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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 서울수복 기념 및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다.
 6.25전쟁 60주년 서울수복 기념 및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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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만큼 비가 많이 왔던 9월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9월에 유례없이 쏟아졌던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군복무 관련 이야기다. '대선공약'급 이야기가 9월 초부터 지금까지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24개월로 환원, 환원은 쉽지 않다는 대통령의 의견, 긴급동원 예비군 1만 명 확보, 예비군 훈련 시간 확대, 군복무가 21개월로 가닥이 잡힌다는 이야기까지.

이에 한 누리꾼은 이렇게 일갈했다.

"군복무 기간, 당신들의 고무줄 놀이가 아니다."

9월 초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이하 안보회의)는 군복무 기간을 현행 22개월에서 다시 24개월로 환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안보회의란 천안함 사태 이후 안보관련 사안들을 총괄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 속에 설치된 기구다. 여기에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까지 24개월로 환원하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군복무 관련 논의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면서 그 기세가 한 풀 꺾이기는 했지만, 한 번 터진 물고는 멈출 줄 몰랐다.

22개월에서 24개월로... 거꾸로 가는 국방부 시계

이후 안보회의를 비롯한 군 관계자들은 '군가산점제 부활', '1만 명 규모 긴급동원 예비군 신설', '현재 2박3일인 동원훈련을 4박5일로 연장', '대학생들도 2박3일 동원훈련 검토' 등의 군 병력 관련 논의를 쏟아냈다. 그 정점으로 지난 9월 27일 정부와 한나라당은 군복무를 21개월로 잠정 확정한다는 안이 유력하다는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확정된 것이 없다지만, 사실상 이 안으로 여론을 떠보겠다는 것이다.

한 달 사이에 하도 많은 이야기가 나와 정신 없어 보이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명하다. 천안함 사태를 빌미로 국방부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2014년까지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여가던 흐름을 뒤집겠다는 거다. 이제 긴급 예비군 창설, 예비군 동원훈련 연장, 군가산점제 등도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사실 이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충분히 예고된 모습이기도 했다. 이미 2009년 11월 국방부는 기존 6개월 군복무 기간 단축안을 2~3개월로 줄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007년 9월 노무현 정부 하에서 발표한 안을 2년이 갓 지나자마자 뒤집은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예비군 관련 내용은 이미 작년부터 보도됐던 내용들이다. 끊임없이 문제점이 지적되어온 전·의경제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폐지가 결정됐지만, 돈이 없다는 뻔한 이유로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지금도 감옥에 가고 있다.

그러나 군 복무 기간 문제는 휘발성이 엄청나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가 터졌다.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젊은이들의 비통한 죽음의 원인은 지금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데, 군과 정부는 국가안보 상황이 열악해졌다며 줄어가던 군 복무 기간을 '공식적'으로 틀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예비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 시간을 4박5일로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 훈련 기간을 5년으로 줄이는 것과 맞물려서 나왔다. 이를 통해 300만 명 수준인 예비군 병력을 150만 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안에는 훈련 기간 단축은 쏙 빠진 채 훈련시간만 늘이겠다고 한다.

또한 한 달에 이틀 정도 훈련 받는 1만 명 규모 긴급 동원 예비군 신설도 꺼내놓았는데, 이 병력이 필요한 이유로 G20과 같은 중요 국제행사에 동원할 필요가 언급되기도 했다. 기가 막힐 뿐이다. 군 병력을 동원해 국제행사를 하다니, 망신이다. 이 언급 속에서 향후 대규모 집회마다 이 예비군 부대를 동원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와 꼭 닮은 모습... 야당은 뭐하나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 다음날인 27일 오전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한 이명박 대통령.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 다음날인 27일 오전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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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습은 '김신조 사건'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들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한 1·21사태가 발생했고, 그 직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이어졌다. 얼어 붙은 정국 속에서 박정희는 '250만 무장'을 공언했고, 이후 예비군 창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제도 자체야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설치법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됐지만, 실제 지금과 같이 소집훈련과 무장이 이루어진 것은 1968년, 바로 이 때부터다.

당시 야당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신민당 의원이었던 박병배는 "현 군경의 해이한 기강과 부패가 1·21사태의 교훈을 낳은 것"이라며 "전면전이 아닌 공비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향토예비군 전면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곧바로 김영삼 의원 등 41명의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다며 향토예비군설치법 폐지안을 내놓았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이중 병역의무를 강요하는" 예비군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아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을 만큼 국민들의 반감 역시 컸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김신조 사건을 등에 업고 만들어진 예비군 제도는 사회 깊숙이 박혀갔다. 1970년 12월에는 대간첩작전에 동원한다며 '전투경찰대설치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데려간 젊은이들을 시위진압에 착취했던 비극 역시, 김신조 사건의 후과로 시작된 것이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의 흐름과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의 흐름은 이렇게도 닮아 있다. 권력자들은 공포를 빌미로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그 밑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늘 희생당해 왔다. 다른 것은 야당과 언론의 모습이다. 지금 야당은 짤막한 논평만을 기계적으로 내놓고 있을 뿐이다. 한 보수 언론이 "이번에는 좌파 언론들이 잠잠하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군 관련 뜨거운 쟁점들이 쏟아지는데도 비판적 언론들은 '군 관계자'의 말을 받아 적기에만 바쁘다.

복무기간을 늘리면 천안함 비극 막을 수 있나?

이미 추진되어 오던 복무기간 단축을 뒤집고자 한다면, 뒤집고자 하는 쪽에서 그에 합당한 이유를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예비군 문제를 비롯한 관련 사안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공개된 이유를 바탕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여론 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군이 주도할 경우 예상되는 결론은 뻔할 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18개월로 줄이면서 이야기했던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청년들의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지금 이러한 측면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천안함 사고 직후 군이 보였던 정보 은폐 시도들은 군이라는 공간이 민주적으로 감시되고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떻게 탈주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현재 군의 수뇌부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대부분 군 수뇌부의 위치에서 '국방개혁 2020'을 승인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자 슬슬 자신들이 승인했던 안을 부정하더니, 천안함 이후 본격적으로 뒤집으려 하고 있다. 군에 대한 민주적 감시가 절실한 때다.

"복무기간을 3개월 늘리면 천안함의 비극을 막을 수 있냐, 대학생들 2박 3일 예비군 동원훈련하는 게 국가 안보를 위해 진정 도움이 되냐?"며 국방부에게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 국회의원을, 한반도 안보 여건과 사회 발전을 두루 고려해 대안적인 복무 기간과 제도를 제시해줄 언론의 모습을 기대한다. 고무줄 놀이로 내버려두기에는, 그 고무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1968년 막지 못한 예비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태그:#군복무기간, #예비군, #군가산점, #국방개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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