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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독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했는가'를 27회에 걸쳐 심층보도한 데 이어 '스위스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나의 한 표는 알프스보다 아름답다'를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난 5월 초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스위스의 한 캔톤(canton, 州)인 글라루스(Glarus)에서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라 불리는 주민총회를 현장취재해 보도했다.

란츠게마인데를 참관하기 위해 멀리 프랑스어권 칸톤에서 글라루스까지 찾아온 스위스인들.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의무와 권리라는 의미보다, 생활과 축제라는 의미에 더욱 가까워보였다.
 란츠게마인데를 참관하기 위해 멀리 프랑스어권 칸톤에서 글라루스까지 찾아온 스위스인들. 이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의무와 권리라는 의미보다, 생활과 축제라는 의미에 더욱 가까워보였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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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란츠게마인데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이다. 이 주민총회에서 주민은 캔톤 헌법,법률, 조약의 제정과 개정뿐만 아니라 세율과 일정액 이상의 세출을 결정하고, 캔톤지사를 비롯해 캔톤 각료, 캔톤의회 의원, 캔톤법원의 판검사, 연방상원 의원, 회계검사위원 등 선출직 공무원을 선출한다.

란츠게마인데에 참석한 주민은 자유롭게 발안하고 토론하며 그 자리에서 직접 거수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주민은 거의 무제한으로 개인발언권을 행사한다. 심지어 단 한 명의 주민이 캔톤헌법의 전면 또는 부분개정까지 발의할 수 있다.            

14세기 초부터 알프스 산악지대에 위치한 작은 캔톤들에서 시작된 란츠게마인데는 지금,  글라루스(인구 3만5천 명)와 압펜첼 내곽(인구 1만3천 명) 두 캔톤에서만 열리고 있다. 그러나 평균인구 2800명에 불과한 코뮌(commune)에서는 시민총회가 지배적 민주주의 형태로 건재하고 있다. 총 2681개의 코뮌들 중 4/5 이상에서 시민총회가 코뮌 최고의 권위기관으로 존재한다.

주민총회가 열리지 않는 24개 캔톤과 큰 코뮌은 비집회형(non-assembly type) 직접민주제를 활용한다. 특히 스위스 직접민주제는 캔톤과 코뮌 수준뿐만 아니라 연방정부 수준에서도 널리 시행되고 있다.
  
스위스 직접참정의 뿌리는 13세기 말까지 소급될 수 있지만, 캔톤과 코뮌 수준에서 직접민주제가 확산된 것은 19세기 초중반이었다. 연방 수준에서 연방헌법에 대한 의무적 시민투표제와 전면개정 시민발안제는 연방헌법이 제정된 1848년, 연방법률과 명령에 대한 선택적 시민투표제는 1874년, 연방헌법의 부분개정을 위한 시민발안제는 1891년 각각 도입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매년 코뮌-캔톤-연방 수준에서 제기되는 20~30건의 정책쟁점들에 대해 보통 춘하추동 네 차례 투표로 결정한다. 실로, 주요 국사(國事)와 지방현안을 직접 결정하기 위해 주민총회와 시민투표에 참여하는 스위스인들의 모습은 스위스 정체성의 정수를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정경이다.    

직접민주제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남다른 애정과 긍지 

글라루스 란츠게마인데 현장에서 고등학생인 아들, 딸과 함께 참석한 울리히(48, 사진 맨 오른쪽)씨는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지를, 그리고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한참동안 설명해주었다.
 글라루스 란츠게마인데 현장에서 고등학생인 아들, 딸과 함께 참석한 울리히(48, 사진 맨 오른쪽)씨는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지를, 그리고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한참동안 설명해주었다.
ⓒ 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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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관심과 애정은 가히 경이로운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당신이 스위스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60%를 넘는 응답자들이 "스위스 정치"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경제적 부나 알프스의 수려한 경관 또는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삶의 질'을 꼽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대다수 스위스인들은 이런 요인들보다 자신들이 진정한 직접 입법자들로서 참여하는 스위스 정치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대답한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냉소하는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충격적 응답이 아닐 수 없다.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스위스가 EU 가입을 미루어온 중요한 이유도 EU 가입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손상될 것을 다수 스위스 국민이 우려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민은 1992년 유럽경제지역(EEA) 가입 여부를 묻는 시민투표를 부결시킨 데 이어 2001년에는 EU 가입을 위한 협상재개 여부를 묻는 시민투표도 부결시켰다. 연방정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다수 스위스 국민은 스위스의 EU 가입으로 시민투표 대상 사안들 중 약 10~20%가 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걱정해 EU 가입에 반대한 것이다.    

스위스 직접민주제가 완벽한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1971년 뒤늦은 여성참정권 인정, 2002년 UN 가입 승인과 EU 가입 지체 등 대외정책에 대한 지나친 보수성, 그리고 최근 이슬람첨탑(minaret) 건립 반대에 나타난 공인되지 않은 소수에 대한 배려 부족은 그 동안 스위스 직접민주제가 보여준 어두운 측면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스위스 직접민주제가 경제성장, 갈등진정과 국민통합, 시민정신 함양, 행복 증진에 기여한다는 증거를 밝혀왔다.

