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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건제복이 아무래도 예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깔끔하다는 얘기다.
▲ . 굴건제복이 아무래도 예전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깔끔하다는 얘기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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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부고 한 장을 받았다. 부고장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내리 딸만 넷을 낳다가 또 딸 낳을까 무서워 배가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고추밭에서 김매시다가 아들을 낳으신, 고향의 일가 아주머니셨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조씨 성으로만 이루어진 집성촌의 고추밭에서 태어난 그 아들이 바로 사대독자 귀하신 몸이다. 사대독자에 걸맞게 별명도 '각하'였으니 동네에서 어느 누구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참으로 귀한 몸이었다.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양수리를 달려 도착을 하니 사대독자 상주는 왠지 어설픈 굴건제복에 곡을 하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요즈음의 장례예식이 워낙이 간소화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겠다. 그나마 외진 시골이라 이정도도 가능하지 싶은데 서울의 장례식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다행이 묘소는 아버님이 계시는 집에서 100m쯤 떨어진 텃밭 언덕에 모신단다.

넓게 판 이유는 이다음에 아저씨까지 모시기 위해 넓게 팠다. 시신을 모실자리를 파기 위해 지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지관 넓게 판 이유는 이다음에 아저씨까지 모시기 위해 넓게 팠다. 시신을 모실자리를 파기 위해 지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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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두 개의 광중이 파졌다. 미리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보고 계시는 아저씨의 심정이 어떠하실까?
▲ . 드디어 두 개의 광중이 파졌다. 미리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보고 계시는 아저씨의 심정이 어떠하실까?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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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땡땡 얼고 남들은 춥다 하는데 나는 심부름하느라 등허리에서 땀이 흐른다.
▲ . 막걸리는 땡땡 얼고 남들은 춥다 하는데 나는 심부름하느라 등허리에서 땀이 흐른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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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장지로 오니 마을 어르신들께서 묏자리를 파놓고 장례 치를 준비를 모두 해 놓으셨다. 재미있는 게 내 나이 오십이건만 술심부름과 잡다한 심부름은 모두 내 차지라는 것이다.

동생들이나 아래항렬의 조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의 순서도 모를 뿐더러 도대체가 시켜도 안 하니 답답한 사람이 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바로 위 형님과 한참을 심부름 하다가 눈을 맞추고 한쪽으로 돌아서서 담배를 피우며 하는 말이 재미있다.

"나도 내일모래 환갑인데 이 나이에 담배도 숨어서 피워야 되겠냐?"
"피차일반이구먼요. 하하."
"그나저나 술심부름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
"그것두 피차일반이구먼요. 하하."

사대독자가 어머니 가시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올렸고, 옆에서 지켜보시는 아버지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해 결국 울음을 터트리셨다. 어머니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고향땅에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외로움 어찌 말로 다하랴만, 지금은 그저 먼저 간 아내가 안쓰럽고 아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 회닫이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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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택이 바로 옆이라 비록 꽃상여는 못 태워드렸지만 회닫이 만큼은 정성을 들였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에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봤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우리의 귀하고 귀한 소리다. 예술이라는 것이 안드로메다 별에서 온 뭔 특별한 것인 줄 아는가본데, 예술은 이렇게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곁에, 상여 메고 나가는 들판에 있는 것이다.

바로 집 옆에 완성 된 어머니의 영원한 쉼터.
▲ . 바로 집 옆에 완성 된 어머니의 영원한 쉼터.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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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닫이를 하며 봉분은 높아만 가고 아저씨는 딸들에게 어머니 산소에 돌이라도 좀 골라내라 어쩌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잔소리를 하시지만, 넷씩이나 되는 딸들은 그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으니 아저씨 두 눈에 눈물 마를 새 없다. 내 눈에는 네 딸들의 어머니를 잃은 슬픔보다는 짝을 잃은 슬픔이 더 커보였다.

드디어 어머니의 유택이 만들어지고 마지막 제사를 지냈다. 나중에라도 아버지 돌아가시면 고향의 집은 별장 비슷하게 사용하면 될 터이고 부모님 모셔져 있는 작은 동산 밑에 주말 농장이라도 하며 오고가면 되겠거니 하는 생각에 일을 하면서 내내 조금은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셔져 계신 선산을 바라보며 아버지 묏자리는 어디가 좋을까를 생각하니 갑자기 피곤이 확 몰려오는 느낌이다. 산다는 것, 별 것도 아닌 것을.


태그:#회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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