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UFC헤비급 파이터인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7·크로아티아)의 최대 매력 중 하나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것들은 거들떠도 안보는 이른바 '까칠남' 이미지다.

 

전성기였던 프라이드 시절 수시로 기자회견을 불참하는가 하면 싫은 상대들과는 얘기조차 섞지 않았고 다소 억울할만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기보다는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크로캅의 스타일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열성 팬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지만 반대로 안티 팬들은 오만하다는 이유로 큰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크로캅은 예전부터 그날의 컨디션이 얼굴에 보이는 선수였다. 어쩌면 현재의 자상한 얼굴은 약해진 기량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크로캅은 예전부터 그날의 컨디션이 얼굴에 보이는 선수였다. 어쩌면 현재의 자상한 얼굴은 약해진 기량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UFC

 

실제로 크로캅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도 그 못지 않게 안티 팬들이 많았다. "크로캅 열성팬과 안티팬의 충돌만 없다면 격투 팬들 사이에서의 치열한 논쟁도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다.

 

물론 크로캅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굉장히 따뜻하고 정이 깊다. 어린 시절 '전란(戰亂)'을 겪은 영향으로 '강해야된다'는 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팬들의 소중함도 잘 알고 있던 마음 넉넉한 남자였다.

 

꽤 까다로운 성향을 가진 일부 파이터들이 크로캅과는 흉허물을 털어놓고 친하게 지내는 것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팬들 역시 크로캅이 '진짜 나쁜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좋아해 줬다. 또한 그만큼 까칠한 이미지였기에 무제한급 그랑프리 우승 후 눈물이 더욱 빛이 날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현재의 크로캅은 과거의 크로캅이 아니다. 그는 한때 경량급을 연상케하던 놀라운 스피드와 동체시력을 바탕으로 굉장한 타격 실력을 뽐냈다.

 

상대의 빈틈으로 정확하게 꽂히던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비롯 알고도 막기 힘들었던 광속(光速) 미들킥 거기에 무사의 '발도(拔刀)'를 연상시키듯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상대를 강타하던 명품 하이킥은 파괴력과 화려함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데뷔한 UFC 무대에서의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예전 같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들에게 연거푸 굴욕을 당하며 자존심이 산산이 박살나고 만 것. 옥타곤 적응 실패와 이제는 완전히 읽혀버린 공격패턴이 문제로 지적되고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운동능력의 저하였다.

 

사실 크로캅의 스타일은 프라이드 시절에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워낙 빠르고 강력했기에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지만 스피드를 상실해버린 지금은 상대들이 너무도 쉽게 대응하는 상황이다.

 

일부 서양 옥타곤 마니아들은 현재가 크로캅의 본실력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지만 사실이 그러했다면 냉정하기로 소문난 UFC 다나 화이트 대표가 특별 대접에 가까운 배려를 할 리가 없었다. 모든 다른 스포츠 종목의 스타들이 그렇듯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것이다.

 

랜디 커투어(48·미국)같은 특별한 선수를 예로 드는 팬들도 있겠으나 노쇠화라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지라 그 기준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맞춘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크로캅처럼 순발력 등에 의존하는 타격가 스타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크로캅은 떨어지는 기량만큼이나 겉으로 보이는 포스에서도 확연하게 약해졌다. 예전의 그는 링에 오르게되면 누구보다도 살벌하고 날카롭게 상대를 노려보며 무시무시한 '살기(殺氣)'를 뿜어냈다. 마치 그곳이 조국 크로아티아의 과거 전쟁터라도 되는 듯 필승의 각오로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자상해(?)졌다. 얼굴 표정 자체도 온화할뿐더러 예전에 비해 인터뷰도 자주하고 말도 많아진 편이다.

 

힘겹게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Naked Choke)'로 이겼던 패트릭 배리(32·미국)전에서는 상대의 하이파이브에 일일이 응해주는 등 예전의 그답지 않은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골수 팬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적응 안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크로캅은 예전부터 그날의 컨디션이 얼굴에 보이는 선수였다. 어쩌면 현재의 자상한 얼굴은 약해진 기량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기 등등하고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던 크로아티아 초인의 독기 가득한 눈빛. 크로캅은 그러한 모습이 어울리는 남자다.

 

과연 크로캅은 예전의 칼날 같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 많은 팬들은 아직도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믿는다. 챔피언까지는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번쯤 다시금 예전의 명품 하이킥으로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2011.02.02 12:34 ⓒ 2011 OhmyNews
살기(殺氣)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 크로아티아 내전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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