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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6월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6월 지역투어 첫 행선지는 제주도입니다. 바람 부는 제주는 돌도 많고 여자도 많다는데, 진짜일까요? 여러분이 몰랐던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만난 '중덕이 아빠' 김종환씨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만난 '중덕이 아빠' 김종환씨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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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강정마을 해안에는 표면이 부드러운 조면암질 너럭바위들이 널리 분포하는데, 주민들은 이 해안을 '중덕'이라 부른다. 중덕에는 10명도 넘게 모여 앉을 수 있는 천막이 있는데, 입구에 '중덕사'라고 적힌 현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중덕사 근처에는 지나는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두 살쯤 된 개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이 '김중덕'인데, 이젠 전국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김'은 개를 입양하여 키운 김종환씨 성에서 따왔고, '중덕'은 강아지가 자란 해안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는 2009년 말 김종환씨가 강아지 '김중덕'을 입양할 때 처음 봤는데, 이젠 다 자라서 큰 개가 되어버렸다.

중덕사는 2009년 주민소환운동이 실패로 끝난 직후 만들어졌다. 당시 주민들 모두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주민 고종인, 김종환씨와 양윤모 전 영화평론가협회장이 모여서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낸 결과다. 처음엔 조그마한 천막에서 출발했는데, 이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크게 '중창'하여 '중덕사'라는 현판까지 걸었다.

바위 위에 세워진 중덕사가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굴지의 '생명평화사찰'로 성장(?)한 이면에는 김종환씨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배가 고프지 않도록 늘 밥과 막걸리를 대접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강아지 '중덕'을 강정마을에서 평화의 상징처럼 키워냈다.

'중덕이 아버지' 김종환씨를 만났다. 김종환씨에게 중덕 해안은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멱도 감았다. 김종환씨가 청년 시절에 매일 이곳에서 낚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덕을 '종환이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는 유년기 이후 자신의 눈물과 콧물이 배어 있는 이곳에 "군사기지를 짓고, 바위를 콘크리트로 덮는 상황을 상상해보니 용납이 되지 않아"서 해군기지 반대 싸움에 함께하는 거라고 했다.

김종환씨, 강동균 마을회장, 양홍찬 전 제주해군기지건설반대 강정마을대책위원장은 모두 1957년생으로 동갑내기 친구들로 오래전부터 친목 모임도 함께 해온 사이다. "친구들이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앞장섰기 때문에 따라서 동참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중덕 아빠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해군기지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는 어리둥절해서 판단을 유보했다가, 1년을 두고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밥도 함께 먹고 투쟁도 함께 한 양윤모 전 영화평론가협회장

2009년 중덕에 천막이 처음 세워지고나서 사람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다. 가장 오른쪽이 양윤모 전 회장, 그 다음이 김종환씨.
 2009년 중덕에 천막이 처음 세워지고나서 사람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다. 가장 오른쪽이 양윤모 전 회장, 그 다음이 김종환씨.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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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덕', '중덕사', '김종환'을 나열해보면,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더 있다. 이곳에 천막을 마련한 이래, 줄곧 천막에서 기거했던 양윤모 전 회장이다. 김종환씨는 양윤모 전 회장의 이름만 들어도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양 전 회장과 김종환씨가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은 3년 정도다. 두 사람 사이 나이 차가 한 살밖에 안 되는데도, 양 전 회장은 김종환씨를 부를 때 동생에게 하듯 "종환아"라고 부르고, 김종환씨는 "예, 형님"이라고 답한다.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생 김종환씨는 양윤모 형님에게 늘 "밥을 지어 바쳐야" 했다. 

"윤모형은 처음 왔을 때, 라면도 못 끓였어. 할 수 없이 내가 밥 해주고 찌개도 끓여주고 집에서 김치도 갖다 줬지. 그런데 나중엔 나 없이도 먹고 살아 보려고 알아서 밥도 허데."

김종환씨는 예전에 음식점을 운영해봐서 요리 솜씨가 좋다. 나도 두 해 전 가을에 이곳에서 잠을 잔 후, 아침을 대접받은 적이 있다. 재료가 마땅치 않았는데도 생선에 미역을 넣어 끓인 국이 일품이었다. 그동안 김종환씨가 차려준 정성어린 밥의 힘이 양윤모 전 회장을 70일 동안이나 곡기를 끊고 버틸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김종환씨는 양 전 회장과 밥만 함께 먹은 게 아니다. 투쟁도 함께했다. 그래서 김종환씨는 경찰서로 두 번이나 강제 연행되었다. 2009년 7월에는 해군기지 예정지에서 토지 경계 측량을 방해한 혐의로 강동균 마을회장과 함께, 올해 5월에는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최성희씨와 함께 현장에서 체포된 것.

