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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다.
▲ 진선문. 창덕궁에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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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현령의 보고를 접수한 전주 감영은 한양에 급보를 올리는 한편 공주 감영에 산채꾼들의 동태를 알렸다. 공주에 진을 치고 있던 총위사 군사와 전라병사 휘하 관군의 협공을 받은 산채꾼들은 지리멸렬 무너져 내렸다. 그들에게 '새 세상'은 꿈이었고 우선 살기위해 줄행랑을 쳤다. 뒤쳐진 자는 굴비 엮이듯 줄줄이 묶였고 맞선 자는 관군의 칼날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위봉산성에 먼저 도착한 권대식은 산채군을 이끌고 관군에 맞섰으나 수적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생포되었다. 수많은 산채군들과 함께 사로잡힌 권대식은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감옥에 갇힌 권대식은 심문조에게 반역의 당위성을 역설하다 매 맞아 죽었다. 생포된 자 중 전주에서 11명이 처형되었고 공주에서 22명이 참수되었다.

사라져버린 새 세상의 꿈

안익신을 비롯한 57명이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그 중에는 한양 구경을 처음 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진선문 앞에 국청이 마련되었다. 형틀에 매달린 죄인을 목격한 산채군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었다. 국청을 주관한 위관이 공초를 작성하여 임금에게 계본을 올렸다.

"적도들은 하나같이 김이나 매는 농사꾼들로서 세상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형신을 받기도 전에 사실을 자복하는가 하면 임경업이 군사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만 믿고 역당에 참여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것이 역모에 승복하는 것이 되는 줄을 모르는 우매한 백성들입니다."

"자복한 자는 모두 참에 처하라."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형신을 받다 숨을 거둔 12명을 제외한 산채군들이 함거에 실려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수레에 실려 청파역을 지난 산채군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옥졸들에게 물었다.

"내가 어느 지역으로 귀양 가는가?"
"귀양 같은 소리 마라. 새남터로 간다."
"새남터가 뭐하는 곳이냐?"

사형장에서 안익신 등 46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처형이 일단락되자 사헌부가 계를 올렸다.

줄을 잘 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역당 가운데 사람을 꾀고 역적모의를 한 자는 이지험·권대식·홍영진·안익신으로 이들의 죄상은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반역의 계책을 꾸미다 도당이 뿔뿔이 흩어진 뒤에는 이지험이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익신과 나극룡을 괴수라 지목하여 관가에 알려 체포되도록 함으로써 자기의 공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죄를 실토한 다른 적도는 이미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지험만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가도록 용납할 수 없으니 속히 전형을 보여 천벌을 바르게 하소서"

위기를 느낀 이지험이 정태화 형제를 끌어들였다. 의금부에서 보고를 올렸다.

"이지험이 예조 판서 정태화와 밀양 부사 정태제를 끌어들여 조사해본 바 허무맹랑한 모함이라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이지험이 계속 그들의 혐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교를 내려주시옵소서."

막강 권력을 쥐고 있는 금부이지만 권력 실세와 줄이 닿아있는 예조판서 정태화를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예판은 불문에 부치고 정태제는 하옥하라."

밀양 부사 정태제는 강석기의 사위이며 세자빈 강씨의 제랑이다. 정태제를 하옥했다는 보고를 받은 인조는 대신과 금부 당상을 불러들였다.

"안익신은 관노로서 속신된 자인데 어떻게 대장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겠는가? 필시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원흉이 도성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권대식이 자세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 살리지 못하고 죽여 버렸으니 형리와 나졸 및 직숙 군사들을 엄히 형벌하라."

불똥이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권대식을 때려죽인 전주감영 군사들에게 화가 미친 것이다.

"안익신과 권대식이 사세를 틈타 흉악한 무리들을 꾀어냈는데 그들의 계책이 이루어졌더라면 나라의 재앙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용이 몸을 잊고 고변하여 위기에 처한 국가를 안정시켰으니 그 공이 중차대하다. 고변한 이성용을 녹훈하여 그 충성을 포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성용을 당상으로 올리고 수령에 제수하도록 하라."

산채에 한 발을 담그고 반군과 관군사이에서 기회를 엿보던 이성용에게 행운이 굴러왔다. 허나, 행운과 불운은 동전의 앞 뒤 면이다. 더구나 난세에 더욱 그렇다. 줄을 잘 서면 행이 될 수 있고 잘 못서면 불행이 될 수 있다. 사간원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역적을 토벌할 때 조정에서는 현지 상황을 상세히 모르고 단지 공청감사가 올린 장계에만 의존하였는데 감사의 장계는 모두 이산현감 유동수의 보고에 근거하였으니 유동수가 속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윤문거·윤형각이 도성에 들어온 뒤에 사실이 전해졌는데 '김충립이 형벌을 받아 귀양 가고 이성용이 녹훈된 착오는 모두 유동수가 속인 데서 연유하였다'고 했습니다. 윤문거의 상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유동수가 속인 것이 구절마다 환히 드러났습니다. 이성용의 고변은 윤형각이 유동수와 은밀하게 말한 뒤에 있었는데 유동수가 이성용을 수공(首功)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상을 속인 것입니다."

"유동수를 장 일백에 처하여 경성부(鏡城府)에 정배하고 김충립을 평강현감에 제수하라."
이산현감 유동수를 귀양 보내라는 것이다.

배신자의 말로

"이성용을 어떻게 할까요?"

초관 신분으로 산채에 몸담았던 이성용은 뜨거운 감자였다.

"이성용은 공이 없지 않고 충의가 가상하니 죽음을 면케 해주고 벼슬에 제수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영국훈적(寧國勳籍)에 부록(附錄)하고 철원현감에 제수하라."

줄을 잘 서야 한다. 이성용은 병조판서 이시백의 끄나풀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지험이다.

"안익신과 나극용을 생포케 한 이지험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참에 처하라."
똑같은 기회주의자이지만 생과 사는 갈렸다. 상벌을 마친 인조가 승정원에 지시했다.

"공주목(牧)을 강등하여 공산현(縣)으로 삼고 이산·연산·은진을 혁파하여 은산현으로 한다. 또한 공청도를 홍청도로 바꾸고 전남도 금산군을 강등하여 금산현으로 삼는다."

충청도는 조선개국 이래 수난을 겪은 명칭이다. 태조 3년(1394) 양광도를 충청도로 개칭했다. 그 머리글자는 충주의 충(忠)자 청주의 청(淸)자다. 1628년 인조가 역모와 관련하여 충청도를 없애면서 공주와 청주의 첫 글자를 따서 공청도(公淸道)라 명명 했다. 이제 그 이름을 홍주에서 홍(洪)자와 청주에서 청(淸)자를 따와 홍청도(洪淸道)로 바꾸라는 것이다. 역적이 출몰한 지역에 대한 보복조치다.


태그:#공청도, #홍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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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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