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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철민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VIP라운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배우는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나누고 고마움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 박철민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VIP라운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배우는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나누고 고마움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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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10cm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입에 꽉 물었다. 목젖이 튀어나왔고 눈동자엔 핏발이 섰다. 아 유 변비? 생각이 스치는 순간, 화장실 밑바닥으로 '안 되는 사랑' 성토하던 옆칸 남자에게 가까스로 명함을 건넨다. 누가? 배우 박철민(43)이.

"저어…. 이거…."

오는 16일 개봉을 앞둔 로맨틱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첫 장면이다. 박철민이 아니었다면 아마 덜 웃겼을지 모른다. 그는 이 영화의 문을 열고, 닫았다. 비중이 꽤 큰 역할이다. 물론 조연이다.

"글쎄요. 아무래도 내가 영화감독 초등학교 선배라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감독이 배우에게 상당한 애정을 가진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앞뒤 배치가 가능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아으."

'쉬운 남자'이고 싶은 박철민과 마주하다

그와 앉으니 무장해제가 된다. 어깨의 뽕이 '팍' 빠졌다. 별거 아닌데도 그가 말을 뱉으면 폭포수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르게, 최대한 진지하고 안 웃기게, 배우 박철민에게도 꽤 엄중한 표현이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겁나 웃었고, 시시껄렁한 농담 속에 진심이 담겼다. 연기와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 남자, 너무 쉬워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남들이 쉽게 보는 거, 싫으시죠?"
"살짝 헛웃음 나오게 하는 걸로 이제 겨우 먹고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난 그게 좋아요.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가 실상에서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토록 남들이 알아봐주기를, 무대에 서기를 바랐는데, 이제 좀 알아본다고 술 한 잔 안 따라주면 나쁜 놈이지, 표리부동이고. 전 쉬운 남자이고 싶어요. 전 국민이 쉽게 보는 그날까지, 아자!"

지난 9일 밤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VIP라운지에서 만난 배우 박철민씨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근 함지박 웃음으로 각지고 상처 난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광대였다.

가수나 배우, 탤런트나 코미디언이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건방 떨 필요는 없다고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대목에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만큼 배우가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설명이, 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다음은 박철민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내 종교는 술, 나는 이분을 믿는다"

배우 박철민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VIP라운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소신발언을 하는 배우나 예술인들을 너무 한 색깔로 규정지어 폄훼하거나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 박철민이 지난 9일 저녁 서울 영등포 롯데시네마 VIP라운지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소신발언을 하는 배우나 예술인들을 너무 한 색깔로 규정지어 폄훼하거나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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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노 연애조작단> 영화의 문을 열고 닫았다.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 같다.
"그러게, 차~암.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김현석 감독이 나한테 배려했다. 아주 부담스러우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아무래도 내가 김 감독의 초등학교 선배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감독이 배우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배치가 가능했던 게 아닌가 하는. 꼭 필요한 장면이고. 흐흐."

- 이번 작품 촬영 중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뭔가.
"이번이 김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이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 호흡도 잘 맞춰왔고, 또 술잔도 자주 맞췄고, 사생활도 쭈~욱 맞춰왔었기 때문에 아주 불편함 없이, 신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원래 감독과 배우는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런 것 없이 아주 편안하게 작업했다.

이번에 함께 작품에 참여한 주연들(엄태웅, 이민정, 박신혜, 최다니엘)이 각자 튀기보다는 서로 잘 위해주고 그랬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분위기가 아주 좋아 촬영 끝나면 꼭 술자리, 밥자리를 했다. 땀 한번 흘리고, 집중해서 촬영하고, 긴장 한번 팍 하고, 또 맥주 한잔, 그러고 보니, 촬영 중에 가장 즐거웠던 일이, 술자리였네! 하하하하"

- 애주가신 모양이다. 주로 막걸리?
"아니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막걸리일 거라고 생각하시나. 허, 참…. 술이야 뭐 시대에 따라, 또 인생의 시기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때는 소주에 튀김, 빨리 취하니까. 값도 싸고. 또 대학 때는 아무래도 막걸리. 공복도 해소해 주고, 또 밥값도 없었으니까.

다시 연극시절에는 소주. 그런데 요즘엔 맥주가 가장 편안하고 부드럽고 그렇다. 내가 아주 맥주에 흠뻑 빠져 있는데, 열정적으로 땀을 쏟았거나, 또 무리했거나, 느슨했던 하루. 하루의 마무리를 할 때는 역시 씨~언한 생맥주가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는 것 같다.

