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동안 비눗방울을 연구해오신..."

이쯤만 말해도 누구나 아는 코너가 바로 '개그콘서트' <달인>이다. 오늘(1월 30일)은 뭘 보여줄까?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고 있자니 오늘은 비눗방울의 달인인 모양이다. 물레방아도 만들고 탁구도 치고 사이사이 라스트 갓파더 못지 않은 몸개그도 보여준다. 단순하지만 언제나 물리지 않고 재미가 있다. 처음 이 코너를 봤을 때 심드렁했던 내 자신을 기억한다. 이런 똑같은 패턴에 단순한 개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정말 첫 도입부 멘트처럼 16년간 장수 코너가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16년 동안'

문득 이 말을 되씹자니 누군가가 떠오른다. 바로 11년동안 축구대표팀을 이끌어온 박지성 선수가 말이다. 16년은 아니지만 11년간 누구보다 한국축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인물. 그가 바로 오늘(31일) 국가대표 은퇴를 했다. 그런데 기분이 참 이상하다. 인재가 귀하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참 아깝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기분은 드라마 <대조영>의 애청자였던 과거 양만춘 장군이 암살당하는 장면을 본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의 은퇴를 위한 오마주를 글로 써본다.

자. 11년 동안 한국축구를 위해 뛰어오신 달인! 때문에 박지성 선수를 모셔봅니다.

1. 평발이기 때문에.

박지성 선수가 평발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접하고 누구보다 놀랐다. 왜냐하면 항상 가까운 마트를 갔다 오셔도 갔다오면 항상 양말을 벗고 발을 주무르곤 하시던 평발을 갖고 계신 어머니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쉽게 발이 피로해지고 아픈 평발은 일반인에게도 고욕이지만 운동선수라면 큰 핸디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박지성은 세계에서 가장 움직임이 뛰어난, 활동량이 많은 선수로 성공을 거두었다.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내 뱉는 "왼손은 거들 뿐"이란 대사처럼 그에게 평발은 강백호의 왼손과 다르지 않았다.

평발이기 때문에. 그건 그에게 축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2. 왜소한 체구 때문에

축구는 상대방과 몸을 부딪히는 격렬한 운동이고 축구 선수 박지성은 흔히 생각하는 축구선수에 비해 왜소한 체격을 가졌다. 지금도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팬들에게 잘 넘어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만난 상대 AC밀란의 가투소에게 이런 평가를 받았다.

"그는 모기 같다. 그를 제쳐도 다시 와서 팀을 괴롭힌다."
모기는 작지만 거대한 코끼리에겐 항상 귀를 펄럭이며 주의를 할만큼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항상 거대한 상대를 만나거나 강팀을 만나면 더욱 힘을 내곤 했다. 부딪혀서 쓰러져도 그는 다시 일어났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그것은 그에게 축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 좌절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3. 동양인이기 때문에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정말 깜짝 놀랐다. 그가 바르셀로나나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한다고 해도 그보다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맨유란 팀은 명문을 넘어선 다른 클래스에 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해외축구를 모르던 시절에도 쿵푸킥으로 유명했던 에릭 칸토나, 프리킥의 마술사이자 세계적인 꽃미남 데이비드 베컴, 카리스마의 결정체 로이킨, 그리고 그 끝판왕과 같은 감독 명장 퍼거슨까지 맨유란 팀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위용을 갖춘 팀이었다.

그런 팀에 박지성이 간다니 그 충격은 가히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기묘한 위화감 같은 것일 것이다. 게다가 영국이란 나라는 축구의 종주국. 평가전을 마치고도 유니폼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나라에서 동양인 박지성이 과연 그런 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아마 기분은 좋았지만 회의적인 시선을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영국에서도 유니폼 판매원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한때 한국을 비하하던 스콜스와 어시스트를 한후 서로 포옹하던 모습, 아르헨티나 에이스 테베스와 프랑스 국가대표 주장 에브라와 우승컵을 들고 함박 웃음짓던 모습, 그리고 메시와 더불어 현재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호날도와 잡답을 하던 모습. 이 믿기지 않는 모든 사진 속에 동양인 박지성은 자리잡고 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에게 축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 우리가 퍼디난드에게 동양의 정을 나누기 위해 초코파이를 보내주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4. 부상 때문에

그에게 있어 큰 위기에는 언제나 부상이 있었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자리잡기도 전에 부상을 당해 현지 홈팬들에게 야유까지 받으면서도 그는 팀에 남아서 묵묵히 재활에 매진했고 결국 팀을 리그 우승 및 챔스 4강으로 이끌며 야유를 위쑹바레송으로 바꾸고 말았다.

그리고 역시 맨유에서 자리를 잡으며 어느정도 성적을 올리던 찰나 선수생명 연장을 위해 무릎연골재생 수술을 받게 된다. 치열한 주전 경쟁속에서 혼자 뒤쳐진 듯 느껴졌을 스트레스는 당연히 심했겠지만 그는 그때처럼 묵묵히 재활에 매진한다. 그리고 재활기간이 1년 이상이 걸릴 거라던 당초 스태프의 예상을 뛰어넘어 박지성은 9개월만에  복귀.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후에 동양인 최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출전한 선수가 된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부상은 선수생명의 기로가 되곤 한다. 박지성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극복해냈다.

부상때문에. 그것은 축구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닌 축구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가슴 가득히 채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그가 항상 인터뷰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 어휘는 한번도 그의 입에서 핑계나 변명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그의 투박한 말이 참 믿음가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언제나 위기의 순간엔 항상 그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 적도 참 많았다. 그런 그를, 태극마크를 달며 힘차게 팔을 휘젓던 그를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던 그를 알기에 우리는 붙잡을 순 없을 것 같다.

박지성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박지성이도 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며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한다. 박지성 때문에 에브라는 국민브라가 되고 퍼디난드는 우리와 친구처럼 선물을 주고 받고 대화도 한다. 박지성 때문에 새벽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남의 나라 축구경기를 보면서도 환호할 수 있었다. 박지성 때문에 우리는 4년마다 어느해보다 뜨겁고 붉은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때문에 행복했다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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