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월 6일 육군3사단 신병교육대 수료식 행사에 다녀왔다. 잘 알고 있듯이 지난 1998년 폐지되었던 훈련소의 가족 면회가 13년 만에 부활되었고 3사단에서는 5월 6일 수료생부터 실시하였다.

수료식 직전,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수료식 직전,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그렇다고 내 아들이나 조카가 훈련소를 수료한 것은 아니다. 내 아들은 이미 그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에 배치받아 복무중이다. 그러니 어쩌면 신교대(신병교육대, 훈련소)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남의 제사에 참여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육군의 지시에 예하 신병교육대에서는 부리나케 면회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차 없는 집이 없을 텐데, 주차장도 문제이지만 하나 아니면 둘만 낳은 세대들이기에 온가족이 면회를 오니 그들을 수용할 장소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부의 지시에 급하게 마련했을 것이지만, 내가 찾은 육군 3사단 신교대는 주변 여건을 활용해 준비를 아주 잘 해놓고 있었다. 물론 지시에 따른 것이겠지만, 가족들이 병사들의 생활관을 구경할 수 있었고, 야외에 화장실이 만들어졌으며, 주변 환경을 이용해 주차장을 마련하여 기간 병사들이 안내를 해 주었다.

내가 신교대를 찾은 것은 병사들의 수료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알게 된, 사이버 상의 훈련소 카페 <백골비호>. 그 곳을 통해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고, 카페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훈련병들의 훈련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그 속에서 아들의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는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신교대에서 운영하는 <백골비호> 카페에서 만난 부모들이 그 인연으로 사이버 상에 카페를 만들었다. 즉, '3사단 신교대를 수료하고 군 복무중인 아들의 부모들 모임'이 결성된 것이다. <아들사랑 백골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단순히 부모들의 친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선임병의 부모들이 후임병 부모들에게 외출, 외박, 면회, 휴가 등 자신의 아들이 겪은, 군복무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주며 주기적으로 만나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이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부모들이 할 일을 찾았고, 신병교육대대장과 정훈장교의 협조를 받아 훈련 중인 병사들을 위한 위문 행사를 갖게 되었다.

민간인이 군사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신교대가 속해 있는 연대, 그리고 사단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혹시 모를, 위문 행사에 참여한 부모와 훈련 중인 병사의 만남도 배제해야 했다. 그래서 이미 신교대를 수료한 병사의 부모만이 위문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내 아들은 없는 곳에 남의 아들들 위문하러 간다? 기발한 발상이었지만 회원들은 흔쾌히 참여해 주었고 못 가는 부모들은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해 주었다.

이러한 행사는 내 아들이 신교대를 수료한 이후에 시작된 것이어 내 아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첫휴가를 나온 녀석이 군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백골비호>, 그리고 <아들사랑 백골사랑> 카페를 들여다보고는 '좋은 일들 하시네요. 제게 줄 용돈에서 얼마만 후원하세요'라 했고, 아들의 그 마음까지 받아 나는 그저 초코파이 값 정도 보탠다는 생각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신교대 교육 기간 중에는 접할 수 없는, 민간인이 부대 안에 들어가 준비해 간 쵸코파이, 쵸코바, 캔커피, 소세지빵, 핸드크림, 바나나, 귤… 등을 나누어 주며 그저 따뜻한 격려의 말 한 마디 전해주는 것뿐이었지만, 이 행사는 훈련병들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다. 어느 병사는 신교대 수료 후 자대에 가서는 면회를 온 부모에게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햄버거는 처음 먹어봤다'며 훈련병 시절 위문 온 부모들이 나누어 준 햄버거를 자랑하였고, 이 병사의 부모는 열렬한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위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연대는 물론 사단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이윽고는 군단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지만, 훈련소 면회가 부활하면서는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부모가 오지 못하는 병사를 위한 위문행사였다.

수료식 후 자대에 배치되어 가는 그 막간을 이용해 허용된 면회이기에 시간과 공간이 제한되었다. 그러니 여러 사정에 의해 면회를 오지 못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훈련기간 동안 전혀 면회가 되지 않았기에 처음으로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병사들은 물론 가족들의 마음도 들뜨게 한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사가 느낄 위화감 혹은 외로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리라. 그런 병사들에게 부모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으로 신교대 위문행사는 그 내용이 변경되었다.

신교대 측에서는 미리 면회를 오지 못하는 병사를 파악하였고, 여기에 그린캠프(군 복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따로 모아 교육시키는 훈련과정)에 있는 병사들과 조교들도 포함하였다. 그들을 위문 대상으로 하되, 그냥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면회를 온 다른 가족들이 하는 것처럼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기로 했다.

