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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골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농사일을 도우며 공부를 하고 산다. 어떻게 한 학기를 보낼까, 무엇을 공부할까도 엄마랑 늘 의논하는데, 이번 학기엔 '노근리 사건'도 알아보기로 했다. 평소에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데다 무엇보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정보도 찾고 도서관에서 한 노근리 관련 전시회도 다녀오고 하던 중 우리가 자주 가는 영동도서관에서 <노근리 이야기-그 여름날의 기억>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은 물론 노근리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이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무고한 임계리 양민들을 노근리 쌍굴 다리에서 학살한 사건으로 1950년 7월25일부터 29일까지 일어났다.

주인공 남자는 임계리 주민들보다 먼저 대피해서 나중에 대피한 아내와 부산에서 만나 노근리 사건의 참상을 듣는다.

25일 밤에 미군이 나타나서 임계리 주민들을 피난시켜 주겠다며 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데리고 간다. 하가리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샌 주민들은 미군들이 사라진 걸 알게 된다.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 주민들 앞을 또 미군들이 막아 세웠다. 그들은 철도로 사람들을 건너가게 한 후, 노근리 쌍굴 다리 앞에 세워뒀다.

아마도 미군들은 그들을 스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살할 생각을 했을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녀자까지 학살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노근리 사건의 개막은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쌕쌕이(미군 폭격기) 하나가 폭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곧 언덕에서 소총사격이 시작되었다.

함께 밥을 먹고 있던 대가족은 순식간에 핏덩이가 되었고, 엄마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이들을 덮었지만, 살아남은 건 남자아이 신웅이 한 명뿐이었다.

그 참사를 경험한 박선용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이 끊어진 사람들의 절단된 팔다리가 여기저기서 나뒹굴었어요. 처참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구덩이에 숨은 정구식은 "처음에는 그게 커다란 호박덩어린 줄 알았어요. 돌아보니 조그만 여자아이의 머리였습니다"라는 끔찍한 얘기를 했다.

어떤 여자아이는 엄마의 머리를 만졌는데 손이 쏙 들어갔다. 머리가 부서진 것이다.  춘자는 할아버지와 함께 달아나다가 할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어린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일을 겪게 하는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군들이 몰려와서 산굴로 사람들을 몰았다.

난 이때까지 흥미 진지한 전쟁게임이나 전쟁 상상을 자주 했다. 그런데 정말 피투성이가 되고, 부상을 입는 장면들을 보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정말 얼마나 끔찍했을까…….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간다.

한편, 노근리 쌍굴로 양민들을 몬 미군과 대화가 있었다. 미군 왈 대전에서 양민을 가장한 인민군에게 미군이 엄청나게 당했고, 따라서 의심스러운 피난민은 모두 죽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양민을 맘대로 죽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미군들은 굴 밖으로 나오는 양민들을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있었다. 차츰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끔찍하게 느낀 두 곳이 있는데, 한 부분이 바로 이 장면에서 박창희 씨가 "뭔가 무거운 것에 맞고 쓰러졌다가 일어나 보니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다리였다" 라고 말한 것이었다.

저녁, 주인공의 아내 선용은 성경 구절을 되뇌고 있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자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는 크리스트교가 아니지만 이 말에 동조한다. 맞다. 항상 희망을 잃지 말아야한다.
잠시 후 선용의 아이 구희는 기습적인 기관총 사격에 죽었다.

그런데, 이 난리 속에서도 누군가가 해산을 하려하고 있었다. 이 죽음 앞에서도 새 생명의 울음이 어둠 속으로 퍼져나갔다. 정말 감동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청년들이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체 방벽도 탄환을 막지 못했다. 희생자는 더 늘 뿐이었다.

이 상태에서 반실성한 춘자의 아버지는 우는 아이를 물속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아기를 거꾸로 개울에 밀어 넣었다. 아이도 참 안됐다 싶다. 하필 그 난리 속에 있어서 죽었으니…….

밤이 깊어진 후 여자들이 말했다, "아무 생각도 말고 남자들이나 도망가라, 남자들은 살아남아 대를 이어야 한다"고. 여자애 계순이도 구헌이에게 "너는 탈출해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말해야 해"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흙을 파서 흰 고무신에 바르고 옷을 벗어 뭉쳐들고 나갔다.

쌍굴 안에는 젖먹이를 둔 부녀자들의 죽음 또한 적지 않았다. 살아남은 아기들은 살아보겠다고 죽은 엄마의 젖을 물었다. 본능인지 끈기인지, 살아남겠다고…….

27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소총이 사격되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시체들은 부패했다. 으~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텼는지 모르겠다. 너무 무서웠다.
갈증을 못 이겨 핏물을 먹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죽은 사람들 밑으로 파고들었다.
아까 말했듯이 끔찍한 것 둘 중 나머지 하나는 이거다. 박희숙씨가 "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치는 것은 내가 그때 무엇을 마셨냐는 거예요. 한번은 입으로 물컹한 게 들어왔어요. 지금도 물컹한 게 꿈에 나타나요." 아무래도 그 물컹한 건 피 같다는 생각에 나마저도 구역질이 난다.

희숙은 미군에게 자기가 아는 유일한 영어인 헬로를 외치며 다가갔다. 미군들도 어이가 없는 듯했다고 한다.

이때 쯤 아내 선용이 탈출을 시도했다. 선용은 아이들을 데리고 풀밭을 기어 탈출했으나 곧 기관총이 날아왔다. 아이는 총알이 허벅지를 스쳐서 살이 달랑댔다고 한다. 나도 유리에 다리를 베여봐서 아는데 그건 정말 끔찍할 것이다.

쓰러진 선용을 미군들이 치료해 주고 병원으로 옮겼다. 정말 자기들이 부상을 입히고 나서 자기들이 치료를 해주다니……. 병 주고 약 주고다. 황당하다.

7월 28일, 소총사격은 지겹게 계속되었다.
구학은 물을 마시는데 물이 옆으로 줄 줄 새는 걸 느꼈다. 자기의 코가 떨어져 나간 사실을 알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7월29일, 학살이 시작된 지 나흘째. 미군들이 쌍굴 안으로 들어와 총을 쏴 됐다. 그만큼 쐈으면 그 스파이 될 만한 사람들은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남은 건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아이들을 죽이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다 죽어가는 생존자들을 살린 건 인민군이었다. 북한 기자도 함께 와서 기사를 썼다.
7월 29일 토요일 아침 4일간의 학살이 끝났다. 생존자는 겨우 25명 정도였다.

나는 끝을 보면서 너무 놀랐다. 우리를 도와주러 온 미군이 양민들을 학살하고, 오히려 인민군이 이들을 도와주다니… 그럴 거면 미군을 왜 불렀나?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다. 바로 전쟁의 폐해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많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평범한 양민들이라고 한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노근리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무수히 죽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연에 입히는 피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은 소수의 정치가, 무기상인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 즉 무고하게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군인들은 전쟁을 해봐야 아무 이득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전쟁을 원치도 않는다. 결국 전쟁은 저 윗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짓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리가 전쟁의 참상과 피해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싸움을 안 하고, 미운 마음을 안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아프다. 억울하게 죽은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그들과 같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더욱 이 일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부터 평화를 만들어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묵념.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세 살 학생입니다.
<노근리 이야기-그 여름날의 기억>(정은용 글/박건웅 그림/새만화책/2006)



노근리 이야기 세트 - 전2권 - 그 여름날의 기억 + 끝나지 않은 전쟁

박건웅 만화, 정은용.정구도 원작, 보리(2015)


태그:#노근리, #노근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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