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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길에서 바라본 영금정과 등대전망대의 모습
 방파제길에서 바라본 영금정과 등대전망대의 모습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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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속초 동명항에 위치한 영금정 또한 사진속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이끌림에 찾아간 곳이다. 드넓은 바다에 비하면 조그만한 돌덩이에 불과한 바위에 간신히 몸뚱이 하나 올려놓고 넘실대는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속초는 잘 알려진 생선구이, 갯배뿐만 아니라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지역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 코스로 아바이 마을을 방문한 우리는 그곳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부둣가를 따라 동명항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다니느라 진이 빠졌는지 영금정으로 이동하는 동안은 모두 조용하다. 예정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일 수도 있겠다. 발이 따뜻하라고 신은 어그 부츠는 이미 눈으로 뒤덮이고 그 눈이 녹아 물이 되어 속까지 스며들었다. 발이 다 젖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으며 숙소를 지나가는데 잠시 유혹에 흔들린다.

"우리 숙소에 들어가서 발 좀 말리고 갈까?"

모든 일정을 혼자서 계획했던 나는 일행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묻는다. 사실 그렇게 물으면서도 정해진 일정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아니"라는 답을 기대하고 있다.

"아니야. 숙소에 들어가면 퍼져서 다시 나오기 싫을 것 같아."

잠시 주춤하며 망설이던 일행이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바이 마을에서 영금정까지는 도보로 약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눈길이라 조심스럽게 걷느라 조금 더 걸린 것이다. 날씨가 따뜻하다면 걷기 편했을 수도 있지만 도보여행에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있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 아닐까? 게다가 눈이 수북히 쌓인 길을 걷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위의 영금정에서 바라본 아래쪽 영금정의 모습과 그곳을 이어주는 철교
 위의 영금정에서 바라본 아래쪽 영금정의 모습과 그곳을 이어주는 철교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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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靈琴亭). 그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름에 거문고 금(琴)자가 들어간 걸로 봐서 분명 거문고 소리와 연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영금정은 동명항 근처 암반에 붙여진 이름으로 1926년에 발간되었던 <면세일반>이라는 책에서 그 첫 기록을 찾을 수가 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신령스러운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영금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예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돌산으로 이루어져 바다 위의 울산바위라고 불리기도 했다. 장구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장구바위, 북소리를 낸다고 해서 북바위라고 이름 지어진 바위들도 지척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시대 말기에 속초항이 개발되면서 모두 파괴되고 지금의 영금정만 남아 있게 되었다.

또한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이곳 일대를 비선대(秘仙臺)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목욕을 즐기며 신비한 음곡조를 읊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동명항에는 육지에 하나, 바다에 하나 2개의 정자가 있고 그 둘을 다 영금정이라고 부른다. 계단을 올라 육지의 영금정에 오르면 동명항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또한 바다 바위에 놓인 한 개의 정자와 그곳을 이어주는 다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들어보겠다고 생각해놓고는 높은 파도의 장엄함에 취해 까맣게 잊어버렸다. 시각은 청각을 지배한다.

아래쪽 영금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슬아슬한 철교를 지나야 한다
 아래쪽 영금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슬아슬한 철교를 지나야 한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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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의 영금정은 다리를 건너가야 만날 수 있다.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동명동의 옛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1930년대 후반의 동명항에는 레일이 깔려 있었다. 이는 속초항 방파제 축조를 위해 영금정에서 채취한 암반을 운반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다. 1956년, 강원도의 해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바위산들은 방파제 축조를 위해 파괴되고 영금정은 외로운 자태를 보여준다.

그 당시 속초 등대 아래 마을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고, 해변에는 생업을 위한 덕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도로와 속초항 여객선터미널들이 들어선 동명항 삼거리의 80년대 모습은 생소하기만 하다. 매립이 되기 전이라 항구의 모습이 드러난다. 불과 30년 전,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쯤 속초의 모습은 이랬었구나.

영금정으로 이동을 위해 다리를 건너는 발걸음이 왠지 아슬아슬하다. 불시에 솟구치는 파도는 언제 이 다리를 덮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다리를 건너 영금정에 닿았다. 바다와 가까워져 파도가 코앞에서 일렁이는 데도 지붕 하나 달렸다고 다리 위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낫다. 탁 트인 바다가 발아래 있으니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등대전망대로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철제계단은 눈,비가 올 경우 안전사고가 걱정된다.
 등대전망대로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철제계단은 눈,비가 올 경우 안전사고가 걱정된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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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에서 등대로 가는 길은 친절하게 표지판이 안내를 해준다. 그것만 잘 따라가면 이내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른다. 그런데 이놈의 계단이 하필 철제로 만든 계단이다. 거기에 눈이 잔뜩 쌓였으니 얼마나 미끄러운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앞서 가던 일행이 난간을 부여잡고 거북이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며 거의 죽을상이다. 길기도 한 계단을 발바닥에 힘을 잔뜩 주고 걷자니 온몸에 쥐가 날 것 같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일행 중 한명이 중간쯤에 멈춰 있다.

"언니. 안 올라올 거야?"
"응. 무서워서 못 가겠어."

그러던 언니가 잠시 후에 눈 앞에 나타났다.

"안 올라온다며."
"서있는데 뒤에 오던 아저씨가 올라가면 내려갈 때는 반대편 나무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올라왔지."
"아저씨가 뻥친 거 아냐?"
"아니야. 분명히 있다고 했어."

언니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믿고 싶은 의지를 나타냈고, 난 그런 언니가 귀여워서 계속 거짓말이라고 겁을 줬다.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명항의 모습
 등대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명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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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등대전망대는 등대동과 홍보 마당, 숙소동, 빛의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개방시간은 하절기 06:00~18:00, 동절기 07:00~17:00까지이며 야간에는 출입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등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좀 안되었다. 그런데 전망대가 벌써 문을 닫아버렸다.

기후 때문에 방문객이 적어서 일찍 문을 닫은 것 같다.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들로 아쉬움을 달랜다. 돌아나오는 길 홍보 마당과 빛의 마당을 지나지만 눈이 쌓여 그것마저도 제대로 둘러볼 수 없다.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뒤쪽 등대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나무계단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앞쪽 철제계단에 대해서는 시자체에서의 빠른 조치가 필요한 것 같다. 계단 전체를 나무로 바꾸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바닥에 고무타일이라도 깔아서 조치를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24133192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속초, #강원도, #동명항, #영금정, #등대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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