성취욕이나 즐거움은 배가시켜주고, 답답하고 지친 일상은 북돋아주는 것 같아서 늘 생맥주 한잔이 생각난다. 우리 집 근처에 선술집이 있는데, 퇴근길 꼭 멸치에 생맥주 2000cc 살짝 먹고 들어간다. 꼭 마신다.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로! 한다."

- 어느 인터뷰를 보니 드라마 촬영 중 말에서 떨어져 술을 끊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아니, 어디서 그렇게 잘못된 보도를 접하고 오셨나. <불멸의 이순신> 할 때 워낙 격렬한 전투 신을 찍다가 쓰러진 적이 있긴 하다. 나는 대사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날더러 왜 대사를 하지 않느냐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암튼 목소리가 안 나오는 지경까지 이른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부안지역 포구에서 살아있는 최고의 안주거리로 촬영기간 내내 술을 먹다보니 나타난 현상 같다. 그 때문에 두어 시간 촬영이 중단된 일이 있다. 그때 아! 나도 죽을 수 있구나,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이제 막 사랑받고, 인기받기 시작했는데, 이런 식으로 건강관리 하다가는 카메라 앞에 오래 서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담배 끊고, 술도 안 받아서 확 줄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나브로 좋아져서 요즘엔 예전에 먹던 주량의 1/4 정도는 되찾은 것 같다. 그렇게 먹게 되니까, 훨씬 아껴먹고, 감사하며 먹는다. 역시 사람은 당해봐야 일상의 넘치는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맙다! 생맥주야! 크크크크"

- 혹시 종교 때문에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건지.
"종교? 나한텐 술이 종교지. 크크크크. 이 음식이 얼마나 많은 전쟁과 갈등을 막아왔나.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우울과 좌절을 긍정적으로 극복하도록 도와줬나. 술이 역사에 끼친 지대한 공적은 이 세상 그 어떤 신이 하셨던 것 이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신들 다 합친 것 이상으로 우리 '주(酒)님'이 하신 바 크다고 본다. 물론 해도 많이 끼치셨지만. 하하. 술, 젊었을 때는 참 겁 없이 즐겼지만 지금은 몸이 안 되니까 늘 일상적으로만 만난다.

난 이분을 정말 믿는다! 이 세상, 그 어떤 알약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주셨고, 외치고 싶도록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다 주님이 곁에 계셨다.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증오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도, 다 그 사람 입장에서 반대로 생각하게 도와준 것도 바로 술이다. 그러나, 과유불급! 적당히 마시겠다." 

"건방 떠는 게 배우의 역할은 아니지 않나"

배우 박철민.
 배우 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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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생활 20년이 넘었다. 초반엔 사회참여 연극도 많이 했다. '양심수 시와 노래의 밤' 사회도 봤고. 그때의 박철민씨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내가 속했던 극단 색깔이 좀 진보적이어서 문화집회에 많이 관여했다. 상황극이나 춤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도 보고 그랬다. 그러나, 그 극단을 그만둔 뒤로는 사회 보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안 했다. 연기 대본을 갖고 무대 위에서 하는 건 너무 좋은데, 집회 사회는 내 생각도 정리해서 말해야 하고 이끌어야 하고 동의도 구해야 해서 나랑 잘 안 맞는다. 그런데 10월 아름다운재단 10주년 기념행사는 사회를 본다. 워낙 부탁이 세서."

- 사회참여형 극단을 그만둔 까닭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배우로서 겪는 갈등이 가장 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너무 정형화 돼 있고 연기 자체도 나를 마당극적인 연기에 가두려고 하는 것 같고. 더 실험적인 연기를 하고 싶고, 다양한 색깔을 표현하고 싶어서 극단을 그만뒀다.

또 사회적 발언을 직접 연극이나 예술적 매체로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조금 더 풍자적으로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색깔이나 주의 주장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기도 했고."

