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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KBS는 각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로 '전쟁과 군인' 일명 '백선엽 다큐' 1부를 방송하였다. 그리고 6.25날, 오늘 밤 그 2부를 방송한다.

KBS는 보도자료에서 '이 프로그램은 올해 아흔 한 살의 노장 백선엽과 각 국의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전쟁에 대한 기억의 파편을 찾고 또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한국전쟁 미공개영상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한 진솔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24일 방송의 내용이나 그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백선엽이라는 개인의 기억과 발언을 위주로 제작된 프로그램으로 이는 백씨에 의한, 백씨를 위한, 백씨의 방송', '친일 미화 독재 찬양', 정권재창출 위한 독재자.친일파 방송' 이라는 것이 주반응이다. (관련기사: '독재자 박정희'의 추락, 그들은 떨고있다 - 오마이뉴스)

KBS는 2011. 6. 24과 25일 밤 6.25특집 다큐로 2부작 <전쟁과 군인>을 방송한다.
▲ KBS의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1부 KBS는 2011. 6. 24과 25일 밤 6.25특집 다큐로 2부작 <전쟁과 군인>을 방송한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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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전설처럼 회자되는 그 위대한 '백선엽 장군'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친일"이라니 어찌된 이야기인가?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방송법 위반', '친일파 방송' 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2부에 걸쳐 특집으로 '백선엽의 공(公)'을 찬양하였으니, 이제 '백선엽의 과(過)'도 둘러보는 것이 형평성에도 맞고 특정 인물을 공정하게 판단하는데에도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공중파 방송인 KBS의 영향력과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의 영향력을 놓고 보면 '형평성'이란 말은 얼토당토 않는다. 하지만 KBS에서 광복절 특집 다큐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을 방송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하고 발간한 자료를 토대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을 소개한다.

어떠한 가감도 없이 참여정부에서 2005년 대통령소속으로 출범하여, MB정권에서 2009년 11월 30일 그 활동을 마감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자료만을 토대로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마저도 민간연구소의 발간자료라고 논란을 삼는 이들이 있으니 이 또한 배제한다.

"백선엽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하였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4-7권 821페이지 나.친일반민족행위 개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현황 자료 중 '백선엽'에 대한 현황자료, 선정/결정란을 보면 이의신청이 있었으나 기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현황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현황 자료 중 '백선엽'에 대한 현황자료, 선정/결정란을 보면 이의신청이 있었으나 기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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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1920년~생존)은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택하여 1940년 만주국군 봉천군관학교 제9기로 입학하여 이듬해 12월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동부 파오칭(寶淸)에 있던 보병 제28단에서 견습사관을 거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후 약 1년간 자무스(佳木斯)에서 신병훈련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다음 1943년 2월에 만주 간도성 명월구에 있던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탄압하던 간도특설대로 전임되어 해방될 때까지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탄압활동과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였다.

1. 백선엽은 1942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1945년 일제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그중에서도 1943년 2월부터 만주지역 항일부장 독립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하던 간도특설대에서 이들에 대한 탄압활동을 전개하였고, 또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간도특설대원으로서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의 일환으로 열하성으로 들어가 기동(冀東)지역에서 중국군 팔로군을 '토벌'하는 작전에 종사하였다. 또 1945년 봄부터 일제의 패전 당시까지 연길지역 국경수비 임무에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백선엽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0호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백선엽의 행위를 <특별법> 제2조 제10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4-7권 835페이지 라.판단)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4-7권에서 총 16페이지에 걸쳐(820~835페이지) '백선엽'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다.

KBS는 1시간 내내 백선엽 개인의 활약과 그에 대한 기억, 의견을 중심으로 한 '백선엽 미화 다큐'를 방송한 반면 그의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불과 몇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한 마디가 다였다.

백씨 또한 방송에서 아주 감개무량한 모습뿐 그 어디에도 자신의 친일행각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기억납니다…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국가 기구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공영방송' KBS에 의해 '구국의 전쟁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가해자인 그가 감개무량해 할 때 친일하지 않은 선량한 국민들과 독립군 후손들의 마음은 6.25날에 무너진 호국의 다리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있다.


태그:#백선엽,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파, #전쟁과 군인,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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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언소주) 개설자,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24인, 현 언소주 사무처장,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하면 소비자가 바로 세운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자. 우리 아이들이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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