나는 마침 5월 5일 저녁 늦게까지 연천에서 다른 행사가 있었고 행사가 끝나자 곧바로 철원으로 넘어가 미리 도착한 운영자들과 <백골회관>에서 숙박을 한 후 6일 아침 일찍 신교대로 향했다. 속속 도착하는 위문행사 참여 부모들…… 벌써 세 차례나 위문행사를 가졌기에 신교대 측에서도 부사관이 나와 안내를 했다.

수료식 예행연습을 하는 연병장을 돌아 간부식당에 짐을 풀자마자 지원 나온 병사들과 자리를 세팅했다. 한쪽에서는 음식 준비에 바쁘다. 주부 9단들이어서일까, 음식을 준비하는 솜씨들이 모두 프로들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회원들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회원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신교대측에서는 밥과 국을 준비했고, 부모모임에서는 병사들과 함께 구워먹을 삼겹살, 피자, 치킨, 도너츠, 음료수, 떡, 초코파이, 과일, 과자… 등을 준비했다. 신교대장과 주임원사가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이어 사단 주임원사, 군단 주임원사까지 찾아와 고마움을 표한다. 물론 그런 인사를 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저 모두가 내 아들들이란 생각, 아무도 찾지 않는 병사에게 오늘 하루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주고파 시작한 일이다.

좌석을 만들고 음식이 거의 차려질 즈음 연병장에서는 수료식이 시작되었다. 10시 30분이었다. 몇몇만 행사장에 남고 모두들 수료식을 관람하였다. 평소 같으면 부사단장이나 참모장 혹은 연대장이 주관했을 수료식이지만 첫 면회가 시행되는 날이어서인지 사단장이 직접 참석을 했다. 본부석 양 옆은 물론이고 연병장을 빙 돌아 족히 1,000명은 넘을 것 같은 가족들… 함께 먹을 음식들을 싸들고 와 아들이 이등병이 되는 순간을 보고 있었다.

본부석 양 옆 그리고 연병장 주변으로 가족석이 마련되었다.
 본부석 양 옆 그리고 연병장 주변으로 가족석이 마련되었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계급장 수여. 사단장은 수료생 대표에게 다가가 부모와 함께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었고, 식에 참석한 가족들이 아들에게 다가가 오른 손에 바쳐들고 있는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둘씩 셋씩 가족들이 연병장에 도열한 아들들에게 달려가 계급장을 달아주고 얼싸안고 사진찍고……

그런데 흰색 장갑을 끼고 있는 오른손에 계급장을 바쳐들고 부동자세로 선 병사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 병사에게 계급장을 달아주지 않는다. 가족이 오지 않은 병사, 가족이 없거나 아니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경우이겠지… 수료식에 아들 보러 온 부모들에게는 결코 눈에 뜨이지 않는 병사이다. 제 아들만 보였을 것이고 봤다고 해도 저 병사 부모는 아들도 못찾나, 했을 것이다.

위문행사에 참여하러 왔던 <아들사랑 백골사랑> 회원 중에 어머니 한 분이 얼른 달려가 그의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안아주고…… 진짜 어머니처럼 안겨 눈물이 핑 돌았을 그 병사는 평생 오늘 이 '어머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면회장으로 이동하는 병사와 그 가족들. 한 병사에 평균 4명 정도의 가족이 찾았다.
 면회장으로 이동하는 병사와 그 가족들. 한 병사에 평균 4명 정도의 가족이 찾았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수료식이 끝나자 아들의 손을 잡은 가족들이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들고 면회장소로 간다. 하긴 입대 후 훈련기간 동안 얼마나 보고팠겠는가, 얼마나 먹이고 싶은 것이 많았겠는가. 보충대에서 헤어질 때와는 다른 모습, 더 검어진 얼굴, 건강한 아들을 보며 자대로 가야할 3시까지 주어진 시간, 많이많이 먹이고 자꾸자꾸 쳐다보고 만져봐야지…… 어느 부모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부모 회원들은 다시 위문 장소에 모여 병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수료식을 끝내고 신교대장이 사단장과 참모장을 모시고 왔다. 사단의 어른들이 부모 회원 하나하나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사실 음식을 막 준비하던 때에 신교대장이 사단 참모장을 모셔 왔고, 그 자리에서 신교대장이 건의를 했었다.

'여기 부모 회원들은 아들들이 이미 신교대를 수료하고 자대에서 복무중인 분들입니다. 여러 차례 이런 위문 행사를 해 주셨는데 그 보답을 하는 뜻으로 이분들 아들들도 만나게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 때 참모장이 흔쾌히 허락을 했었다. 수행하던 부사관이 부모 회원 아들들의 소속부대, 계급, 이름을 적어갔다. 분명 각 예하부대에 참모장 지시사항으로 전통(전화통지문)이 날아갔을 것이다. '다음 병사들을 지금 즉시 신교대로 보낼 것…' 참모장의 지시사항, 아니 명령이니 예하 부대에서 누가 거역을 하겠는가.