- 인기 있을 때 최대한 건방 떨다가 인기 떨어지면 조용히 사라지겠다고 하셨는데, 여러 인터뷰에서 드러난 느낌은 굉장히 겸손모드다. 원래 그렇게 겸손한가.
"내가 박수 받고 응원 받고 사랑 받는 게 늘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내 연기나 색깔, 능력이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빈 틈 많고, 완벽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런 날 사랑해주시는 걸 보면 역설적으로 그들과 내가 가깝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나는 그들 주변에 있는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까불대고 철없는 연기를 하고 재밌는 웃음도 주고 그러니까 좋아해주시는 거라고 말이다. 왜 사람이 정서적으로 자기랑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듯이 그런 것 아닐까.

그리고 솔직히, 건방 떠는 게 배우의 역할은 아니지 않나. 박수 받고 인기 받고 사랑받으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원래 배우나 연예인, 가수가 높은 자리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늘 드러나니까 보고 싶은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이 힘 있는 권력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뭔가 있는 것처럼, 잘난 척 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싶다."

- 한국적 현실에서는 대중스타가 큰 힘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그래서 더 감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받은 사랑을 나누고 고마움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고 본다. 뭔가 대중을 만날 때 신경 써야 할 위치이지, 우리나라에서 엄청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 조대부고 연극반, 중앙대 마당극 동아리 창단멤버였다. 돌아가신 형님은 박철민씨가 어렸을 때 추송웅의 모노드라마를 연기해보이시곤 했다고 들었다. 아버님은 정치경제 교사셨다고 했고. 도대체 그 끼는 누구에게서 물려받은건가?
"아버님이 술 한 잔 드시면 늘 하시던 말씀이 '나는 최고의 강의를 하는 사람이다' 셨다. '1시간 수업을 하면 나중에 꼭 박수가 나와 야'하셨다. 크크크크. 늘 자만하시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강의는 참 재밌게 하셨던 모양이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우리 어머니는 영어선생님이셨는데, 역시 남들 앞에서 그것이 지식이든 감정이든 희로애락을 전달하는 대목에서는 집안에 꿈틀거리는 끼는 있었던 것 같다. 우리 형님이 성우이자 배우셨는데 그것도 다 집안내력 아닌가 싶다.

우리 누나 또한 글 쓰는 걸 좋아하셔서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동생도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극작가다. 부모님은 집안에서 늘 우스갯소리를 잘 하셨다. 그렇지만 두 분이 특별한 끼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수업은 잘 하셨다고 주장은 하시지만."

- 편찮으시다는 어머님은 기력을 좀 회복하셨나. 
"치매환자인데, 기억이 15%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밥도 잘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서 그렇게만이라도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한다. 내가 예전보다 훨씬 스킨십을 많이 한다. '엄마~' 이렇게 부르면 갓 6~7개월 된 아기가 엄마아빠 개념은 없지만 늘 나를 봐주는 친근한 사람으로 대우하듯 편안하고 안정적인 표정으로 날 보신다.

'저게 내 아들이구나' 이런 개념은 없으시다. 그런 모습을 뵐 때마다 순간순간 울컥울컥 한다. 한강 유람선 좋아하시고, 문화유산, 절 구경 좋아하시는데, 많이 못 즐기시니까 좀 안타깝지만, 그래도 '엄마!' 하면 '헤~' 웃으시니까 그 모습으로라도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전태일 다리...욕 먹더라도 꼭 해야할 이유 있는 사회운동

청계천 버들다리 이름을 '전대일 다리'로 바꾸자는 캠페인에 나선 배우 박철민이 "약자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신을 태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전태일다리로 개명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청계천 버들다리 이름을 '전대일 다리'로 바꾸자는 캠페인에 나선 배우 박철민이 "약자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신을 태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전태일다리로 개명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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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홍보대사에 위촉됐다. 청계천 버들다리 이름을 '전태일 다리'로 바꾸자는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청년 전태일은 그 다리에서 분신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렇게 큰 파급을 줬던 엄청난 인물이 있나. 그 인물의 역사적 현장이고, 또 동생도 그 다리에 있다. 후대에 그 다리의 이름이 '버들다리'인 것보다는 '전태일 다리'로 불리는 게 훨씬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아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시 내가 도움이 된다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대학 초창기 때 읽었던 전태일 평전, 평범했지만 대단했다. 그저 너희들이 만들어놓은 그놈의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는데, 그걸 안 지켜서….

너무 아프거나 억울한 사람들이 많고 힘들다고 호소했는데 아무것도 고쳐지는 게 없어 분신한 것이다. 약자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기를 태운 분이다. 나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정신이 깃든 다리여서 버들다리보다는 전태일다리로 개명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앞장서게 됐다.

