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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6월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6월에는 지역투어 첫 행선지는 제주의 소식부터 전달합니다. 바람 부는 제주는 돌도 많고 여자도 많다는데, 진짜일까요? 여러분이 몰랐던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돈대산 봉우리
 돈대산 봉우리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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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나는 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 야생화, 돌, 나무 그리고 스쳐가는 바람… 나는 이런 것들이 좋다. 내가 걸은 길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 추자도 섬길을 잊지 못한다. 섬에 갇힌 좁은 길 끄트머리에서 만난 봉우리,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봉우리, 그 외로운 고갯마루 봉우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난 5월 찔레꽃 필 무렵, 추자도를 걸었다. 환상의 섬 추자도는 제주올레 18-1코스, 내가 걸은 첫 봉우리는 아주 밋밋하고 나지막한 등대산 봉우리였다. 봉우리하면 흔히 높은 봉우리를 생각하지만 등대산 봉우리는 정원 같았다. 봉우리 중턱 나무 등걸에  앉아 있으니 참으로 편안했다. 

봉글레산에 익어가는 보리수
 봉글레산에 익어가는 보리수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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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사당 뒤로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봉글레 산길에는 보리수가 익어갔다. 신록의 5월에 벌겋게 홍조를 띤 보리수 열매, 순간 심장이 뛰었다. 서너개를 따서 입속에 넣으니 그 달콤함에 배에서 멀미를 한 탓에 불편했던 속이 씻은 듯이 나았다.

봉우리 아래 낚시터
 봉우리 아래 낚시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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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과 주황색 리본을 단 올레 표시를 따라 걷다보니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이 나온다. 나빌론 절벽이다. 한 강태공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발을 딛고 낚시를 하고 있다. 내 삶에도 저렇게 긴장된 순간이 있었을까. 

함께 절벽을 걷던 남편이 절벽의 꼭대기에 서 있다. 절벽 아래는 낭떠러지다.

"앗, 빨리 내려오세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기에 절벽 위에 서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것인가?

"왜 그래? 절벽위에 서 있으니 기분만 좋은데."

태연하게 절벽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남편, 보기만 해도 아찔한 나빌론 절벽 봉우리에서 그는 긴장의 순간을 맛보았을까? 발을 헛디디면 바다로 풍덩 빠져버릴 것 같은 봉우리 올레, 발에 힘을 주고 머리를 곤두세우며 걸었다. 곳곳에 보이는 위험표지판에서 역설적으로 삶에 애착을 느꼈다.

남편이 나빌론 절벽 꼭대기에서 밑을 내려보고 있다.
 남편이 나빌론 절벽 꼭대기에서 밑을 내려보고 있다.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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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글레산 봉우리에서 본 상추자도
 봉글레산 봉우리에서 본 상추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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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길
 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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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글레산 정상을 거쳐 향기 그윽한 섬길을 계속 걷다보니 나빌론 절벽 정상이다. 추자도 섬길이 평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조금은 가혹하고, 조금은 고된 길, 잡초가 우거진 길이 바로 추자 올레 섬길이다. 때론 절벽을 걸어야 하고, 때론 잡초 우거진 가파른 길을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나빌론 절벽에서 추자등대가 있는 봉우리로 향한다. 이 봉우리에서는 다도해가 잘 보인다.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추자 전망대 봉우리다. 잠시 다도해 정취에 푹 빠졌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추자도 묵리 고갯마루로 가기 위해서는 추자교를 걸어야 했다. 212m의 짧은 다리지만, 바다를 끼고 걷는 환상의 다리다. '미라보 다리'가 이만큼 운치 있을까.

묵리 고갯마루 가는 길
 묵리 고갯마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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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돌이 덤벅이 된 척박한 길, 아마 제주 땅이 이렇게 척박했으리라. 조금은 가파른 고갯마루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다시 봉우리를 만난다.

묵리 봉우리 아래 마을
 묵리 봉우리 아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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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를 지나니 묵리마을이다. 빨간 지붕, 파란 지붕의 조용한 섬마을을 보니 '휴식'이란 글자가 절로 떠오른다. 도심에서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 길을 걷던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노랗게 핀 야생화 숲 터널을 헤쳐 나오니 오른쪽 신양리 바다에서 바람이 분다. 이 바닷바람은 모진이해수욕장을 지나 신대전망대, 예초리기정길까지 피부에 촉촉히 적셔 왔다.

산 아래 펼쳐진 바다, 기암절벽, 절벽을 부여잡고 매달린 야생화, 두릅순과 산딸기가 어우러진 길을 계속 걷는다.

돈대산가는길
▲ 돈대산 가는길 돈대산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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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산 봉우리
 돈대산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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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냄새 풀풀 나는 예초리 포구를 지나면서부터는 심심하면서도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길을 걷게 된다. 이 길이 돈대산 봉우리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무려 2km에 달하는 산책로는 추자 올레의 숨은 매력이다. 아무도 걷지 않는 산책로를 걷다보니 문득 진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돈대산 봉우리에서 본 신양항
 돈대산 봉우리에서 본 신양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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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추자도가 한눈에 보인다. 돈대산 봉우리 정자에 누워보았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솔향기….

추자도 섬길 17.7km에 숨은 봉우리를 걷자니 김민기님의 시 '봉우리'가 생각났다. 내가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맛으로 치면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추자도 섬길. 화려한 제주의 또다른 풍경이다.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 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 김민기의 '봉우리' 중에서

* '추자도 올레'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아래 관련 기사를 참조하세요.

지역투어 로고
 지역투어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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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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