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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으로 사용한 호리병
▲ 호리병 술병으로 사용한 호리병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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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이 주안상을 차려왔다.

"자, 이 술 한잔 받게"
이성용이 호리병을 쥐었다.

"아냐, 내 술 한 잔 먼저 받게."
배대승이 호리병을 빼앗으려 들었다.

"내 집에 온 손님인데 자네가 먼저 받아야지."
"나야 여기서 허구 헌 날 마시지만 거기엔 없잖은가? 자네가 술 고팠을 테니 먼저 받게."

배대승이 막걸리를 쳤다. 이어 호리병을 잡은 이성용이 배대승의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막걸리를 목구멍에 털어 넣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의욕이 넘치나 승산이 없다

"분기 가지고 될 일이 아니잖은가?"
"그러게 말이야."
이성용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쳐들어 가제, 한양으로..."
이성용의 어깨가 처졌다.

"언제?"
"초하룻날."
이들의 대화를 뒤꼍에서 엿듣고 있던 사나이가 숨소리를 죽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못 들었는가?"
"아니,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분명 무슨 소리가 났단 말이야."
"도둑고양이 지나가는 소리겠지."
"아냐, 사람 발자국 소리였어..."
이성용이 동물적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남들은 다 가도 언심이 아부지는 가지 마셔요."
잠자코 듣고 있던 아낙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여보! 술이 다 떨어졌수. 더 내어 오구려."
호리병을 거꾸로 잡은 이성용이 배대승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병을 받아 든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으나 성벽은 의외로 견고했다
▲ 산채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으나 성벽은 의외로 견고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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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꾼의 세를 회의적으로 보는 산 사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가?"
침묵을 깨고 배대승이 입을 열었다.

"싹수가 노래."
"왜?"
"오합지졸이야"
"화승총이 있잖은가?"
"장군 없는 산채꾼은 오합지중이야."
"자네는 장군이 온다는 말을 믿는가?"
배대승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믿으니까 산에 올라갔지."
"자네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헛 똑똑이었군. 장군은 자네가 죽었다 깨어나도 안 올 사람일세."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어?"
"나도 처음에는 장군님이 온다는 소리를 믿었는데 이제는 믿고 싶지 않아졌네."
"나두 동감이야."
배대승은 확신에 찬 모습인 반면 이성용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장군은 죄인 신분으로 압송되고 있다

"더구나 임장군이 포박당하여 압록강을 건넜다는 소문이 의주에 파다하다네."
"정말?"
"그렇다니까. 그 소문도 헛소문일까? 생각했는데 참이라 믿고 싶어졌다네."
"왜?"
"오실 장군님이라면 세자빈이 사사되기 전에 왔어야 할 것 아닌가?"
"으음!"
이성용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고민할 것 없네. 내려온 김에 관가에 가 고변하시게나."
"끙!"

이성용의 입 속에서 파열음이 튀어나왔다. 찾아 간다 해도 고변이라 이름 붙이기가 낯부끄럽다. 현감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성용과 현감 사이의 내밀한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배대승은 친구의 목숨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했다.

"용기가 없다면 내가 동행해줌세. 망설일 것 없네, 어여 일어나게."
"관아에 원님도 안계실텐데..."
이성용이 현감 퇴청시간을 빌미로 꽁무니를 뺐다.

"동헌에 안 계시는 게 대순가? 관사로 찾아가면 되지..."
배대승이 팔을 끌었다. 마지못해 방문을 벗어난 이성용이 아내와 맞부딪혔다.

"탁배기를 더 내오라 해놓구 설라므네 어딜 가시는 겁네까?"
평양 출신답게 평안도 사투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관가에 좀 다녀올 일이 있어 그러하니 넘 걱정하지 마시라요."
배대승이 능청스럽게 평안도 사투리로 대꾸하며 골목길을 빠져 나갔다.


태그:#산채,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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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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