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혼모', 후회와 눈물에 젖은 어린 엄마와 입양이 떠오르시나요? 그러나 여기,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양육 미혼모들이 있습니다. 저출산이라는 시기적 이슈 때문에 국회나 포럼 등에서 편견의 장막에 가려 투명인간 취급받던 이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지원책은 아직 미약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만나 그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자주

김윤진이 전문직(변호사) 싱글맘으로 분한 영화 <세븐 데이즈>의 한 장면
 김윤진이 전문직(변호사) 싱글맘으로 분한 영화 <세븐 데이즈>의 한 장면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날이 추워서 그런데, 약속 장소를 집으로 바꿨으면 하거든요. 괜찮으세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국제 마케팅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윤아무개(36)씨.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9일 저녁,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갑작스런 전화에 다시금 그녀의 집을 찾아야 했다.

대로변 상가 바로 뒤 주택가. 윤씨가 말한 듯한 주택의 대문을 밀자 계단 위 현관문이 열리면서 '어서 오세요'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퇴근 후 아이와 늦은 저녁을 먹고 커피숍으로 나가려다 보니 그날따라 유난히 매서운 저녁 칼바람이 아이에게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랬다. 그녀는 퇴근한 후로는 항상 아이와 한몸이었다.

"아이나 제가 몸이 아플 때 힘들어요. 작년에 제가 신종 플루에 걸렸는데 애한테 전염될까 봐 걱정되는데도 맡길 데가 없었어요. 의사 진료 보러 들어갈 때조차 애를 데리고 들어가야 했을 정도니까요."

- 잠시 봐 줄 사람은 없나요?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서울에 언니가 있지만, 언니도 아이 둘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형부도 해외출장이 잦고, 특히 막내가 어려서… 제 애까지 봐 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아이 입양 통보도 '문자'로... 우여곡절 끝에 넉달만에 되찾아

- 어떻게 미혼모가 된 건가요?
"해외법인에 법인장으로 있을 때 아이 아빠를 만났어요. 아, 외국인은 아니고 한국인이에요. 몇 번의 만남 중에 예기치 않게 아이를 임신하게 됐죠. 아이 때문에 우리 둘은 결혼 계획을 가졌지만, 부모님께 허락을 받지 못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면서 임신한 채로 저 혼자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 결혼은 못한 거네요?
"그렇죠. 결과적으로 보면 제가 아이 아빠의 말을 너무 믿은 게 화근이었어요. 부모님도 좀 더 검증해 본 다음에 결혼하라고 하시며 엄청 저를 설득하셨어요.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그 사람의 둘러대기는 계속됐고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로 3개월이 흘렀죠. 4개월 되던 날, 아이 아빠와는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했어요."

- 아이를 낙태하거나 입양 시킬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제가 원래 아이를 끔찍하게 좋아하는 편이에요. 고등학교 때엔 '혹시 나중에 결혼을 못하게 되면 아이를 입양해서라도 꼭 키워봐야지'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아이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윤씨에게 부모님은 인연을 끊자며 돈줄을 죄었다. 아이 봐주는 것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짧은 기간이라도 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곳에는 직장도 없는 엄마의 어린 아기를 봐 줄 기관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입양기관에 잠시 맡겼다. 혹시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일 주일도 안 돼 아이가 입양돼 갔다는 '문자'가 왔다. 이후 윤씨는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며 아이를 되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 했다. 결국 4개월 만에 아이를 극적으로 되찾을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몇몇 매체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후 윤씨는 서울에 사는 언니에게 잠시 의탁하며 직장을 구했고, 작년 5월부터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회사에선 '싱글맘'... 육아나 교육 고민 커

- 지금 직장은 어떻게 입사하게 되었나요?
"아무래도 그동안의 업무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 올린 제 경력을 보고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이쪽 회사에서도 해외교류를 통한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근무하게 되었죠."

- 회사에선 미혼모인 걸 알고 있나요?
"그냥 '싱글맘'이라고 했어요. 괜히 편견을 가질까 봐. 근데, 아이와 제 성이 같은 것을 보고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이혼 싱글맘' 정도로 아시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뭐라는 사람은 없는 편이에요. 다만, 저녁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일이 있어도 남들처럼 늦게까지 야근을 할 수 없는 부분은 있죠."

- 그것 때문에 신경 쓰이기도 하나요?
"당연히 신경이 쓰이죠. 지금은 회사에서 저를 필요로 하는 편이라 별말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이런 상태로 몇 년 더 근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아요. 상황이 되면 이제까지의 업무경력을 살려 무역이나 국제마케팅 방면으로 창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 일자리가 있는 미혼모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네, 그래요. 알고 지내는 미혼모들 중에도 직장을 가진 사람이 저 말고 한 사람 정도 더 있네요. 저만 해도 이렇게 아이와 제가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괜찮은 편이에요. 직장을 다니고, 조금이나마 저축을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 집 월세거든요. 전세라도 얻고, 아이 교육이라도 시키려면 지금 저금하는 액수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생각이 많아요."

- 외국에서 직장을 구해 사는 걸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당연히, 생각해 본 적 있죠. 사실, 아이 아빠와 헤어지고 아이를 혼자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는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산업인력해외공단이나 이런 데서 나오는 공고를 보면 주로 남자를 찾거나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조건을 다는 경우가 많아요. 체류비나 교육 문제 때문이죠."

- 현지 회사에 바로 지원해 보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싱가포르나 동남아 쪽 회사 공고에 지원도 해 봤어요. 그런데 동남아 쪽은 사회주의 국가라 소득세 같은 부분이 좀 까다로운 경향이 있고, 싱가포르 쪽은 지원한 게 잘 안됐어요. 아이 교육을 생각해서라도 차후 생각은 있는데, 지금 당장은 협회 활동 하면서 우리 사회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고구려 주몽도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같이 있어 행복"

인터뷰 내내 텔레비전을 보며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그림책을 들고 와선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야기를 계속하려 했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책을 들고 와 엄마에게 내민다. 좋은 일을 위한 만남으로 시작된 자리는 본의 아니게 윤씨 모녀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자리로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윤씨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 아이와 있으면서 좋고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항상 행복해요.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아이와 헤어진 뒤에도 윤씨의 마지막 말은 여운이 되어 남았다.  네이버 '미스맘마미아' 카페의 게시판에는 윤씨의 글이 올라 있다. 어느 누리꾼이 남긴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댓글에 대한 그녀의 반론이었다.

[댓글] 미혼모나 사생아들은 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겁니다.

[반론글]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라고 꼬리표 지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구려의 주몽도 아버지가 없이 유화부인에게서 태어났고,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미첼 바첼레트는 본인이 미혼모이자 이혼녀였습니다.

윤씨 말처럼 더 많은 미혼모들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바로 미첼 바첼레트처럼 되기는 어렵다 해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미혼모가족협회(cafe.naver.com/missmammamia.cafe)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아이들과 미혼엄마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태그:#미혼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