사실, 이 행사를 맡은 마케팅 홍보담당이 20대와 30대, 40대를 대표하는 배우를 찾아 부탁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모두 고사해서 나만 하게 됐다. ㅠㅠ 내가 인기도 그들보다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생각 있는 사람들이 보고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널리 전해져서 다리 이름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 왜 그 배우들이 고사했을까. 이명박 정부라서 그랬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배우들은 정치적으로 보여지는 문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거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 발언하면 상대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냥 반대편에 선 사람이 아니라 틀린 사람, 나쁜 사람, 안 좋은 사람, 답답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배우는 어떤 입장에 서 있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그런 평가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런 건 DJ나 노무현정부 때도 그랬다. 물론 최근 많이 옅어지고 있지만.

당부하건대, 소신발언을 하는 배우나 예술인들을 너무 한 색깔로 규정지어 폄훼하거나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 저 배우는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배우구나, 그냥 그 정도로 기억해주면 어떨까 싶다. 나는 저 전쟁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저 배우는 전쟁이 싫은가 보지? 뭐 그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사실 나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이유는 같다. 나도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전태일 다리는 그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미움을 받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웬만하면 나도 잘 나서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배우가 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면 그냥 그런 것은 좀 열어놓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꼭 전태일다리 개명 캠페인엔 참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배우가 아닌 인간 박철민에게 청년 전태일은 무엇인가.
"나는 사인을 할 때 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 이렇게 쓴다. 그렇게 쓰는 까닭은 전태일 때문이다.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어렵고. 골치 아프고. 그렇지 않나?

전태일은, 전적으로, 온몸으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분이다. 나도 이기적으로, 개인적으로 살고 있지만, 순간순간 이타적인 생각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도 전태일이다. 무엇보다 어릴 때, 20대 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분이기 때문에 내게 큰 영향을 주셨다. 현대사에서 '더불어 함께 살자'의 선봉에 섰던 분이니까.

있는 사람이 좀 나눠서 없는 사람 좀 채워주고, 절대빈곤은 좀 사라지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 같이 기뻐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 절대빈곤, 절대약자는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속 없다"는 말도 듣지만, 내 연기 속엔 꼭 웃음 한 자락~

배우 박철민.
 배우 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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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민씨는 약간 진보적이랄 수 있는데, 작품에선 그런 성향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이 있기 때문인가.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린 솔직히 감독과 제작자가 먼저 선택하는 직업군의 사람이다. 일단 나는 일이 없어서 못하는 거지,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물론 도저히 시간이 안 돼 못하는 것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뭘 가리고 말고 하지 않는다.

30대 초반, 애들 엄마가 집에서 수업을 하면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가 집을 좀 비켜줘야 했었다. 우는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면 애들은 애들끼리 놀지만, 애들 엄마들은 아저씨인 나랑 안 놀아주니까 홀로 공허하게 외롭게 벤치에 누워 하염없이 삐삐만 쳐다본 일이 있다.

누가 날 좀 안 불러주나? 어떤 감독이 나 좀 안 불러주나? 아유~ 여기서 더 안 되면 틀어야지, 더 이상 가서는 안 되겠다, 아픈 생각을 하고, 자책하고, 자조적으로 한탄하고 그랬다. 나는 그런 기억이 뼛속깊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불러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안다. 요즘 내가 영화 <제7광구>를 찍고 있는데, 촬영할 때마다 액체를 바르고 피를 묻히고 멍들고 그런다. 새벽 5시까지 촬영이 이어지면 아유~ 좀 편한 거 없나, 정말 너무 힘드네, 지쳐있는 날 보다가도 문뜩 그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얼마나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는데 이러나. 얼마나 무대에 서고 싶어서 안달 안달 염병을 떨었는데 왜 이러나,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그렇게 동경했는데 이러면 안 되지 그런다. 그래서 나는 나를 불러주면 당연히 먼저 무릎이 꿇리고, 대체 내가 무엇이건대 이 사람이 날 이렇게 찾아주나 감동한다. 나의 향기를 맡고 찾아와주면 바로 응한다."

