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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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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지갑속에는 평균 4.6매의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그 카드는 소비 생활 전반에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다. 껌 한통도 카드를 통해 구매한다. 전기요금이나 핸드폰 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매월 카드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이미 후불로 지불하는 공과금을 카드로 결제하면서 한 번 더 결제 지연을 시키는 셈이다.

소비의 동선까지도 카드의 포인트와 할인 구성에 맞춰 움직인다. 간단한 식재료조차 가까운 슈퍼에서 구매하게 되면 포인트 적립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 같아 용납되지 않는다. 할인이 가능한 특별한 날은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결제 창에서 두드러지게 반짝이는 선결제 방식을 무의식중에 누르고 결제금을 포인트로 갚기 위해 일정이상의 카드 소비를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갖는다. 이렇게 카드를 사용하면서 공짜의 혜택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카드 한도는 그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달간 벌어들이는 소득의 3배 가량 된다. 한도 전부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때로 한도에 대한 자신감으로 할부까지 이용하고 나면 월급날 결제금이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월급날은 이미 카드 회사의 몫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어쩌면 월급을 타는 당사자보다 카드사들이 고객의 월급날을 더 반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신용카드가 우리의 소비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월급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고가의 최신 전자제품 앞에서, 평소 탐내던 명품에 눈을 뗄 수 없을 때 신용카드는 우리를 망설이거나 구매여력을 따져보는 구질구질한 불편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울한 월급날 쯤은 이미 오래된 관성으로 여긴다. 어짜피 쓸 때 썼을 뿐이고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에 잠시 우울할 뿐 그 이상의 소비 쾌락을 충족시킨 대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그만이다.

쾌락충동을 좇다, 월급날 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

그러나 편리성이 가져다 준 달콤한 소비 쾌락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는다. 심리학에는 새로운 환경 변화, 혹은 새것이 주는 쾌락에 사람이 금세 적응해 버린다는 이론이 있다. 일명 '쾌락적응'현상이다.

이 쾌락적응 현상으로 새것에 대한 황홀함에서 우리는 금세 냉정을 찾는다. 그러나 잠시 느낀 쾌락은 여전히 달콤하다. 다시 그 느낌에 사로잡히고 싶다. 곧바로 또 다시 쏟아지는 새것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쾌락에 대한 충동과 그 쾌락에 금세 적응해 버리는 놀라운 능력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광고와 수많은 마케팅 장치들과 결합하면서 끝도 없는 욕구불만에 갇히게 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쾌락충동을 쫓으면서 카드 결제금은 한 달 소득의 상당부분을 카드사에 저당잡히는 일상으로 몰아간다. 결국 편리한 소비가 가져다 주는 잠시의 쾌락을 위해 월급날에 대한 기대심과 노동의 보람을 포기한 셈이다.

의식적으로 우울한 월급날을 잊고 합리화시켜도 마음속 깊은 두려움마저 제거하기는 어렵다. 카드값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자괴감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적성을 고려한 이직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소비의 불편에서 해방된 우리는 카드 결제금의 쳇바퀴에 갇혀버린 채무 노예신세나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부터 신용카드에서 벗어나는 것의 시작이다. 신용카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카드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신용카드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카드사에서 좋아하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속성이다.

카드 할인에 집착하게 됐다면, 과감히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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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의 저자 마이클 모부신에 의하면 스스로가 약간의 통제권을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통제 능력을 실제보다 높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카드사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에 의해 복잡하게 설계된 부가 서비스와 혜택들을 제대로 챙길 수 있다거나 혹은 이미 충분히 챙기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혜택들이 알고 보면 필요이상의 소비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카드사의 부가 서비스와 혜택들은 치밀하게 설계된 미끼일 뿐이었다. 그 치밀성은 사람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도 충분히 활용한다. 손실회피 성향이란 이익에는 둔감하지만 손실에는 민감해지면서 손실을 회피하는 경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주어진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소비하게 되면 부가서비스와 혜택을 이용하지 못해 손해를 본다는 심리를 이용했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마케팅 기법으로 사람들의 소비 동선까지 지배하기 충분한 것이다.

상담 중 어느 고객은 카드와 연결된 주유소를 반드시 이용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달 동안 어느 정도의 금액을 할인 받으셨나요?'라는 질문에 순간 그 고객조차 민망한 목소리로 '5000원이요'라고 답했다. 물론 카드 사용이 주유 할인을 위한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이용된다면 작은 금액이라도 할인 받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할인이 미끼가 되어 재정 운영 전반에 문제가 생긴다면, 또는 그 할인을 위해 주유소 이용에 강박이 존재한다면 할인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하지 않겠는가. 카드를 없애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의 카드 사용에 있어서의 여러 함정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 카드와 관련된 기존의 통념들을 철저히 의심해봐야 한다.

'불편한 소비'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카드를 없애기 위해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소비 지출 구조를 따져보고 적정 수준의 소비와 저축 예산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일상적인 생활비 지출은 예산액 만큼 체크카드에 미리 잔액을 넣어두고 그 범위내에서 불편하게 소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소비가 불편해 진다는 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소비 과정에서 사람들은 합리적인 소비 의사결정과정을 거친다. 체크카드에 넣어둔 예산만큼의 잔액이 소비 과정에서 사람들을 '생각하는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다. 필요한가? 이 소비를 통해 정말 스스로 지속적인 만족감을 가질 것인가? 라는 생각말이다. 이것은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그 불편으로 인해 소비의 질이 높아진다.

기업의 무차별적인 마케팅과 광고가 만들어낸 욕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소비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통장에 잔액이 늘 일정이상이 남겨져 있다는 데서 심리적으로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카드 사용을 중단한 많은 소비자들은 소비를 할 때마다 필요와 만족을 따져묻는 자신이 스스로 깨어있는 소비자가 된 것 같아 대견하다고 말한다. 일상적인 소비 과정 전반에 자존감이 살아나는 것이다. 월급날 뭉칫돈이 결제금액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도 대단한 기쁨을 준다. 자신의 인생에 결제일이 사라졌다고 소리치는 상담자도 있었다.

이제 과감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이별을 위한 계획을 세우자. 바로 실행하기 어렵다면 2,3개월 정도를 계획을 잡고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를 함께 사용하면서 신용카드 사용액을 점차로 줄여나가는 전략을 가져보자. 어느날 당신도 월급날의 보람을 다시 찾았다고 소리치게 될 것이다.


태그:#신용카드, #카드대란, #신용카드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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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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