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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말
법원에는 매일 수없이 많은 판결이 쏟아집니다. 그중에는 일반인에게 도움이 될 판결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하지만 판결의 취지가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나 흥미위주로 보도돼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판결, 정치·경제·문화 생활과 밀접한 관련 있는 요즘 판결들을 가끔씩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요즘 판결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이번에 소개할 판결은 ▲ 교제하던 남녀가 모텔에서 주고받은 수표 한 장이 성매매로 몰린 사건 ▲자전거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사고났을 때 손해배상 책임문제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에 대한 해임취소 사건과 관련된 판결이다.

교제 남녀가 주고받은 대리운전비가 성매매 대금?

대법원은 “두 사람 사이에 수표가 오갔더라도 인터넷이나 성매매 업소를 통해 만난 것이 아닌 점, 3개월간 만남을 지속한 사이인 점으로 보아 성매매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사진은 대법원의 전경.
▲ 대리운전비가 화대? 대법원은 “두 사람 사이에 수표가 오갔더라도 인터넷이나 성매매 업소를 통해 만난 것이 아닌 점, 3개월간 만남을 지속한 사이인 점으로 보아 성매매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사진은 대법원의 전경.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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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박한별(가명·여)씨에게 왕준수(가명· 남)씨는 '아는 남자'이다. 둘은 몇 달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합석을 하면서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후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고 아주 가끔은 잠자리(?)도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둘의 만남은 1차 주점, 2차 모텔로 이어졌다. 모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왕씨는 "대리운전을 불러서 가라"며 박씨에게 10만 원짜리 수표 1장을 건넸다. 그런데 잠시 후 박씨가 말도 없이 가버리자 화가 난 왕씨는 112에 "여자가 돈을 훔쳐갔다"고 거짓 신고를 하였다.   

왕씨의 말은 수사기관에서 곧 거짓으로 드러났고 이 때문에 무고죄로 처벌(벌금형)을 받았다. 여기까진 왕씨도 수긍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검찰이 왕씨를 성매매범으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검찰은 왕씨가 모텔에서 수표를 건넨 사실에 주목했다. 게다가 여성인 박씨가 과거에 성매매로 처벌받은 전과까지 밝혀냈다. 검찰은 "화대를 주고 성매매를 했다"며 왕씨를 기소했다. 왕씨는 "우리는 애인 사이인데 성매매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은 당일 수표가 오갔고 박씨에게 성매매 전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왕씨가 유죄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돈을 건넨 것은 그날이 처음이라는 사실도 왕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법원은 "두 사람이 인터넷이나 성매매 업소를 통해 만난 것이 아닌 점, 3개월간 만남을 지속한 사이인 점으로 보아 성매매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과 2심인 인천지법에 이어 대법원도 14일 같은 결론을 내리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여성과 사귄다고 해서 성매매로 예단하지는 말자."

자전거도 도로에선 '차'... 횡단보도는 내려서 끌고 건너야

[사례 2] 새벽 5시, 동네에서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던 사익구(가명)씨는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멈춰섰다. 곧 파란불(보행자 신호)이 켜지자 사씨는 자전거를 탄 채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중간쯤 지났을까. 오른쪽을 보니 100미터 전방에서 버스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멈추라는 손짓을 했으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는 사씨의 자전거 뒷바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사씨는 뇌진탕 등 중상을 입고 말았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버스의 잘못이다. 사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보험사에게 치료비, 개호비(병간호 비용), 일실수입, 위자료 등을 포함, 2억여 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일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 즉, 사씨가 사고 당시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넌 점과 안전모(헬멧)를 착용하지 않은 점이 손해의 발생·확대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사씨에게 20%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 사건에서 과실 20%는 돈으로 따지면 약 5천만 원에 해당한다. 만일 사씨가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넜거나 혹은 자전거를 끌고 건너갔더라면 이 돈까지 배상받았을지 모른다.

