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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규 장편소설 <망루>
▲ 겉그림 주원규 장편소설 <망루>
ⓒ 문학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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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망루에서 새까만 숯으로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면 일제 침략기 사진 한 장이 오버랩 된다. 조상 대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철도 부지 명목으로 빼앗기고 철도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열십자로 묶인 채 총살당한 사람들의 사진.

철도 건설을 강행하던 이들이 내세운 논리도 개발이었다. 자신이 살던 삶의 터전에서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을 향해 "개발을 가로막는 불순분자요, 폭도들"이라 소리치며 처형을 정당화했다.

철도 건설을 강행하던 일본인들의 눈에 철도 공사를 방해하던 조선인들이 사람으로 보였을까. 용산 개발업자들의 눈에 망루 위 철거민들도 자신들처럼 처자식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꿈 간직하고 사는 사람으로 생각되었을까.

소설 <망루>는 용산 참사의 본질과 핵심에 정면으로 뛰어든다. 미국의 월가에서 펀드 메니저로 일했던 자본의 최전선 경험을 되살려 교회를 종합레저타운 개발의 허브로 이용하려는 세명교회 담임목사, 목사로서의 자질과 함량이 뒤떨어지는 담임목사의 주일예배 연설문을 작성해주며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는 민우.

민우와 함께 신학대학을 다닌 동창으로 한철연(한국철거민연합회) 회원이 되어 철거민 투쟁에 뛰어든 윤서, 윤서의 눈에 재림 예수처럼 나타난 한씨, 한철연에서 윤서의 수족처럼 생활하다 세명교회 윤장로의 회유에 넘어가 용역깡패의 하수인이 된 맹호 등을 중심으로 이 시대의 위선과 악의 본질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썩은 악취와 물비린내로 가득한 곳, 수시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단전과 단수가 발생되는 곳, 아무리 좋게 봐도 철거 아니면 별다른 회생 방안이 없어 보이는 종말의 보루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살았다. 용역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팔다리가 부러져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외쳤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고.

일본군이 철도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조선인들을 처형하고 있은 모습
▲ 처형 장면 일본군이 철도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조선인들을 처형하고 있은 모습
ⓒ 금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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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이들을 몰아내고 개발의 첫 삽을 뜨기 위해 용역 깡패들과 중무장한 특공대 경찰 병력이 동원됐다. 용역 깡패들과 특공대의 공세에 밀려 망루로 올라갔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철거민들을 이끌고 망루로 올라간 윤서,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망루로 따라 올라간 민우.

이 긴박한 상황에서 민우는 재림예수를 찾는다. 윤서도 동일한 갈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당신이 정녕 신의 아들이라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짓밟는 이 잔혹한 고통의 현장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지만 재림예수 한씨는 이들의 갈망을 외면한 채 불타는 망루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특공대원의 접질린 발을 무릎을 꿇고 어루만지고 있었다.

개발과 추방의 악순환이 용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1900년대 경부선, 경의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그랬고, 70년대 난장이들이 그랬다. 지금도 사람들은 추방의 언덕, 생존의 망루로 오르고 있다. 개발이란 명분 때문에. 소설 <망루>는 그들의 고단하고 처절한 삶을 통해 이 시대의 선과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진지한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덧붙이는 글 | 주원규/문학의 문학/2010.7/11,000원



망루

주원규 지음, 문학의문학(2010)


태그:#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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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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