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이 열렸다. 주말마다 진행하는 이 대회는 6월 6일 결승전을 벌인다.

지난 5월 14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이 열렸다. 주말마다 진행하는 이 대회는 6월 6일 결승전을 벌인다. ⓒ 이호영


올해부터 고교야구는 주말리그를 운영한다. 대한야구협회는 지난해 2월 고교야구 주말리그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6월 공청회를 열어 10월 26일 최종 계획안을 발표했다.

주말리그를 운영하면 고교야구 선수가 예전보다 더 공부할 수 있다. 주중에 공부하면서 훈련하고 주말에만 경기에 나서면 된다. 그동안 고교야구 선수는 훈련과 대회 일정에 쫓겨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고교야구 선수를 둔 현장의 많은 학부모도 주말리그의 취지에는 깊이 공감했다. 자식이 10여 년을 운동만 하다 보니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쉬운 맞춤법조차도 틀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만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한 야구인도 "우리도 선진국처럼 고교야구를 주말리그로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문제가 심각하다. 협회가 나름대로 1년 가까이 준비를 거쳤지만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고3 학부모의 반발이 크다. 체육계에 잔뼈가 굵은 한 언론인 또한 "갑작스러운 주말리그 도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중동' 대회로 헤쳐 모여

지난해까지 고교야구는 9개 전국대회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서울에서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2008년부터 수원 개최) 등 4개 대회가, 지방에서 무등기(광주), 대붕기(대구), 화랑대기(부산), 미추홀기(인천), 전국체육대회 등 5개 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나서기 위해선 지역 예선을 치러야 했다.

협회는 대회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따라 매년 대회 수를 줄이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틀이 완전히 바뀌자 대회 수도 자연히 줄었다. 올해 고교야구는 3월 16일부터 4월 24일까지 전반기 주말리그를, 6월 11일부터 7월 25일까지 후반기 주말리그를 벌이고 각 리그가 끝나면 상위권 팀끼리 왕중왕전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4개 주요대회는 살아남았지만 지방대회는 모두 없어졌다. 5월 14일부터 6월 6일까지 목동에서 진행 중인 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은 동아일보사 주최의 황금사자기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리는 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은 조선일보사의 청룡기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모든 팀이 참여하던 한국일보사의 봉황대기는 사회인 야구단이 참여하는 대회로 변했고, 그 빈자리를 중앙일보사의 대통령배가 메우게 됐다.

지난 1월 화랑대기의 공동 주최사인 부산일보는 협회의 지방 차별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리는 화랑대기는 지난해 62회 대회를 치른 역사가 깊은 대회지만 '조중동' 대회에 밀려 올해부터 없어지게 됐다. 화랑대기는 지난해 44회 대회를 연 대통령배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부산에서 62년간 부산일보사 주최로 열렸던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올해부터 사라지게 됐다.

부산에서 62년간 부산일보사 주최로 열렸던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올해부터 사라지게 됐다. ⓒ 이호영


주말리그는 강팀만의 잔치

올해 전국 고교야구팀은 서울권A·B, 경상권A·B, 전라권, 중부권, 경강권, 경인권 등 8개 권역으로 나뉘어 주말리그를 연다. 각 권역에서 상위권에 들어야만 왕중왕전에 나설 수 있다. 후반기는 다른 권역팀과 경기를 하는 인터리그로 진행한다.

그런데 왕중왕전에 전국대회라는 이름을 덧붙이면서 문제가 생겼다. 전력이 약한 팀은 리그에서 나쁜 성적을 남기는 동시에 전국대회에 나설 기회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회가 많아 약팀도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 위주로 나서는 등 최소한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주말리그는 약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철저한 승자독식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야구부 해체를 고민하는 학교가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경기 수도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왕중왕전에 나서기 위한 경기 수는 6~7경기 정도로 기회가 별로 많지 않다.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과 다름 없다 보니 에이스만 등판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성적이 중요해져 감독이 선수를 배려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과거에는 경기의 중요도에 따라 에이스가 아닌 다른 투수가 올리거나 대타, 대수비가 나오는 게 흔했다.

리그는 경기 수가 적으면 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수준급 투수가 많은 리그는 타자의 기록이 형편없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타격감이 떨어지면 기록 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다. 나무방망이는 힘과 기술이 부족한 고교야구 타자에게 여전히 버거운 장비이기도 하다.

단계적 시행이 아쉽다

고교야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고교야구에 주말리그를 도입하는 건 찬성하지만 중학야구에서 먼저 시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로에 민감한 고교야구 선수에게 갑자기 주말리그를 들이댄 건 무리였다는 뜻이다. 중학야구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주말리그를 고교야구만 먼저 도입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현재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는 점에서 협회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취지는 좋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고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곪은 주말리그로 나타났다. 협회의 성급한 행정으로 피해를 보는 이는 결국 고교야구를 지탱하는 선수와 학부모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세 명의 학부모에게 물었다
"언젠가는 시행해야 할 제도다. 취지에는 크게 공감한다. 야구선수도 공부해야 한다. 다만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감이 있다. 만약 자식이 고교에 다닐 때 이런 제도가 갑자기 시행됐다면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들어보니 주변에 개인적으로 아는 학부모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고교 졸업생 학부모 A씨)

"찬성 반, 반대 반이다. 운동만 하는 자식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다만 많은 검토나 준비 없이 급하게 시행한 건 잘못이라 생각한다. 지금 애들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자기 바쁘다.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만날 공부하는 애들한테 방망이 주고 타석에 올려서 에이스 투수의 시속 140km가 넘는 공을 쳐보라는 것과 같다. 차라리 야구부 반을 따로 만들어 상식이나 국어, 영어, 한문, 일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리그도 여유가 없다 보니 던지는 애만 계속 나온다. 이닝 수, 투구 수, 완투 제한 등 실질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감독이나 학부모 모두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불만이 터지기 직전이다." (고교 졸업생과 재학생 학부모 B씨)

"자식이 졸업반은 아니지만 걱정이다. 큰 틀에서는 찬성하지만 협회가 꾸준히 고민하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열 명이 야구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에이스만 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고3 학부모는 분위기가 하도 흉흉해서 말을 건네기 어려울 정도다. 리그 경기 수도 너무 적다. 고작 20~30타석으로 진로를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 주말에 두 게임을 하든가 주중 경기를 고민해야 한다. 자기 권역팀끼리 경기가 없는 인터리그도 황당하다. 왕중왕전에 못 올라간 팀들은 별도의 대회를 열어야 한다. 미국도 골든리그, 실버리그로 나눠서 진행한다. 약팀을 배려해야 한다. 요즘 '뒷돈 줘야 대학 간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학 입학규정이 제각각으로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한 성적 평가에 기초한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절실하다." (고교 재학생 학부모 C씨)

고교야구 주말리그 대한야구협회 왕중왕전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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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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