지난달 대전지법의 보행자 사고 판결을 보면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위 사례와 같은 시각인 새벽 5시경 파란불에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들이받고 도주한 운전자에게 법원은 100% 책임을 인정, 손해액 전부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말이 나온 김에 자전거 법규를 조금 더 살펴보자. 자전거는 법(도로교통법)으로 '보행자'가 아니라 '차'에 해당한다. 당연히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너서도 안 된다.

도로교통법 13조의 2(자전거의 통행방법의 특례)
⑥ 자전거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횡단하고자 하는 때에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보행하여야 한다.   

제15조의 2
② 자전거 운전자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횡단하고자 하는 때에는 자전거횡단도가 따로 있는 곳에서는 자전거횡단도를 이용하여야 한다.

자전거 운전자가 길을 건너려면 자전거를 끌고 가거나 자전거 횡단도로를 이용하라는 말이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라이더들에게 고한다. 자전거를 탄 채로 횡단보도 건너지 말자. 헬멧은 꼭 쓰자. 그게 안전을 지키는 길이자 돈 버는 길이다. 

"일제고사 거부 교사 해임은 과중한 징계"...서울시교육청은 상고할까

1심(행정법원)에 이어 지난 14일, 2심(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에 대한 해임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사진은 작년 행정법원 앞에서 해직 교사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일제고사 거부교사 해임 위법" 1심(행정법원)에 이어 지난 14일, 2심(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에 대한 해임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사진은 작년 행정법원 앞에서 해직 교사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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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7인, 아니 일제고사 거부로 쫓겨난 교사 7명이 교단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대로,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을 교단에서 영구 퇴출하려 했던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에 제동이 걸렸다.

1심(행정법원)에 이어 지난 14일, 2심(서울고등법원)에서도 "교사들에 대한 해임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왜 교사들을 해임했고, 법원은 왜 해임을 취소하라고 했을까.  

[사례 3] 서울지역 초·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송용운씨 등 교사 7명은 2008년 10월 실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명 일제고사)가 학교와 학생들을 서열화하고 과열 경쟁을 부추겨 교육원칙에 어긋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송 교사 등은 △일제교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응시여부를 선택하라는 편지를 학부모에게 발송하고 △학교장 허가 없이 당일 체험학습을 허가하였고 △교육청 감사 과정에서 경위서 작성, 진술·출석요구를 거부하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행동이 공무원으로서 성실의무, 복종의무 등을 위반하였다며 교사 7명을 해임하였다. 교사들이 '학생성적을 조작하는 등 학생성적과 관련된 비위' 수준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징계가 너무 무겁다며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요지는 교사들의 행동이 징계사유는 될지언정 교사직을 박탈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일제고사 반대 활동을 한 다른 교사들이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것에 견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해임취소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1심 판결보다 징계사유가 부당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교사들이 교육청의 경위서 작성과 진술·출석요구를 거부한 것을 두고 "형사 재판과 마찬가지로 (징계를 위한) 감사절차에서도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면서 1심과 달리 이 부분을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제고사 반대여론도 만만찮았고, 평가결과 조작, 편법·파행운영 등 문제점이 드러났고 ▲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도 일제고사 제고를 권고했으며 ▲교사들이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일제고사의 부작용 때문에 반대를 한 점 ▲일제고사 거부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한 점 등을 참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울고법은 교사들을 '학생성적 비위' 잣대를 내세워 해임한 서울시교육청의 처분을 "균형을 잃은 과중한 징계처분", "일반적으로 적용해온 기준과 어긋나게 공평을 잃은 징계처분"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아직 상고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소송이 대법원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이대로 판결이 확정된다는 전제로 말하면, 법원의 판결은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해임 처분이 과도하다는 취지여서 교육청은 교사 7명을 또다시 징계할 것으로 보인다.

상고, 재징계와 관련 서울시 교육청의 태도가 주목된다.


태그:#일제고사, #성매매, #자전거, #무죄, #해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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