위문장소를 둘러본 사단장이 참모장으로부터 들었다며 오늘 오신 부모님들도 아들들 꼭 만나고 가시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우리 병사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참 고맙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조금 전에 참모장 지시사항으로 내려간 전통은 사단장 지시사항으로 격상되어 하달되었을 것이다. 병사들의 부모들을 향해 장군이, 육군 소장이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뜻하지 않은 반가운 소식, 아들 만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차례 위문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이런 행운도 따른다고 부모 회원들은 행복한 마음이었다. 내 아들도 볼 수 있다는데 어찌 봉사하는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일반 수료생들이 면회를 온 가족들과 손을 잡고 면회장소를 찾는 동안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은 수료생, 그리고 그린캠프 병사들이 속속 위문 장소로 들어온다. 따뜻한 인사로 병사들을 맞는 부모 회원들… 손을 잡아 자리로 안내한다.

병사들의 입장과 함께 시작된 위문행사. 무슨 말이 필요하며 먹는 것에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게다가 점심시간이다. 어머니 회원들이 바빠진다. 밥과 국을 나르는 동안, 미리 차려놓은 피자와 떡 그리고 도너츠와 치킨이 줄어든다. 부족한 것은 더 가져다주고 불판에서는 삼겹살을 굽는다.

어머니 회원들이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쌈을 싸 병사들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그 병사들이 '어머니, 고맙습니다'는 말과 함께 고기를 굽고 있는 어머니 입에 상추쌈을 넣어주기도 한다. 오늘 만큼은 모두가 내 아들들이다…… 바로 부모 회원들의 생각이었으리라.

너는 집이 어디니? 아버지는 뭐하시고? 어머니는? 바쁘시니까 못오셨겠지… 자대에 가면 면회 오시겠지…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은 수료생이기에, 그리고 군 복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기에 가급적이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병사들과 부모 회원 간의 대화가 이어진다. 병사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에 준비한 부모들이 더 행복해 한다. 아들들이 먹기 때문이리라.

참모장, 아니 사단장 지시에 따라 가까운 부대에 있는 병사부터 속속 도착한다. 풀 뽑다가 불려온 병사, 지피 근무 중에 중대장이 직접 인솔해 온 병사, 사격훈련을 하다가 총을 멘 채로 온 병사, 작업 중에 급히 달려온 병사… 그것이 군대라는 조직의 힘이리라. 참모장의 지시, 아니 사단장의 명령에 부모 회원들의 아들들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신교대 위문행사장으로 모였다.

부모 자식 간의 반가움도 잠시, 먼저 와 있는 병사들 사이사이에 앉아 모두가 하나가 된다. 아들 만나려는 목적으로 위문행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다 같은 내 아들들이란 생각으로 그저 오늘 하루 이들에게 어머니 역할, 아버지 역할 해 주기 위한 행사였는데, 사단의 배려로 아들까지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 경우 신교대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가는 길에 철원까지 왔으니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에 잠깐 들러 얼굴이나 보고 가려 했다. 어제 저녁에 철원에 도착하여 아들과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그런 뜻을 전하자 아들 녀석은 일과시간에 면회는 곤란하단다. 섭섭하더라도 그냥 가란다. 대견하기도 했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군이 아닌가. 그런데 사단의 배려로 아들 얼굴을 보고 갈 수 있다. 내게는 행운이었다. 이 역시 군이란 조직의 힘이다.

위문 대상으로 잡았던 수료생과 병사들, 거기에 아들들까지 각 부대에서 왔지만 그래도 준비해 간 음식에 여유가 있었다. 혹시 점심 전인 조교들 있으면 모두 데려오자는 말에 신교대 선임부사관이 움직였다. 잠시 후 도착한 조교들…… 바로 어제까지 훈련병이었던 수료생과 조교들 그리고 자대에 배치되어 근무중인 병사들이 비록 계급장은 다를망정 부모 회원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한 가족이 된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면회 가족이 없는 병사 옆에 앉았다. 슬쩍 가족을 물으니 아버지는 얼굴도 모른단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고. 내 휴대전화를 건네며 통화를 하라했더니 점심시간이라 어머니께서 바쁘셔서 받지 못할 것이란다. 이 병사라고 왜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하느라 바쁠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효심… 나중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다른 병사에게 물으니 그 역시 아버지가 없단다. 어머니 역시 일을 하시고. 생존의 어려움에 면회를 오지 못한 부모. 그들이라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전화를 하라했더니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는데도 받지를 않는다. 모두들 살림살이가 어렵다는데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나 힘들면 외아들 훈련소 수료식에 와보지 못했겠는가.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부모 회원들과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부모 회원들과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부모 회원들이 병사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음식 맛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정사는 물론 군 생활과 훈련병의 어려움까지 오고간다. 어머니가 안 계신 병사, 아버지가 안 계신 병사, 할머니 손에 자란 병사, 우울증 증세가 있는 병사, 너무 내성적이어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 그러나 부모 회원들에게는 그저 내아들과 같은 병사들이다. 그런 어머니 회원들의 배려에 병사들은 마음을 열고 속을 드러낸다.

