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 5학년 아이들에게 다른 교과서는 다 나눠주고 다음 주에 6학년 영어교과서가 왔다. 책을 받아든 아이들이 화를 낸다.

"아니, 우리가 대학생인 줄 알아요? 왜 이렇게 책이 두꺼워요."

가뜩이나 부담이 되는 과목인데다 책까지 5학년 책에 비해 너무 두껍고 무거워 순간적으로 화가 났나보다.

"선생님이 6학년에 가면 영어시간이 늘어서 1주일에 3시간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방학 때 5학년때 배운 것 제대로 복습해야 6학년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고 숙제도 내줬구요."

그러고 보니 책이 두껍긴 두껍다. 대학때 원서로 된 전공서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 내용은 200쪽인데, 학습자료인 부록이 두꺼워 600쪽에 가까운 두께이다. 지금은 두껍다고만 불평하지만, 3월부터 수업이 시작되면 시간도 늘어나고 양도 늘어서 영어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할까?

올해 5, 6학년이 배우는 영어국정교과서입니다. 주당 수업시간이 3시간으로 늘어나고 교과서뒤에 수업자료가 붙어서 전에 비해 매우 두껍고 무거워졌습니다. 이 교과서는 올해 1년만 쓰고 내년부터는 검정교과서로 바뀝니다.
 올해 5, 6학년이 배우는 영어국정교과서입니다. 주당 수업시간이 3시간으로 늘어나고 교과서뒤에 수업자료가 붙어서 전에 비해 매우 두껍고 무거워졌습니다. 이 교과서는 올해 1년만 쓰고 내년부터는 검정교과서로 바뀝니다.
ⓒ 신은희

관련사진보기


올해부터 초등학교 5, 6학년 영어시간이 주당 2시간에서 주당 3시간으로 늘어났다. 이명박정부가 영어공교육강화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겠다며 2008년도에 초등학교 3-6학년 영어수업시수를 1시간씩 늘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국의 많은 초등학교에서 주당수업시수를 늘려서 초등학교에서도 7교시가 등장하고 있다(영어배우자고 초등학생도 7교시?). 그런데, 올해 6학년의 경우 수업시간과 학습부담만 늘었을 뿐 정작 영어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02시간 결손, 고작 6시간으로 해결?

올해 6학년은 작년까지 7차 교육과정으로 배웠는데, 올해 배우는 영어는 2008개정교육과정(2007개정교육과정에서 영어시수만 늘어난 교육과정)이라서 102시간의 학습결손을 안고 있다. 즉 이 아이들은 3-5학년 영어시간이 주당 1-1-2시간(34주기준 총 136시간)공부하였는데, 올해 배워야 할 영어는 3-5학년때 영어를 주당 2-2-3시간(238시간)을 배운 것을 기준으로 만든 교육과정이 때문이다. 그래서 6학년 교과서를 바로 배울 수가 없어 보충학습을 받아야 한다.

교과부는 6학년 학생들의 학습결손 해결을 위해 6시간 분량의 보정자료를 만들었다. 교사들에게 홍보자료도 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102시간 분량을 고작 6시간으로 해결하였을까? 내용을 보니 거의 5학년때 나온 내용이다. 새로 나온 5학년 교과서와 비교해보니 읽기와 쓰기 내용을 짜깁기하고 작게 편집해놓았다. 즉 5학년 16단원을 6시간 분량으로 압축한 것이다.

미리 준비해요는 2008개정교육과정 5학년 영어교과서를 학습하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위한 보정 자료입니다.(6학년 영어교과서 차례)

6학년 영어교과서 진도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요>라는 내용으로 26쪽 분량이 보정자료가 나와있습니다. 6시간동안 이걸 공부하고 6학년 공부를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6학년 영어교과서 진도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요>라는 내용으로 26쪽 분량이 보정자료가 나와있습니다. 6시간동안 이걸 공부하고 6학년 공부를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정말 이 6시간 보충학습으로 6학년 아이들의 학습결손이 해결될까? 교과부가 자랑했던 것처럼 사교육 안받고 영어수업만으로 초등학교 수준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까?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이명박 정부가 무리해서 영어수업시간을 늘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당 3시간 해도 문철법(파닉스)는 여전히 못배워

