도 "무소속으로 나오면 찍겠다는 분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조경태 "2, 3석 건지면 성공"... 10월 말 동구청장 선거가 민심 풍향계

 

부산의 유일한 재선의원인 조경태 의원은 "2004년 총선 당시 부산의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35%에 달했는데, 지금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며 "내년 총선 때 2, 3석 건지면 잘하는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모든 전망의 전제는 야권연대다. 최 위원장은 "전국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야권연대 분위기가 성숙돼 있다"면서 "지난해 지방선거 때 야권연대의 결과로 김정길 전 장관의 선전이 가능했고, 구의원도 27%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부산은 야당세가 약하고 특히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들은 더욱 약하기 때문에, 연대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공유돼 있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현재 주인인 영도가 내년 총선 때 야권연대 성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민주당에는 김비오 현 위원장이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12, 13대 때 당선됐던 김정길 전 장관이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민주노동당의 민병렬 시당위원장이 이사해 출마 준비를 시작했으며 진보신당의 김영희 전 부산시의원도 나설 계획이다. 한진중공업이 있는 지역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진보정당들이 더욱 적극적이다. 지역정가에서는 부산 18석 중 4석 정도가 비민주당 몫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직접 출마 가능성은 낮지만 민주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선 고공전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부산경남서 총·대선 승리 가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의 민심 풍향이 직접 드러나는 계기가 오는 10월 말 예정인 부산 동구청장 보궐선거다. 총선 6개월 전이라 사기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총력전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여론조사를 선거에 본격 도입해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 승리에 기여했던 김현철 여의도연구소장은 "다음 대선은 수도권에서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부산경남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적'인 김영춘 전 의원도 "부산 경남이 사실상 내년 총선·대선의 결전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내 생각도 같다"며 "수도권에서 야당이 이길 수 있지만 영남에서 일정 의석수를 뺏지 못하면 다수당이 될 수 없고, 대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국 부산경남에서 30%(29.9%, 경남 27.1%) 가까이 득표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노무현의 길'이 답이라는 것이다.


태그:#부산경남, #대구경북, #우리가 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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