내가 전화를 하라고 권했던 병사에게 다른 아버지 회원이 휴대전화를 건넸다. 통화가 이루어졌고 그 병사는 곧바로 펑펑 운다. 말로는 괜찮다, 아무 걱정 없다 하면서도 눈가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른 병사도 마찬가지다. 면회객이 없는 병사들… 부모 회원이 건넨 휴대전화로 통화가 이루어진 순간 하나같이 눈자위가 붉어진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외로움에 순간적으로 설움이 복받쳤으리라.

내가 할 일은 그저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한마디 말만 했다. '너 나중에 장가들어 네 아들 입대하면 너는 꼭 아들 면회를 가라. 알았지.'

부모모임에서는 면회 가족이 없는 병사들에게 적은 돈이지만 용돈을 전달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너희들의 어머니를 대신해서 주는 것이다. 나중에 제대하면 너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니 꼭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교관과 조교들이 병사들을 데리고 갔다. 누구는 다시 캠프로 돌아가고 누구는 제2훈련소로 누구는 예하 연대로……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 사이에 벌써 정이 들어 헤어지기 섭섭했다. 저들도 어느 집 귀한 자식들일 텐데…… 다들 내 아들들인데…… 부모 회원들의 마음에 씁쓸한 바람이 분다.

사단의 배려로 잠깐이나마 부모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아들들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계급은 다를망정 모두가 부모 회원들의 인연을 생각해서 우의를 다지라고 했다.

신교대장이 각 부대로 복귀할 병사들에게 1호차와 2호차를 내어줬다. 졸지에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만난 아들들도 즐거웠을 테지만, 사단의 배려에 자그마한 봉사활동이라 생각했던 부모들이 더 행복해 했다.

위문행사가 끝나고 모두 모여 신교대장과 함께 다음 행사를 논의했다.
 위문행사가 끝나고 모두 모여 신교대장과 함께 다음 행사를 논의했다.
ⓒ 이병렬

관련사진보기


수료생들을 데리고 갈 버스가 도착하고 수료생들은 연병장에 모였다. 그 사이에 부모 회원들은 위문행사장 정리를 한다.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정리하는 것도 일사천리다. 씻을 것은 씻고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버리고 보관할 것은 따로 모아 보관하기로 하고… 불판과 식기 등은 다음 행사에 쓸 수 있기에 신교대측에서 따로 보관을 해주기로 했다.

곧이어 신교대장이 와서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모인 김에 여러 부탁의 말 혹은 건의사항이 오가며 이번 행사를 되돌아봤다. 혹 미비했던 점은 없었는지, 더 준비해야 할 물품은 무엇인지…

13년 전에 훈련소의 면회를 금지시키고 대신 100일 휴가를 택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가 13년 만에 다시 면회를 부활한 것은 어떤 근거였을까. 분명 군이나 관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 논리 혹은 군 정책 논리를 나는 잘 모른다. 다만 훈련소 수료일의 면회는 분명 훈련병은 물론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것은 안다. 문제는 가정 형편에 의해 면회를 오지 못하는 병사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그 위화감은 13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아들 하나인 가정이고 그렇기에 가족의 애정, 나아가 면회에 대한 기대와 준비하는 먹거리와 물품 등이 13년 전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면회 가족이 없는 훈련병이 느낄 위화감은 더 클 것이다.

그러니 그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져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은 군에서 따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들을 둔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배려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우리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신교대 정문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참 행복했다. 그저 이들 부모 회원들과 함께했다는 기쁨, 사단의 배려로 뜻하지 않게 일등병 아들 얼굴을 보고 간다는 기쁨, 그리고 부모 회원들의 이러한 위문 행사가 분명 병사들에게 큰 격려가 됐다는 확신의 기쁨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lby56.blog.me/150108357393



태그:#훈련소면회, #신교대수료, #아들사랑백골사랑, #백골사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