게다가 이 학생들은 7차교육과정의 치명적 오류인 문철법(이하 파닉스)를 여전히 못배운다.(4년 배워도 눈뜬 장님 만드는 영어공교육) 2008개정영어교육과정은 읽기와 쓰기를 강조하면서 3학년 2학기때부터 4학년까지 파닉스(phonics)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6학년 학생들에게 영어결손부분을 보충할 때 당연히 이런 것까지 가르칠 줄 알았는데 교과부는 3, 4학년 내용은 빼고 5학년 내용만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초등영어홍보사이트입니다. 문자언어학습을 강화시켜서 중학교 영어학습과 자연스럽게 연계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교과부의 초등영어홍보사이트입니다. 문자언어학습을 강화시켜서 중학교 영어학습과 자연스럽게 연계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phonics는 'dog'라는 단어를 'd(드)', 'o(아)', 'g(그)'를 모아서 '다그'라고 읽을 수 있는 법칙이라고 보면 된다.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울 때는 당연히 단어 읽는 법을 배웠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영어에서 말하는 것만 중요하게 보고 정작 다른 나라 언어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학원에서만 배웠다. 그래서 공교육만 받은 아이들은 4년간 450개의 단어를 배우지만 읽는 법을 모르고 그림처럼 외우기만 하다가 부진아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수업시간을 늘렸지만 여전히 눈 뜬 장님 만드는 영어교육을 못 면하고, MB의 영어 공교육정책이 뻥이라는 게 들통난 것이다.

읽는 법도 안 가르치고 520단어를 외워라?

그런데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영어시간이 늘어난 6학년은 읽는 법도 안 가르쳐주고 70개나 더 늘어서 총 520단어를 통으로 외워야 할 상황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과부 초등영어홍보사이트의 자료입니다. 7차보다 영어단어를 70개 늘려 520개를 익혀서 자연스러운 영어표현을 가능하게 한답니다. 문제는 올해 6학년에게는 읽는 방법도 안가르치고 그냥 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과부 초등영어홍보사이트의 자료입니다. 7차보다 영어단어를 70개 늘려 520개를 익혀서 자연스러운 영어표현을 가능하게 한답니다. 문제는 올해 6학년에게는 읽는 방법도 안가르치고 그냥 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 교과부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면 주어진 교육과정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5학년까지 7차교육과정으로 배운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한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탄력적으로 적용했어야 한다.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니 102시간을 다 보충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3, 4학년에 파닉스를 배운 것을 전제로 5학년에 읽기와 쓰기가 강화된 새 교과서의 특성을 무시하고, 5학년 것만 보충한다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교과부에서 스스로 사교육이 스며들 틈을 만들어 주는 거 아닌가? 영어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목청높인 영어확대론자들은 이러고도 영어실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할까?

이런 사태의 밑바탕에는 그간 교과부가 학교 현장이나 학생들 보다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하고 싶은 일만 하거나 관료제의 틀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9년부터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가운데 정권의 압력으로 2009개정교육과정개정으로 교육과정이 계속 바뀌고, 교육과정 담당도 수시로 바뀌는 가운데 상황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영어 일제고사는 뭘 평가할까?

올해 6학년은 7차와 2007개정교육과정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교과별로 못배우거나 중복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학기분량이고 영어, 과학 등에서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조금만 신경쓰면 주어진 시간 안에서 충분히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교과부에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과연 일제고사 진도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사회과 과학은 일제고사 과목에서 빠졌다. 겉으로는 학습부담을 줄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학습결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래도 영어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초등학교에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균형있게 가르쳐서 중학교와 격차를 줄인다고 자신했는데 파닉스도 안 가르치는 치명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졸업시킬까? 교과부는 책무를 저버린 채 일선 학교들에만 일제고사 결과로 기초학력 운운하며 책임을 따질 것인가?

또 올해 6학년의 손상된 학습권은 대체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 이래저래 학부모와 교사들의 한숨만 깊어진다.

덧붙이는 글 | 교과부는 지금도 현장의 어려움을 살피기보다는 부족한 인원으로 2009개정교과교육과정 만드는 데 집중하고, 학자들도 돈되는 일에만 매다려 있습니다. 지금의 교과부 체제로는 현장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교과부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합니다.



태그:#6학년 학습결손, #영어교육, #2008개정교육과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