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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국정감사 기간 중 3분의 1이 지나면서 정치권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부실 국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기관의 상습적인 자료제출 거부와 한나라당의 노골적인 감싸기, 주요 증인들의 도피 등으로 제대로 된 감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게 야당의 불만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지금 과연 야당이 국정감사를 꼭 해야 되는가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국정감사 첫 주에는 각 상임위별로 자료 미제출과 증인 채택, 피감기관의 감사 태도 등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었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국감이 어려웠던 곳이 많았다.

 

이영호·이인규 '동행명령장'도 거부... 유명환은 해외 도피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인 사찰' 파문을 일으킨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의 증인 출석 거부다. 국회 정무위와 법사위는 지난 4일과 7일 총리실과 서울중앙지검 등 국감 당시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을 두 차례나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 전 지원관 등은 "재판을 앞두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는 핑계로 두 곳 상임위의 출석을 거부했다. 해당 상임위원장이 동행명령장까지 발송했지만 끝내 국감장에 나오지 않았다. 국회 정무위는 오는 21일 총리실 확인감사 때도 이 전 지원관 등을 증인 채택하는 등 "반드시 증인석에 앉히겠다"는 태세지만,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에 앞서 '딸 특채'로 파문을 일으킨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도 지난 4일 국회 외통위 국감을 앞두고 석연찮은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엄연한 해외 도피"라고 비난했지만, 뒷북 대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당이 대놓고 증인 채택을 거부해 '방탄 국감'을 만든 사례도 있다. 국회 교과위는 상지대 사태 규명을 위해 이우근 사학분쟁조정위원장을, 국회 국토해양위는 감사원의 4대강 감사 의혹을 풀기 위해 은진수 감사위원을 각각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지만, 여당은 강하게 반대했다.

 

여당도 발끈 "화내는 장관 처음"... 보수단체는 '국감장 시위' 

 

피감기관의 감사 태도도 문제가 됐다. 지난 4일 국감 첫날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국회의원들의 질의 순서가 갑자기 바뀌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며 짜증을 냈다. 여당의원들조차 그런 윤 장관을 보며 "질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화 내는 장관은 처음"(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혀를 찼다.

 

6일 국회 문방위의 한국영화진흥회 국감에서는 조희문 영진위원장이 지난 6월 임시국회 업무보고 자료를 들고 나와 업무현황 보고를 하려다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영진위는 업무보고 자료의 제목도 바꾸지 않아 여야 모두에게 따가운 질책을 들어야 했다.

 

보수단체가 국감장 바로 앞까지 들어와 기습 시위를 벌이는 상황도 있었다. 5일 국회 교과위의 교육부 국감에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정부세종로청사 회의실까지 보수단체회원들이 들어와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국감이 오전 내내 파행을 겪었다. 이주호 장관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지만, 보수단체 회원들이 장관실까지 찾아가 악수를 나눴다는 사실이 들통나 진땀을 흘려야 했다.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국회의원을 협박하기도 했다. 7일 경찰청 국감에서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경찰대 출신들의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휴직 실태를 지적하자, 경찰대 출신 고위경찰관이 유 의원에게 찾아와 "격려도 좀 해 달라"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 문제가 됐다. 당일 조현오 청장은 "그런 태도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거듭 사과해야만 했다.

 

천안함 관련 자료를 폭로한 신학용 민주당 의원실에는 국군기무사령부 관계자들이 찾아와 "조사를 벌여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노골적인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5공, 유신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며 "용납하지 않겠다"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민주, 국감 보이콧도 검토... 여당 "전당대회로 부실 준비"

 

이날 '부실 국감' 관련 사례들을 수집해 공개한 민주당은 남은 2주 동안 공세 수위를 더 높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류제출 불성실, 여당의 방해, 피감기관의 태도, 일부 단체의 국감 방해 등은 국회의 권위와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며 "남은 2주도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국감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겠다"고 말했다. 때에 따라서는 국감 보이콧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당은 야당의 태도가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했다.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민주당이 자신들 전당대회로 국감 준비가 불성실하다는 여론의 비난이 일자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군 기무사의 협박 논란이 일고 있는 신학용 의원에 대해서도 그는 "국가 안보기밀 사항까지 신중한 검토없이 공개하고, 면책특권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듯한 의식은 국가관까지 의심하게 만든다"고 역공을 취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도 합리적 정책정당이 돼야지 툭 하면 못해 먹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감 2주차 첫날인 11일에는 13개 위원회가 전국 각지에서 국감을 계속해 나간다.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감에서는 라응찬 회장 비자금 문제로 불거진 신한은행 사태가, 행안위의 서울특별시 국감에서는 서울광장 개방과 학교급식 조례, 수해방지 대책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문방위는 방송통신위 등을 상대로 종편 일정과 KBS 수신료 문제 등을 따질 예정이다. 환노위는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4대강 사업 진행 과정을, 국토위도 국토해양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상대로 세종시 건설 사업을 중점 점검하게 된다.


태그:#국정감사, #민주당, #한나라당, #증인, #보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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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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