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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식이 사자후를 토해내던 정상에 그 후, 산성을 복원하면서 정자가 세워졌다
▲ 정자 권대식이 사자후를 토해내던 정상에 그 후, 산성을 복원하면서 정자가 세워졌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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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의 집을 빠져나온 김충립이 윤몽거의 집을 찾았다. 김충립이 세 살 위이지만 김충립은 지방 고을을 맴돌았고 윤몽거는 조정에 있던 사람이다.

"급히 말씀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무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이리 늦은 시간에..."

지필묵을 꺼내놓고 시상을 가다듬던 윤몽거가 역정을 냈다.

"역당들이 초하룻날 거사한답니다."
"역적도당이라고?"

윤몽거가 화들짝 놀랐다.

"한양사람 권대식이 연산 사람 이지험과 작당하여 반란을 모의하였습니다."
"이지험은 연산 향교 교생이지 않소?"
"네, 그렇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고을에서 역적이 나오면 그 고을은 쑥대밭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윤몽거다.

"역당 권대식이 이지험의 매부 홍영진을 시켜 유탁을 유인하게 하였습니다."
"유탁이라 하면 고을에서 행세께나 하는 사람 아니오?"
"네, 그들이 산채에 군사를 모아놓고 있습니다."
"군사씩이나요?"

싹쓸이 당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스러웠다

윤몽거의 얼굴에 두려움이 역력했다. 나라에 불만을 품고 일어선 역당들이라면 토호들이라고 그냥 두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에는 마을 사람들이 단결했으나 반란에는 분열했다. 힘 있고 재산 있는 사람들은 관군에 붙었고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민초들은 반군에 가담했다. '이몽학의 난' 때도 그랬다.

"그들은 소현세자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있는 백성과 이 조정에 불평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임경업 장군이 곧 올 것이라고 선동하여 여러 사람을 산채로 끌어들였습니다."
"임경업은 중국에서 체포되어 압송되고 있잖습니까?"
"그래요?"

김충립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금시초문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이 초라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내색할 수 없다.

"그것도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이 한양으로 출진하기에 앞서 오는 27일 용담에서 모인다고 합니다."
"산채의 속사정을 어찌 그리 훤히 알고 있소?"

윤몽거가 김충립의 아픈 곳을 찔렀다.

"산채에 모인 불한당들이 역적모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위아래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만 모르고 있었군."

윤몽거가 자괴의 웃음을 흘렸다.

"저 웃음? 가식 일른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자기만 모르고 있다면 말이 되는가?"

윤몽거는 김충립을 의심했고 김충립은 윤몽거를 불신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불신시대

"요즈음에는 역당들이 군장(軍裝)을 구하고 짚신을 사들이느라 마을에 우글거립니다."
"군장까지?"

윤몽거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는 꼬락서니가 벌써 지들 세상이 다 된 것처럼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역도들이 한양으로 진군하기 앞서 졸개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하여 백성들을 수탈했다는 미명으로 명망가를 습격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이 고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세력이 큰 자신의 문중이 제일 먼저 위해를 당할 것만 같았다.

"고을 아전과 관속이 모두 적당(賊黨)과 한패거리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정말이오?"

"이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줄을 따갈 것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윤몽거에게 한 말조차 후회스럽다는 표정이다.

"염려하지 마시오. 급히 관가에 가 현감에게 발고하도록 하시오."
"원님이 그놈들과 한통속이면 낭패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영감님하고 같이 가면 몰라도 혼자서는 못갑니다요."

김충립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윤몽거는 '바쁘면 쉬어가고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생각났다.

"급할수록 뜨거운 가슴으로 움직이지 말고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라는 말일테다. 김충립 그 사람 됨됨이를 익히 알고 있지만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반란이라니 괴이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현직 고을 현감을 찾아가지 않고 날 찾아온 저의가 의심스럽지 않은가? 더구나 세자빈 사사 후, 주상전하께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강상에 관계된 문제이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럴 때 일수록 경륜 있는 사람의 고견이 중요하다."

"나는 석성현감 민진량과 상의하고 전 현감 윤현각 영감님하고도 논의하여 방백에게 상변하려고 하오. 어서 가서 발고하시오."

놀던 물이 다르다, "나는 윗사람들하고 상대할 것이다"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로 출사했던 윤몽거다. 사간원 정언도 역임했다. 중앙정치무대에서 활동했던 자신은 고을 원하고는 격이 다르기 때문에 공주목사를 상대하겠다고 표방했지만 실은 판단력이 예리한 윤현각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김충립을 돌려보낸 윤몽거는 말을 달려 석성 관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윤현각을 만났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디를 가십니까?"

윤몽거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 윤몽거가 33년 식년 문과에 나갔을 때 윤현각은 이미 인조반정에 가담한 공으로 6품직에 특임되어 벼슬길에 있었던 선배다. 뿐만 아니라 나이도 윤현각이 다섯 살이 위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바람을 쏘이러 나왔습니다."
"산채에 있던 적당들이 초하룻날을 거사일로 잡았다 합니다."
"그것이 참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망극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민진량은 차사원으로 이미 은진으로 떠났으니 오늘 이산(尼山)에 당도할 것입니다. 난리를 당하여 여러 사람이 중지를 모아야 할 터이니 내가 관아에 나가 현감과 일을 같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주에 있는 방백과 한양의 병조판서 이시백 대감에게는 내가 알리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밀서를 작성한 윤현각이 종자에게 공주에 나가 방백 임담에게 전하라 명하고 윤몽거와 윤현각은 이산현 관아로 말을 몰았다. 관아에 도착하니 윤몽거의 형 윤삼거가 먼저 도착하여 김충립에게 들은 내용을 현감 유동준에게 전하고 있었다. 윤몽거로부터 관가에 고발하라는 말을 들었으나 현감 유동준을 의심한 김충립이 관아에 가지 않고 윤삼거의 집으로 갔기 때문이다.

"으음!"

현감 유동준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일을 잘못 처리하면 관직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역적 연루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당에 엮이면 생명이 위태롭다. 그렇다고 이성용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팽개치고 혼자 발을 빼면 이성용이 물귀신 작전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공멸이다. 다 함께 사는 방법이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 유동준이 윤몽거 형제와 윤현각을 배웅하고 아전을 시켜 김충립을 불렀다. 허나, 유동준에게 의심을 풀지 않은 김충립은 관아에 나오지 않았다.


태그:#산채, #역적, #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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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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