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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졸업을 했기에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대학 3학년 때까지 방학의 시작은 내게 고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한 번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든 알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립대학 등록금을 내는 일은 월급을 차곡 차곡 모아서 아파트를 사는 것만큼 힘들다.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학기 400만 원의 사립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능하기도 하다. 바로 학기 중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서 틈틈이 돈을 모으고, 방학 때는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감내하면 된다. 물론 안 쓰고, 안 먹는 전제 하에서.

 

시급 4320원을 전제로 학기 중 주말 알바를 하고, 방학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쉬고 8시간 일을 해도 사립대학 등록금을 내기에는 80~100만원 정도 모자란다. 대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내기 위해선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을 더 하고, 시급을 많이 받기 위해서 좀 더 힘든 일을 해야만 한다. 지금부터 대학 3학년 때까지 등록금을 내기 위해 했던 암울하지만 '반짝반짝 빛났던' 대학생활의 등록금 분투기를 말하려고 한다.

 

제대 후 복학 등록금은 내 손으로, 근데 이건 뭐

 

군대를 막 제대한 예비역들은 으레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해, 자기 힘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나또한 스물넷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얇아진 부모님 지갑을 위한다고 등록금 정도는 내가 해결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입대 전에 피자집 주방 일부터 호프집, 백화점 판매원까지 두루 일을 해봤기 때문에 대충 서비스업의 임금 수준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친 등록금'을 내기 위해선 좀 더 파격적인 일당의 일이 필요했다.

 

제대 후 첫 아르바이트는 대형 용역회사로부터 일을 받아서 하는 중소용역회사 보안요원이었다. 처음 투입된 곳은 토건국가의 상징인 모델하우스를 조합원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이었다.

 

장정 6명이 모델하우스를 지켰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셔츠를 입고, 부동자세로 모델하우스 정문에 서 있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조합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려고 하면, 몸싸움을 해서라도 시설을 지켜야만 했다. 몇 번은 모델하우스로 출근했고, 몇 번은 공연장으로 출근했다. 공연장에서 일을 할 때는 팬들로부터 스타들을 지키는 일이었다. 

 

한 달 좀 안 되게 일했지만, 양심에 찔리는 데다가 돈도 제대로 안 들어오고 해서 그만두었다. 정장을 입고, 10시간 조금 넘게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8만원 정도를 받았었다. 보안요원 일을 그만두고 했던 일은 바다이야기였다. 일자리도 좀처럼 구하기 힘든 시기였는데, 바다이야기류의 성인용 아케이드 게임물의 구인광고는 넘쳐났다. 임금도 당시 내가 받을 수 없는 임금이었다.

 

바다이야기에서 내가 했던 일은 손님들 심부름과 게임진행을 하는 일이었다. 가끔씩 전단지를 뿌리는 일도 했다. 한 게임에 만원씩 했기 때문에 손님들을 장시간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게임장에는 모든 게 구비되어 있었다. 게임하면서 끼니를 굶지말라고 매끼니 때마다 김밥이 나왔고, 케이크, 빵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다.

 

또한 잠을 잘 수 있는 안마기 딸린 휴식 공간이 있었다. 샤워실을 빼놓고 없는 것이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알바생들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게임의 흥을 돋구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게임진행 멘트를 했고, 담배심부름, ATM 출금 심부름 등 갖가지 서비스를 했다. 

 

이따금씩 여자 손님들도 있었지만, 남자들이 점유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욕설을 듣기는 기본이었고, 하루에 두세 번 오는 삼촌은 군기를 잡는다고 지나가며 몇 대씩 때리곤 했었다. 이따금씩 고래찬스를 잡는 손님들이 기분으로 팁(일명 뽀찌)을 챙겨주었기 때문에 몸과 정신은 고됐지만 견딜 만했다.

 

하루 일당 7만원과 팁으로 3~4만원 챙겨갔기 때문에 수입은 짭짤했다. 하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와 노동강도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했고, 새벽 1~2시까지 술을 마셨다. 당연히 학업은 게을리 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의 술자리에서 같이 일했던 알바생들과 진상 손님들에 대한 뒷담화가 주를 이뤘다.

