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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 통계 숫자로만 심각성을 말할 뿐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빚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의 경험담과 함께 '대출 권하는 금융회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4편에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말>

 

열심히 사는데도 빚이 줄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가 딱 맞는 거 같아요. 물가도, 대출이자도 다 오르는 바람에 그나마 조금씩 하던 저축마저도 올해 들어서는 중단했습니다. 노후준비는 둘째치고 애들 커가면서 교육비 나갈 것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 상담자 강아무개씨

 

강씨는 1억 3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로 인해서 매월 70만 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주택을 구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대출이자는 6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거치기간 3년 후부터 천천히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대출이자가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에 큰 아이의 중학교 진학으로 교육비가 추가지출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물가마저 급등하면서 똑같이 장을 봐도 이전보다 장보는 비용만 10만 원 이상 늘었다. 처음에 주택을 구입할 때만 하더라도 빚 갚으려면 열심히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신용카드도 잘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활비가 부족하다보니 신용카드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한번만 써야지'하고 쓰기 시작한 신용카드 결제금이 어느덧 월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대출이자 내고, 카드값 내고, 보험료 내면 통장에 남는 돈이 없다. 월급이 들어와도 금융회사에서 다 가져가버리니 돈 관리를 해야겠다는 의욕마저 상실해버렸다.

 

악성부채 증가 주원인은 금융회사의 대출 마케팅
 

지난달 28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가계의 금융부채는 937.7조 원으로 전년도의 860조 원보다 8.9%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2010년 국내총생산(GDP)이 1172조 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보고서에서는 제1금융권 은행 외에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회사와 신용카드사의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는 금리가 높은 부채, 신용거래에 의한 부채, 금리변동에 취약한 부채의 비중이 높아져서 부채구성이 좀더 파산위험이 높은 쪽으로 변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은행 이외의 금융회사 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고금리 악성 부채가 늘어난데에는 물가상승으로 기존 생활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종일 대출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점점 빚에 대해서 둔감해지고 관대해지는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물가가 올라서 생활이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소득 범위에 맞춰서 살기 위한 노력을 했을 테지만 대출광고들은 그런 노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쉽게 가져다 쓰면 해결 될 텐데 뭐하러 있는 돈에 맞춰서 살려고 바동거리느냐고 하루종일 떠들어댄다.

 

"고객님은 2000만 원까지 가능합니다."
"VIP 고객님에게 금리를 할인해드립니다. 다음달까지 대출 이용고객에게 금리 10%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성인이라면 위와 같은 문자나 우편물을 한번쯤은 받아보았을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TV부터 시작해서 전화, 이메일, 우편물, 전단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광고수단을 가지고 전방위적으로 대출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보통의 광고가 그렇듯 대출광고 역시 자사 대출의 장점만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쉽고, 빠르고, 금리가 낮으니 빨리 가져다 쓰라는 식이다.

 

그 어떤 광고도 대출을 이용하면 금융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때론 신용등급이 하락해서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대출을 이용하지 못 할 수도 있으며, 과도한 부채는 가정경제를 병들게 하고, 연체하게 되면 당사자의 금융거래가 정지가 되고, 재산을 압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돈이 부족하면 빌려쓰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곳이 워낙 많다보니 가계부채는 금액도, 종류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주택담보 대출 하나였지만 이제는 마이너스통장과 약관대출, 카드론까지 4가지 부채를 사용하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은 은행에서 평소에는 월급통장으로 쓰다가 급할 때만 꺼내 써도 된다고 해서 만들었지만 쓰다 보니 어느덧 한도를 다 채웠다.

 

약관대출은 내가 낸 보험료에서 잠깐 꺼내 쓰는 것이라 금리가 비싸지 않다는 보험사 상담직원의 말을 듣고 사용하게 되었다. 카드론은 우대 고객에게만 이벤트 기간동안 10%도 채 안 되는 금리를 적용해준다고 하니 일단 당장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생각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대출이자로만 17만 원이 추가지출 되어 월급통장은 더욱 빈곤해졌다. 심지어 신용등급이 하락해서 한도까지 끌어다 쓴 마이너스 통장이 연장이 되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연장이 된다 하더라도 금리가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빌린 사람과 빌려준 사람,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는 문제제기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계부채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주택담보대출의 80%가 이자만 갚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9억 원 이상 고가주택을 차입한 고소득자들도 예외가 아닐 정도로 심각해서 가계부채 문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은 대출영업을 자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대출을 늘리고 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연간 1조 3천억 원이던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은 2010년에는 1월부터 9월까지 불과 9개월동안 3조1천억 원 규모로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부업체 역시 상위 5개사의 2010년 마케팅 비용이 1867억 원으로 2009년에 비해 무려 72%나 증가했다.

 

이로 인해 2010년 카드론 잔액은 23조 9000억 원으로 2009년에 비해 42.3%나 증가했으며 대부업체 역시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둬들였다. 그 결과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주요국가들의 부채가 조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만 부채가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부추겨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신용사용으로 월급이 들어와도 며칠만 지나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가정이 상당수다. 금융회사들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빚을 권해 가정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키는 약탈적인 속성을 보이고 있다. 가정의 현금흐름이야 어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쉽고, 빠르게, 높은 금리로 대출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다 대출을 못 갚는 상황이 되면 과연 빌린 사람만의 잘못일까? 오히려 가정경제를 망가트린 금융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한 대출영업을 지속한다면 흡연 탓에 암에 걸렸다고 담배회사에 소송을 하는 것처럼 대출 탓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금융회사에 소송을 하는 사례가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정을 극단적인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대출의 위험성에 대해 금융회사는 아무런 경고도 해주지 않으니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박종호 기자는 에듀머니(http://www.edu-money.co.kr/EduMoney/Index.aspx)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가계부채 악성화, #대출 마케팅, #에듀머니, #약탈적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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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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