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여자는 동성애자 남친을 꿈꾼다. 영화 <섹스 앤더 시티>의 캐리처럼 말이다. 이성이 아닌 친구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남자,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그런 동성애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바이섹슈얼, 게이, 레즈비언, 트렌스젠더. 성소수자를 일컫는 말은 다양하다. 사실 난 이 단어들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종로의 기적>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와 다른 그들이 궁금했다.

 <종로의 기적>을 만든 네 명의 남자들

<종로의 기적>을 만든 네 명의 남자들 ⓒ 시네마 달


<종로의 기적>은 동성애자인 게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남자들끼리 서로 사랑을 한다는 게이. 아직 그 말이 낯선 이유는 주위에 동성애자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없다고 생각해서가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게이는 티비를 통해 보는 홍석천이 전부였고 성전환 수술을 한 트렌스젠더는 하리수가 다였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동성애자는 영화나 티비에서만 존재한 것이 사실이다.

<종로의 기적>은 퀴어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였다. 스크린 속에는 온통 동성애자들이다. 평소에 볼 수 없는 동성애자들이 한 곳에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찾아가는 장소는 종로 3가 낙원상가의 한 포장마차였다. 이야기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어릴 적 어디선가 들은 말, 파고다 공원에서 혼자 서있는 남자는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곳을 거닐 때면 은근히 주위를 둘러보았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나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르다는 것은 낯설고 두려웠다.

 게이영화감독이라는 꼬리표로 어려움을 겪은 준문

게이영화감독이라는 꼬리표로 어려움을 겪은 준문 ⓒ 시네마 달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회에서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해 소외받는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곳은 종로 낙원상가 부근 포장마차였다.

술 한 잔을 기울이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 그들의 일상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성소수자들을 미화했던 기존 영화들과는 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나가고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일상을 담았기에 <종로의 기적>은 어색하지 않았다.

게이영화 감독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스태프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는 어려움을 보여준 준문과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로 바쁘게 살기에 애인을 외롭게 만드는 병권, 그는 열심히 연애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활동이 너무나 중요하다 생각한다.

스파게티 집을 경영하는 영수는 상경 후 10년 동안 외롭게 지냈지만 어느 날 종로의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친구사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고 게이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다.

대기업 사원인 정욜은 HIV에 걸린 애인을 두고 있다. 자신의 애인을 두고 '어디서 이런 작고 말 많은 사람을 만나겠느냐'는 그의 미소는 사랑을 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병권 ⓒ 시네마 달


<종로의 기적>은 사상 최고로 많은 게이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스크린 속에는 동성애자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네 명과 더불어 출연하여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모자이크 처리로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종로. 국내 최초의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종로의 기적>을 통해 알게 된 네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들을 만난 나의 느낌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각자의 사연으로 아픔을 담고 있지만 사람은 어차피 각자가 지닌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지금까지의 영화나 매체들이 그들이 다르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면 <종로의 기적>은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게이시골청년 영수. 개인적으로 가장 정이가는 사람이었다

게이시골청년 영수. 개인적으로 가장 정이가는 사람이었다 ⓒ 시네마 달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돈이 없거나 배운 것이 없거나 그냥 못생겼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하거나 왕따가 된다. 허나 그들 모두에게도 동등한 것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극중 병권은 '보이지 않을 뿐, 공장에도, 은행에도, 병원에도 모든 일터에는 동성애자들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일상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성소수자들. 사람들로 북적이는 트렌스포머3의 상영관 한쪽엔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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