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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다. 예전 같으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카드나 연하장을 통해 인사를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카드를 보내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나아가 트위터를 통해 인사를 전한다.

 

대문에 있는 우편함이 아니라 인터넷에 접속하면 메일함에 가득한 사이버 카드가 그럴 것이고 수시로 울리는 문자메시지 인사가 어쩌면 요즘의 풍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때만 되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잘못된 말이 있다.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그것이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그리고 설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친다. 아니 1월 1일이 되기 전부터 우리는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한다. 유치원생부터 70, 80대 할아버지까지 한결같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그런데 복을 받으라고 하면서도 말로만 그럴 뿐이지 복은 한 개도 안 준다. 받으라고 했으면 던지든가, 손으로 건네든가, 아니면 요즘처럼 퀵이나 택배로 부치든가, 무엇인가 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주지도 않으면서 받으란다. 차라리 연전에 나온 광고 문구처럼 그냥 '부자 되세요'라는 바람만 표현한다면 괜찮겠는데 분명 '받으라'고 하고는 주는 것은 전혀 없다.

 

'복 많이 받으세요'란 존대어, 가당치도 않은 말

 

왜 그럴까. 처음부터 잘못된 말이기에 그렇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말은 고문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 말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받으세요'에 나타나듯이 이 말은 존대어다. 그러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풍속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예가 없다.

 

설이 되면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세배를 받는다. 이때 세배를 하면서, 즉 절을 하면서 아랫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요즘 젊은 것들처럼, 아니 무지몽매한 어린 것들처럼, 어른에게 절을 하면서, '절 받으세요'라든가, '건강하세요'라든가, 아니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절을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그냥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면 된다. 절을 하는 것 자체가 예이기 때문이다.

 

이때 어른은 절을 받고난 후에, 즉 세배를 받고 난 후에 한 마디 말을 한다. 절을 한 사람의 새해 소망과 관련하여, 마치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을 해 준다. 과년한 처녀에게는 '오냐, 올해에는 시집간다며?'라든가, 졸업을 앞둔 대학생에게는 '어, 너 졸업했으니 취직한다며?'라든가,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며?'라고 말을 해준다.

 

이는 시집가기를, 졸업 후에 취직하기를, 학교에서 공부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바람이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덕담(德談)이라 한다. 그러니 말의 내용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야말로 덕담으로 하는 말이다.

 

이런 말 중에 세배를 한 아이에게 어른이 덕담으로 마치 복을 많이 받을 것처럼 소망을 담아 건네는 말이 '복 많이 받아라'이다. 그러니 우리의 고유 풍속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존대어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이는 동년배들 간에도 쓰지 않는 말이다. 반드시 세배를 받은 어른이 아이에게 덕담으로 하는 말이기에 그렇다.

 

'새해 안녕', '새해 안녕하신가', '새해 안녕하십니까'면 충분

 

물론 사회가 변했다. 언어의 사회성이니 가역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대가 변하면 언어도 변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변한다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구태여 지하철의 막말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른에 대한 인사법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 바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일반적인 실태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른들께 결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하지 말 것! 친구나 동년배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말 것! 세배를 하면서는, 즉 절을 하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 것! 말을 하는 것은 세배, 절을 받는 사람의 몫이니 절대 절하면서 입을 열지 말 것!

 

그렇다면 동년배나 어른들께 새해 인사는 어떻게 하는가? 간단하다. 우리의 인사가 무엇인가? 맞다. 안녕하십니까. 그것이면 족하다. 새해가 되었으니 '안녕하십니까.', 날이 밝았으니 '안녕하십니까.' 하긴 기왕 새해인사이니 '새해 안녕하십니까'라 하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 연배의 차이에 따라 그저 '새해 안녕', '새해 안녕하신가', '새해 안녕하십니까'면 충분하다.

 

꼭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그 역시 우리의 고유 풍속에 있는 말을 찾아 쓰면 된다. 바로 '복 많이 지으세요'이다. 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니 연배에 따라 '복 많이 지으세요'라든가 '복 많이 짓게' 혹은 '복 많이 지으시게'하면 될 것이다. 꼭 그 말을 하고 싶으면 바른 말을 쓰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현산서재>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http://lby56.blog.me/150099888135


태그:#복많이지으세요, #덕담, #세배, #복많이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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