 

20대 초반 여직원들은 은근히 터치하는 손님들과 함께 데이트를 하지 않겠냐는 아저씨들의 성희롱을 견뎌야 했고, 남직원들은 돈을 잃은 손님들로부터의 짜증과 욕설을 견뎌야했다. 그러나 바다이야기나 오션파라다이스 같은 성인게임장의 알바를 평생 할 건 아니었기 때문에 목돈에 대한 욕심으로 궂은 노동을 버텼다. 대부분의 알바생들은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었다. 바다이야기의 업주가 하루에 버는 돈의 1%도 안 됐지만, 당시 월수입이 230~240만원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일했었다.

 

어학연수? 16시간 넘게 접시 나르면서 배운 영어

 

바다이야기의 일이 지루해질 즈음 구직사이트 알바몬에 올린 이력서를 보고, 이태원의 태국레스토랑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난생 처음 본 영어면접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팝음악을 놓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듣기는 별 문제가 안 되었다. 캐나다인 사장은 몇 마디를 물었고, 나는 시켜만 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고용이 되어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이야기'에서만큼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알바생 임금이 시급3500원이던 시기에 4000원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나는 풀타임 웨이터였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새벽 2~3시 마감까지 일을 한 적이 수도 없었다.

 

오전 10시에 도착해서, 오픈 준비를 하고 새벽에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일까지 맡았다. 새벽까지 일을 하면 택시비를 받았다. 택시타고 한남대교를 건널 때 하루 동안 번 돈과 팁을 계산하면서 뿌듯했다. 새벽까지 일을 했어도 다음 날 아침 출근이었다.

 

근무시간이 14시간을 넘어가면 정신이 몽롱해진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때부터는 몸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팁을 합치면 일급이 꽤 센 편이었기 때문에 힘들지만 버틸 수 있었다.

 

이태원에서 일을 하면서 남들 다 간다는 영미권 어학연수를 1년 한 정도는 아니지만, 꽤 영어 실력을 높일 수 있었다. 2학년 때의 등록금은 이태원에서 일을 하면서 낼 수 있었다.

 

시급 4320원 시대, 등록금은 천만원 시대

 

아르바이트(Arbeit)는 독일어로 '노동하다'는 뜻이다. 이 말이 건너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르바이트는 본업이 아닌 부업, 학생이 학업이외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일정시간 투자해서 행하는 모든 일을 뜻한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살인적인 등록금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에서 쓰이는 파트타임잡(Part time job)과는 확실히 의미와 목적이 다르다. 시급 4320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1년에 천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하다보면 본업인 학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학자금을 대출해서 금리 4.9%의 빚을 만들던가, 아니면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는 대학생들에게 학업과 아르바이트, 빚 셋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세계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는 미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장학제도가 잘 되어있고, 소득에 따라 등록금을 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등록금의 부담이나 학자금으로 빚더미를 떠안을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의 대학생들은 '미친등록금'을 벌기 위해 유흥가로 빠지기도 하며, 피자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기까지 한다. 또한 4320원의 최저임금을 받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감내한다. 심지어 대학생활 동안 공부만 해서 과수석을 해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지 않는 학교도 많다.

 

설동근 교육부차관은 지난 1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아르바이트를 한다기보다는 든든한 학자금 대출을 잘 활용해 부담을 줄일 것"을 주문했다. 한 마디로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고, 대출을 해 본업인 공부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대학 4년 동안 빚쟁이 될 수 있게 정부가 돈 빌려줄 테니, 졸업하면 열심히 일해서 갚으란 소리이다. 교육을 사회적 책임으로 보지 않고, 시장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이런 나라 어디에도 없다. '미친등록금'의 시대에는 대학생활의 낭만은 죽은 지 오래이다. 대학 총장님들은 혹시라도 낭만적일지도 모르겠다.


태그:#등록금, #반값등록금, #미친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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