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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만 원짜리 방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는 옷, 과자봉지, 수건들. 뷔페 알바를 하고 돌아왔더니 몸에선 땀 냄새와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러니 우선 씻고 나서 대충 방 정리하자고 생각하지만 씻고 나와 나는 침대에 몸을 던져 곯아떨어진다.

다시 눈을 뜨면 어느새 알바 갈 시간. 어느 땐 오전 9시에 시작하기도 하고 어느 땐 오후 5시에 시작하기도 한다. 대체로 오후 10시에 알바가 끝난다. 몸이 고되지만 뷔페알바는 나쁘지 않다. 하루 끼니를 주로 라면으로 해결하는 나로서는 뷔페에서 먹을 수 있는, 물론 손님이 다 나가고 마감을 하면서 먹을 수 있긴 하지만,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음식 솜씨 없는 엄마가 해주는 삼계탕이 먹고 싶지만.

'뚝' 끊긴 지원, 학교 다니려면 돈을 벌어야

대학 진학으로 자취를 하고 있다. 처음 2년은 학교 근처에서 제일 싼 고시원에서 살았다. 화장실도 공용, 샤워실도 남녀공용이었다. 고시원의 그 작은 공간에 몸을 누일 때면 나만 세상에 동 떨어져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누워 있자면 관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대학생들과 그리고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의 학생들이 부러웠다.

기숙사는 애초에 없었다. 아예 기숙사가 없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있는 특수 단대를 빼고는 기숙사에 들어 갈 수 없었다. 그 친구들은 등록금도 내지 않았다. 가끔 생각했다. 내가 낸 등록금은 사실 다 저들을 위해 필요한 건 아닐까. 내가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은 참 많은데 그리고 짐의 무게는 참 큰데, 저들은 그보다는 적겠구나. 참 좋겠다.

학교가 시립대여서 다른 사립대에 비해서는 등록금이 "싸다"고 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 불안한 수입원으로 사는 부모님께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처음 1년 정도만 제대로 대주셨고 - 친척들에게 꾸고, 대출을 받아서 - 그 이후에는 어려웠다. 결국 두 번의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되었고 앞으로 남은 두 학기도 학자금 대출을 받을 예정이다.

알바를 해도 알바를 찾는 나는 '돈없는' 대학생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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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1년 넘게 휴학 중이다. 작년부터 집으로부터 방세, 생활비, 등록금 등에 대한 지원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학기 중 알바나 일부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에 돈을 보태곤 했지만, 이따금 용돈을 받아야 했다. 학기 중에 하는 알바로는 도저히 방세를 비롯해서 식비, 공과금, 핸드폰 요금, 교통비 등등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근데 혼자서 그것들을 감당하게 되면서 나는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원망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당연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내 선택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부모님은 어떤 부채감에서인지 자신들이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근데 정말 다 내가 감당해야 되는 게 맞는가? 그러니까 내 말은 부모의 도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과연 정말 오롯이 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의 대학진학률을 생각해보면 의문이 들곤 한다.

알바를 하며, 알바 거리를 걱정하며 나는 한숨을 내쉰다. 나의 대학 진학은 무엇을 위함이었나? 알바? 취업? 스펙? 뭐든 간에 대학생들은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미친 등록금의 나라>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책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미친 등록금이지 않은가. 정말 미친 등록금의 나라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대학생인 내가 안 미쳐갈 수 있을까.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오는 게 무섭다는 엄마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받기 망설여진다', '딸 생일이지만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한 통 하기 어렵다'는 엄마. 영화 <애자>의 한 장면.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받기 망설여진다', '딸 생일이지만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한 통 하기 어렵다'는 엄마. 영화 <애자>의 한 장면.
ⓒ 시리우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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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버스나 전철에서 뿐이었다. 책을 읽고 정식(?)으로 서평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2주째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으니까. 통장 잔고는 거의 항상 바닥이었고, 집에 전화할 수도 없는 나는 도시가스가 끊긴 지 한참이 되었지만 별 뾰족한 수 없이 찬 기운의 방에서, 아리는 찬물로 손을 씻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도 한 달에 손에 들어오는 건 70만 원 남짓이다. 방값 33만 원, 공과금 10만 원, 핸드폰 비 4만 원, 교통비 7만 원,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저축은커녕 지금처럼 공과금을 못 내기가 일쑤다. 결국 등록금 때문에 휴학했지만 나는 근근이 생활비를 벌고 있다. '알바 하나를 더 구하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나는, 대학생이다.

집에 전화해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지만, 가끔 누구에게든 힘들다고 말하고 싶어 부모님을 떠올려보지만, 이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게 된다. 통화를 자주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엄마는 긴장하곤 한다고 한다. 그 말을 작년에 듣고 한참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원망했다.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받기 망설여진다', '딸 생일이지만 돈 달라고 할까봐, 전화 한 통 하기 어렵다'는 엄마. 나는 '돈 없는' 부모에게 그런 존재이다.




태그:#등록금, #반값등록금, #미친등록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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