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세계적인 고전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는 "전쟁이란 나라의 가장 중대한 현실 문제다. 백성들 모두 살리느냐 모두 죽이느냐를 판가름하는 마당이며, 나라가 존재하느냐 멸망하느냐를 결정짓는 길"이라며 전쟁을 경계했다.

고대 중국 제자백가 중 하나인 묵가 주창자이자, 전쟁 용병이었던 묵자 역시 반전론자였다. 노자, 공자와 같은 철학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들도 전쟁 대신 평화를 역설한다. 걸프전을 야전에서 지휘한 슈워츠코프도 자신은 평화주의자라며 전쟁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고, 지금 현재도 지구촌 어딘 가에서는 국가 간 전쟁, 내전, 민족 간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나 평화를 말하면서도, 언제나 전쟁을 벌이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이며, 그저 피 흘리는 정치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정자들은 예부터 국내 불만을 억누르고 국민들 관심을 돌리는 수단으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즐겨 사용해왔다.

또 전쟁과 경영은 여러 면에서 비슷해, 경제활동을 종종 전쟁이 비유하고, 전쟁을 통해 경영 교훈을 얻기도 한다. 과거 승리를 위해 무자비한 방법들을 나열한 병법서들이 현대에는 경영전략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현실은 전쟁이라는 존재가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다큐멘터리 영화 <전장에서 나는>(감독 공미연, 2007)의 카메라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곳을 비추며, 전쟁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게 한다.

한국 사람들의 도시 생활은 분주하다. 분단국가이기는 해도 전쟁과 같은 무력충돌이 수십 년간 없어서 한국 젊은이 대다수는 때가 되면 날아오는 입영통지서를 무심히 받아든다. 입대하기 직전 사귄 여자 친구 때문에 군대 가길 꺼려하고, 자기 생활에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왕이면 좀 더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를 생각하는 게 고작이다.

군대에서는 '전쟁이 나면 총을 잡기도 전에 죽을 것'이란 농담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훈련소에서 처음 총을 들고 사격을 할 때, 살상무기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저 사격 잘해서 부모님과 전화 통화할 생각만 가득하다. 군대에 있지만, 군대와 군인의 존재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터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스라엘이 침공한 레바논으로 파병된다.

<전장에서 나는>에서는 평화로운 한국 거리와 팔레스타인 시위 모습, 인사동 거리를 찍는 디지털 캠코더 모니터 속 이스라엘 군인 모습이 서로 교차하면서 전쟁터에서의 공포와 평화로운 마을에서 느끼는 안도감을 한데 뒤섞어 전쟁과 평화를 동전의 양면처럼 붙여 놓는다.

켈트신화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영혼들의 저 세상을 한데 묶어 놓는다. 하지만 두 세상 가운데는 경계가 있지만, 전쟁터와 평화로운 마을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전장에서 나는>이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전장에서 나는>이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 서울영상집단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은 2003년 5월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해 6월 파병된 자이툰 부대 병사는 일상생활과 전쟁이 공존하는 현실을 눈으로 목격해야 했다.

낮에는 아이들이 뛰노는 팔레스타인 나불루스 한쪽에는 이스라엘 군이 파괴한 건물과 자동차가 그대로 있다. 한가롭게 면도를 하는 주민들은 밤이면 몰려드는 이스라엘 군인들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한다. 검문소 앞에서 수 시간 동안 기다리고, 날마다 검문소 앞에서 옷을 벗고 검문에 응해야 한다.

'평범한' 이라크 시민은 미국의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서 집과 그의 가족을 잃었다. 이라크에서는 오후 6시 이후 여자 혼자서 거리를 걸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삶을 받아들이고 인내한다. 부당한 행위에 분노하지만, 분노를 발산했다가 그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닥칠 불이익 때문에 울분을 삼키고, 서로 달랜다.

전쟁터에서 점령군들은 양민들 재산을 약탈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여성을 폭행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군인들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그들이 폭력을 휘둘렀던 주민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수용소 군인들, 이라크에서 고문을 자행했던 미군들은 그들 고향에선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구는 이스라엘 병사들은 한국 축구팀을 언급하며 한국에서 온 영화 취재진에게 친근감을 표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협박조로 말하는 한국군 병사는 학생 시절 이슬람을 비난하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에게 항의하던 경영학도였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귀국하는 한국 병사에게 "다음은 한국차례(Next time in Korea)"라고 전하는 다국적군(미군일 가능성이 크다)의 작별인사는 전쟁에 대한 인류 보편적 감정을 한반도, 한민족의 특수한 감정으로 바꿔놓는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 그리고 레바논 파병이 모두 역대 대한민국 정부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참여정부' 시절에 이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영화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담담히 들려주지만 전쟁반대를 목소리 높여 외치진 않는다. 하지만 국익과 한미관계를 언급하며 파병을 주장하는, 정작 자신들은 전쟁터 근처에 갈 일이 없는 보수진영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희가 전쟁을 아느냐?"

덧붙이는 글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에서 진행중인 서울영상집단 20주년 특별전 상영작(11월 9일)입니다.
전장에서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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