- 주로 코믹연기를 해왔는데 어떤 연기에 도전하고 싶나.
"<혈의누> 작품 이후로는 아! 나도 악역이 되는구나, 악역도 성취감을 주는구나 했다.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 로맨스, 멜로, 해맑은 바보, 아주 독특한 여성스러운 연기, 늘 술에 절어 있는 반 알코올 중독자 등등. 그런데 아마도 나는 어떤 역할을 맡던지 즉발적인 큰 웃음, 과장된 웃음이든 쿨 한 웃음이든, 약간 비틀어서 실소를 하든, 웃음의 한 자락은 갖고 들어갈 것 같다. 흐흐"

- 극중 이미지를 보면 좀 쉬워 보인다. 실제로도 쉬운 남자인가.
"음… 그런 것 같다. 속도 없고, 쉽다. 김현석 감독은 나한테 형은 참 속도 없소! 하는데, 나는 내 캐릭터가 쉬운 이미지이기도 하고 또 살짝 헛웃음 나오게 하는 걸로 겨우 먹고 살고 있기 때문에,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가 실상에서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사인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좀 남들이 알아봐준다고 술 한 잔 안 따라주면 나쁜 놈이지, 표리부동이고. 나는 쉬운 남자다. 전 국민에게 쉬운 남자가 되고 싶다"

- 쉽게 보이면 횡액을 당하게 되지 않나. 그런 일 없었나?
"이야~ 박철민씨, 뒤질랜드, 쉭쉭이, 불러주면 고맙소! 이름이나 제대로 아시오 하고 그런다. 농담 해서 큰 낭패를 본 일은 아직까지 없다. 사석에서도 늘 즐겁게, 자연스럽게, 편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잘 되길 바란다"

배우 박철민.
 배우 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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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딸이 외고 다닌다고 들었다. 공부를 잘 한다고. 딸의 대학 진학 문제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학부모로서 겪어본 한국의 교육현실, 어떤가.
"우리 큰 딸! 공부 아니 뭘 잘 해~ 이러면서도 뭔가 뿌듯한 느낌이 전해지지 않나? 크크크. 더 벌어서라도 더 많이 채워주고 싶다. 나는 사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불만이 굉장히 많다. 아이가 대학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다보니까 이것저것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에 대학 가는 방법이 4000가지가 넘는다더라.

이런 방법들을 서민 엄마, 아빠들은 알 수가 없다. 정보를 캐고 공부하고 돈을 들여 컨설팅을 받고 그래야 하는데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겠나. 정말 문제다.

예를 들면, 어떤 대학 국문과는 어떤 점수로, 어디 무슨 과는 논술을 어떻게 등등 대학 가는 방법이 너무 다양해서 서민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 같다. 애한테 치중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 학원 가서 수십만원 주고 컨설팅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집이라야 대학에 갈 수 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시는 서민 부모님들이 아이의 점수가 어디에 강하고 어디에 약한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 학교에선 그런 걸 전혀 안 해주고. 참 걱정이다. 나는 그래서 최근 이명박 대통령께서 내건 '공정한 사회'를 정말 지지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상징적으로 끝내지 마시고, 좀 더 적극적으로 실질적으로 제도적으로 성과를 내셨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못 난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너무 슬픈 현실이다."

- 공부 잘하는 딸이 연기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헝…. 큰딸은 능력이 없어 보인다. 연기는 아닌 것 같고. 만일 감독이나 극작 다른 파트라면 적극 밀겠다. 가끔 대학 강의 가서도 하는 소리인데,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인생에서 찾는다면 그 자체로도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둘 중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면, 나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게 만일 영화라면 쌍수를 들고 필름 값 대면서 지원하고 싶다. 사람은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악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예전 우리 아버님세대는 딴따라 하겠다고 하면 배고프고 천하다고 생각하셨지만 요즘은 귀천이 없지 않나."

- 대학시절 학생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87년 6월 항쟁의 또 다른 주역이신데, 함께 했던 친구들이 정치권에 많이 가 있을 터다. 486 정치인에게 당부할 게 있다면.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당부하고 싶지도 않는데, 음…. 20대 때의 의로운 생각, 열정적인 생각들, 행동들이 많이 보수화 되는 것 같다. 젊었을 때 가졌던 신나고 재미있었던 생각들이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생각들이 점점 작아지고 퇴색되고 변질됐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이젠 486이 됐는데 20여 년 전 우리가 가졌던 맑고 깨끗한 생각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또 하나, 요즘엔 선거철에 도와달라고 신청 안 해줘서 고맙다! 크크크"


태그:#박철민, #시라노 연애조작단, #전태일 다리, #뒤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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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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