"경찰서에 갔더니 나에게 혐의내용이 사실이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사실이라고 했지. 그런데 해군이 잘못했기 때문에 난 죄가 없다고 답했어. 그리고 해군기지가 철수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했지."

"트럭 밑에 드러눕고 굴착기 앞에 누운, 대단하고 고마운 사람들"

김종환씨가 트럭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길바닥에 앉아 있다. 그 옆에 누운 사람이 구속된 최성희씨.
 김종환씨가 트럭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길바닥에 앉아 있다. 그 옆에 누운 사람이 구속된 최성희씨.
ⓒ 강정마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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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모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출소하는 날, 김종환씨는 양 전 회장의 소지품이 든 종이가방을 받아들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양 전 회장이 다른 주민들 앞에서 투쟁 의지를 과시할 때 김종환씨는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말 동생의 모습이었다.

"윤모형이 감옥에서 단식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아파서 면회도 못 가봤어. 그런데 감옥에서 나오고 병원에 입원하는 날 하룻밤 동안 병실을 지켰지. 그리고 난 강정으로 돌아와서 계속 중덕을 지켜야했고. 윤모형이 가끔 '잘 지내냐'며 전화를 걸어와. 그래서 내 걱정하지 말고 몸 관리나 잘하라고 했지."

양윤모 전 회장 말고도 김종환씨가 마음 아파하는 이름이 있다. 지난 5월 19일 김종환씨와 함께 경찰서에 연행된 이후, 구속되어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최성희씨다.

"윤모 형, 최성희, 거기에 송강호까지, 이 사람들 나와 여러 번 트럭 밑에 드러눕고 굴착기 앞에서도 누웠지.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사람들이야."

김종환씨에게 해군기지 반대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자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해군과 정부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양윤모 전 회장과 최성희씨가 빠진 자리를 다른 활동가들이 대신하면서 주민들을 돕기 때문이다. 김종환씨는 그중에서도 특히 송강호씨에게 마음이 가는 눈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에서 활동하는 송강호씨는 지난 4월부터 강정마을로 내려와 해군기지 반대 싸움에 앞장서고 있는 활동가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교수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양윤모 전 회장이 김종환씨보다 한 살 많은 '형님'이라면, 송강호씨는 공교롭게도 한 살 적은 '동생'이다. 그래서 송강호씨와도 호제호형 하는 처지다.

"해군기지 덕분에 출세했지. 교수 형님 생기고, 교수 동생 생겼으니. 이젠 해군기지 물리치는 것 말고는 정말 원하는 게 없어."

김종환씨는 젊어서 음식점을 경영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아 농업용 비닐 온실 만드는 일을 했다. 하지만 해군기지 문제가 터지고 난 뒤에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없고, 귤 농사만 짓고 있다. 가족으로는 개 중덕이 말고도, 아들 현수(32)와 딸 현미(28)가 있는데, 아들 현수씨는 결혼해 올 초에 딸을 낳았다. 여기에 개 중덕이가 올해 이웃마을 개와 '결혼'해 새끼 다섯을 낳았다. 결국 그에게는 올해 손자·손녀 여섯이 생긴 셈이다.

"위기와 고통은 사람을 늘 위대하게 만든다"

뒤에 보이는 천막이 '중덕사'다. 2009년 이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구심이 되었던 장소다.
 뒤에 보이는 천막이 '중덕사'다. 2009년 이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구심이 되었던 장소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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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정마을 주민들 얼굴에는 활력이 생겼다. 해군기지 공사를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김종환씨는 그동안 오래 투쟁했지만 지금처럼 자신감이 충만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잖아. 하루 50명 가까운 인원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거든. 근데 각지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모두 감당하고 있어. 게다가 그제는 도의원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보호해주겠다며 바지선에 올라가서 밤새 지켜줬잖아. 결국 해군이 바지선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잖아.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기 쉽지 않다고 봐." 

"해군기지 저지하고 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송강호씨를 따라 '개척자들'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 다 장성했으니, 돈을 벌어서 뭐 할 거야? 남은 인생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뜻있는 일하며 살면 좋잖아."

그런 일 하려면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하지만 그는 술을 다소 즐기는 편이다. 그에게 "술을 좀 줄여보라"고 권했더니 "이 판에서 술 안 마시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그래도 소주 안 마시고 막걸리만 마시니 몸은 별문제 없을 거야"라고 했다.

지난달 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강정마을을 방문하고 나서 "위기와 고통은 사람을 늘 위대하게 만든다"고 했다. 요즘 강정마을 주민들을 대할 때면 박원순 이사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중덕이,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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