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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북상면 중산마을에 있는 임종호 가옥.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그럴만 한 가치가 있다
▲ 임종호 가옥 거창군 북상면 중산마을에 있는 임종호 가옥.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그럴만 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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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중산마을에는 지은 지가 150년 정도 되어 보이는 고택 한 채가 있다. 주인인 임종호는 2~3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는 구 가옥 곁에 새로 거처를 마련하고 모친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변 제각 앞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은, 그 집에 살고 계신 분이 자신의 질부라고 하시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다.

이 집은 치목구조나 여러 가지 형태 등으로 보아 조선조 말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은 120~130년 정도 되었다고 하신다. 솟을대문 안으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 우측에 광채가 있다. 그리고 사랑채와 나란히 뒤쪽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돌담으로 집 전체를 둘러놓았다. 집의 형태로 보면 이곳에서 꽤나 잘 살았던 집안이란 생각이다.

아궁이가 있는 앞애는 나무들을 쌓아 놓앗다
▲ 사랑채 아궁이가 있는 앞애는 나무들을 쌓아 놓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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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 아궁이를 드리고, 두 칸의 대청방이 있다. 문을 달아내고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다
▲ 대청 좌측으로 아궁이를 드리고, 두 칸의 대청방이 있다. 문을 달아내고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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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 앞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놓고, 그 밑에 아궁이를 놓았다
▲ 건넌방 건넌방 앞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놓고, 그 밑에 아궁이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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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칸으로 지은 사랑채의 풍취

사랑채는 모두 다섯 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자연석 주초를 그대로 쓴 집은 기둥을 모두 사각으로 치목을 하였다. 이런 치목의 방법이나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목재들을 보아도, 지방의 목수들이 다듬은 손길이 아니다. 사랑은 바라다보면서 좌측에 아궁이를 두고, 두 칸 마루방을 드렸다. 그리고 안채로 드나들 수 있는 누마루 한 칸과, 온돌방 한 칸을 계속 두고 있다.

우측 온돌방 앞으로는 누마루에 난간을 둘러 정자방으로 꾸며 놓았다. 사랑채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광채는 중문채를 겸하고 있는 듯 보인다. 광채 옆으로는 담을 터 바깥으로 출입을 하게 하였는데, 그 문을 통해 제각으로 드나든 듯하다. 광채는 우측 한 칸은 방을 드리고, 가운데는 광채를 그리고 좌측으로는 뒤주를 삼았다.

광채는 중문채를 겸하고 있다. 끝에는 방을 들이고, 그 옆에는 뒤주광을 만들었다
▲ 광채 광채는 중문채를 겸하고 있다. 끝에는 방을 들이고, 그 옆에는 뒤주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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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채는 모두 네 칸이다. 사랑채 쪽의 끝에도 방이 있다. 아마도 이 방은 남자들이 시용한 듯하다.
▲ 광 중문채는 모두 네 칸이다. 사랑채 쪽의 끝에도 방이 있다. 아마도 이 방은 남자들이 시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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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끝에는 다시 한 칸의 방을 드린. 네 칸으로 구성이 되어졌다. 아마도 사랑채 쪽의 방은 남자가, 안채 쪽의 방은 여자가 사용한 듯하다. 사랑채 방향의 방이 앞으로 돌출이 되어있어, 남은 공간에는 활주를 대고 지붕을 내어 달았다.

안채에도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채와 나란히 뒤편에 조성한 안채 역시 다섯 칸이다. 좌측으로부터 한 칸의 부엌과 안방, 윗방 그리고 대청마루 뒤편에 문을 달아 신주방으로 꾸민 듯하다. 맨 오른쪽의 건넌방은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난간을 두르고 높임마루를 달아냈다. 임종호 가옥의 특징은 대청마루 뒤편에 마련한 신주방이다.

안채는 좌측으로 부터 부엌과 안방, 윗방, 그리고 대청 뒤편을 신주방으로 하였으며, 끝에 난간을 두른 건넌방이 있다
▲ 안채 안채는 좌측으로 부터 부엌과 안방, 윗방, 그리고 대청 뒤편을 신주방으로 하였으며, 끝에 난간을 두른 건넌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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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으로 부터 안방과 윗방, 그리고 대청 뒤편에 문을 달아 신주를 모신 듯하다
▲ 대청 좌측으로 부터 안방과 윗방, 그리고 대청 뒤편에 문을 달아 신주를 모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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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와 안채의 사이에 안채마당 한 복판에 마련한 굴뚝. 이 집의 특징이다.
▲ 굴뚝 사랑채와 안채의 사이에 안채마당 한 복판에 마련한 굴뚝. 이 집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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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뒤편에도 작은 부엌방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런 구성은 딴 곳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사랑채와 광채, 그리고 안채의 동선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조성한 임종호 가옥. 전체를 이으면 ㄷ 자 모형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앞으로는, 안마당을 시원하게 만드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 한 가운데 흙담으로 꾸민 굴뚝이 서 있다.

"어르신 저 집의 마당 가운데 굴뚝은 사용하는 것인가요?"
"얼마 전까지도 사용을 했지. 지금은 살림을 하지 않으니 쓰지 않지만"
"그런데 왜 마당 가운데에 굴뚝을 마련했나요?"
"낸들 아나 여기저기 연기가 나면 안 좋으니까 그랬나보지.""그럼 안채와 사랑채에도 굴뚝이 모두 저 가운데로 빠지나요?"
"처음엔 그렇게 만들었지. 지금은 잘 모르겠구먼."

임종호 가옥의 안채와 광채가 이어지는 곳에는 담이 트여져 있다. 뒤쪽에 있는 제각으로 다니는 동선일 듯
▲ 튼 담 임종호 가옥의 안채와 광채가 이어지는 곳에는 담이 트여져 있다. 뒤쪽에 있는 제각으로 다니는 동선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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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연도를 마당 한 가운데로 모아 굴뚝을 낸 것일까? 주인 잃은 집은 휑하기만 하다. 언제가 다시 시간을 내어 후손들이 모인다는 명절 때 찾아보아야겠다. 궁금증을 풀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임종호 가옥, #거창군, #중산마을, #비지정,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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