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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 정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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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가 김진표를 이겼다. 김진표는 김진표를 좋아한다."

두 김진표 중에서 전자는 정치인 김진표고 후자는 가수 김진표다. 가수 김진표는 패티 김과 함께 정치인 김진표가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사람이다. 포털사이트에서 '김진표'를 검색하면 정치인 김진표가 먼저 뜬다. 가수 김진표의 활약이 뜸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치인 김진표의 활약이 그만큼 활발하기 때문이다.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해야 빛이 나고 정치인은 국회에서 연설해야 빛이 난다. MBC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새삼 그 '잠자던 상식'을 일깨웠다. 그런 점에서 김진표(64)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 제1야당의 원내사령탑으로서, 물 만난 고기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조중동' 대놓고 까는 '대가 센' 경제관료

흔히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더러는 스스럼없이 '관료의 영혼 없음'을 합리화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 옹호에 앞장섰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종부세' 완화에 총대를 멘 한 공직자는 기자들이 조세원칙이 바뀐 이유를 묻자, "조세원칙이 바뀐 게 아니라 조세원칙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막스 베버가 지적한 이 같은 관료의 특성은 관료의 한계이자 역기능이다. 이 때문에 선 굵은 정치인들은 대가 약한 직업 관료들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에게 필수인 배짱과 뒷심의 부족은 직업 관료가 직업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전통적인 관료의 한계를 깨고 성공한 몇 안 되는 직업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조폭'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가진 '조중동'을 대놓고 까는 몇 안 되는 공직자 출신 정치인이다. 그에게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차관, 장관을 지낸 같은 당의 장병완 의원 등과 함께 '대가 센 경제관료' '선 굵은 직업관료'라는 평이 따라다닌다.

수원 토박이인 그는 수원중, 경복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평범한 법대생이었던 그를 경제학으로 이끈 것은 금서였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한 경제서적이었다. 그가 사법시험 대신에 행정고시(재경직)를 택한 것도 전후 독일경제를 부활시킨 아네나워 수상을 롤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1975년 재무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1999년에 '직업관료의 꽃'인 1급(세제실장)에 올라 금융소득종합과세 도입 등 굵직한 세제 개편을 주도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재경부차관과 청와대 '왕수석'으로 통하는 '정책기획수석'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기용될 만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이때 부처 간 이견과 여야의 대립 사안을 원만히 조정해 '미스터 튜너'(조율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내가 써보니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이더라"고 보증한 공직자가 바로 그였다. 그가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을 거쳐 참여정부 초대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이다. 그는 17대 국회에 진출해 교육부총리를 맡아 '방과후 학교'를 도입, 사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흡수하는 데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60년 정당 사상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데 이어 지난 5월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DJ가 '최고의 공무원' 칭찬하고, 노무현은 부총리 두 번 기용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으로 칭찬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교육부총리 중책을 맡겼다."

원내대표로 선출된 그가 5월 16일 첫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을 때, 손학규 대표가 이렇게 소개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실제로 그의 블로그 문패도 '소통하며 행동하는 김진표'다. 각각 '소통'과 '행동'으로 상징되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유산을 계승한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문패다.

그는 지난 생애 처음인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서민과 중산층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정책대안을 만드는 것, 복지가 성장의 한 축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당이 하고자 하는 '민생진보 국회'"라면서 자신의 원내전략과 정책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렇게 밝혔다.

"'민생진보 국회'는 사람과 미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반값등록금과 전월세상한제를 실현해서 우리 국민에게 새 희망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 대학생 반값등록금 ▲ 친환경무상급식 ▲ 공공일자리 및 비정규직 지원 ▲ 구제역 대책 등에 모두 6조 원을 투입하는 민생추경 예산편성을 촉구합니다."

이에 앞서 그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의 6월 임시국회 개회협상에서 저축은행 국정조사와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입법화 합의를 이끌어내 '정책통'뿐만 아니라 대정부 투쟁의 전면에 선 '전략통'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실제로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미 구속된 은진수 전 감사위원 외에 정진석 정무수석, 권재진 민정수석,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줄줄이 거론하면서 저축은행 사태를 '권력형 측근비리 게이트'로 규정, 이명박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특권과 반칙으로 서민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권력형 측근비리 게이트'입니다.…(중략)…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죄다 이렇게 해놓고, 적반하장으로 민주당 의원에게 말조심해라, 책임을 묻겠다, 어떻게 이런 으름장을 놓을 수 있습니까? 이명박 정권! 참 '나쁜 정권'입니다! 깃털은 무성한 데 아직까지 몸통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이미 청와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검찰-청와대 반발하는 '중수부 폐지'가 정치력 시험대

그러나 그의 앞길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로 출마했으나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 본선에 나가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야권 단일화라는 대의를 좇아 단일화 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단일화 패배 이후에도 유 후보를 적극 지원해 '대인의 풍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중도개혁 성향이지만 당내에는 관료 출신을 불신하는 기류가 있다.

야당의 원내 지휘봉을 쥔 그의 기세를 꺾으려는 당 밖의 도전도 거칠다. 당장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2일 대정부질문에서 저축은행 부실사태 및 구명로비 의혹과 관련, 김 원내대표의 2007년 캄보디아 방문 기록을 제시하며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7일 신지호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한 상황이다.

그가 대표연설에서 밝힌 대검 중수부 폐지 및 특별수사청 설치 같은 사법개혁도 청와대와 검찰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는 연일 "(국회 입법권에 저항하는) 검찰의 이런 태도만 보더라도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 우리 국민들은 명백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온 정치검찰에 대한 수술은 이제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고 의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중수부 폐지'를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한판 승부로 간주하기 때문에 저축은행 부실사태 및 구명로비 의혹 관련 최종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한 '먼지털이식 수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따라서 정치인을 겨냥한 검찰의 날선 발톱을 피하면서도 검찰의 목에 방울을 달아 권한 남용을 막으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는 5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 처음 출석해 "몸이 으스러지도록 모든 것을 다 바쳐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이기는 원내대표가 되겠다"면서 '국궁진췌'(鞠躬盡瘁)라는 <삼국지> 제갈량의 '출사표'를 인용했다. 이른바 '후출사표'의 한 대목으로 '나라를 위해 마음과 몸을 다하여 죽을 때까지 애쓸 뿐이다'는 뜻의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에서 나온 말이다.

임기말 대통령이 '조자룡의 헌칼 쓰듯'하는 검찰의 큰칼(중수부)을 어떻게 가두느냐가 2012년 총선 필승을 다짐한 그에게 최대의 정치력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태그:#김진표, #황우여, #중수부, #저축은행, #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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