직접민주주의가 경제성장과 행복증진에 기여

스위스 글라루스주는 재작년부터 투표연령을 16세로 낮췄다. 이 때문에 5월 2일 글라루스 주민총회 란쯔게마인데 현장에선 한표를 행사하는 고등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스위스 글라루스주는 재작년부터 투표연령을 16세로 낮췄다. 이 때문에 5월 2일 글라루스 주민총회 란쯔게마인데 현장에선 한표를 행사하는 고등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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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펠드(L. P. Feld)와 키르쉬게스너(G. Kirchgässner 1999, 2001)는 재정에 관해 주민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준 캔톤에서 경제적 성과가 1인당 GNP 기준으로 15% 더 높은 것을 확인했다. 예산안을 시민투표에 부치는 코뮌 역시 그렇지 않은 코뮌보다 1인당 공공지출이 10% 적었다.

그리고 예산안에 대해 시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캔톤에서 그렇지 않은 캔톤에서보다 조세회피 비율이 30% 낮고, 따라서 부채비율도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예산안을 시민투표에 부치는 코뮌에서도 그렇지 않은 코뮌에서보다 부채비율이 25% 낮게 나타났다. 직접민주제를 활용하는 코뮌에서 쓰레기 처리비용도 20% 낮았다.

크리쉬(H. Kriesi, 1995) 등의 연구에 의하면, 과격한 사회운동의 비율이 스위스의 경우 26%에 불과한 데 비해, 프랑스의 경우는 56%에 달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그 중간에 속했다. 직접민주제의 개방적인 정치적 기회구조가 급진적 사회운동의 정당성과 성공가능성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 크리쉬(H. Kriesi)와  위슬러(D. Wisler,1996)는 직접민주제의 개방성 수준이 낮은 라틴 캔톤이 독일어권 캔톤보다 사회운동이 더 과격한 양상을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메어헤너(W. W. Pommerehne)와 벡 핸네멘(H. Weck-Hanneman,1996)은 탈세금액이 직접민주제를 활용하는 캔톤의 경우에 그렇지 않은 캔톤보다 평균 1500프랑 적은 것을 확인했다. 프레이(B. S. Frey,1997)등의 여러 경험적 연구들도 직접민주제가 탈세를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프레이(B. S. Frey)와 스터쳐(A. Stutzer, 2000)는 직접민주제가 행복 증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에 연구에 의하면, 직접민주적 개방성 수준(캔톤의 직접민주적 개방성 수준을 1등급에서 6등급까지 구분함)의 1등급 상승이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을 금액으로 환산해 약 1700프랑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사실, 스위스 연구자들은 이런 경험적 연구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스위스의 성공스토리를 논의할 때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해왔다. 스위스의 발전을 오직 직접민주제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직접민주제가 스위스의 발전을 이끈 중요한 제도적 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백수십 년 동안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적절히 매개된 직접민주주의, 곧 준직접민주주의(semi-direct democracy)를 실행해온 스위스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과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9년 보고서는 스위스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각각 세계1위와 세계4위로 평가했다.

윌리엄 머서 사(社)가 64개 지표로 평가한 2009년도 세계도시의 '삶의 질' 순위에서도 10위권 안에 스위스 도시가 3개나 포함되었다. 취리히가 2위, 제네바가 3위, 베른은 9위로 각각 평가되었다. 오늘날 삶의 질은 도시의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스위스는 소국이지만 경제 강국이다. 스위스는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으로 11위지만 1인당 시가총액으로는 12만8천 달러로 세계1위다. 스위스는 해외직접투자액으로 세계 5위, 은행대부금액으로는 세계 3위다. 네슬레, 홀심, 신젠터, 스위스 리, 스와치, 아데고, UBS, 크래디스위스, 노바틱스, 로슈, ABB 등 기라성 같은 스위스 기업들의 이름은 스위스의 강대한 경제력을 실감케 한다. 

캘리포니아 직접민주제는 왜 부작용 심하나

직접민주제를 스위스 다음으로 가장 빈번하게 활용해온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재정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누적 적자 420억 달러로 재정비상 사태에 빠진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20만 명의 직원 해고, 복지-건강-교육예산의 대폭 삭감, 차용증서(IOU)로 대금을 지급하는 등 극약처방을 써왔으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6개 발의안이 시민투표에 부쳐졌지만 '주정부 선출직 공무원의 연봉 동결'을 규정한 발의안만 통과되었다. 타임지는 캘리포니아 주 재정비상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32년 전 법제화된 '주민발의 13호'(Proposition 13)를 지목했다.

1978년 74%의 압도적 찬성률로 통과된 시민발의 13호의 골자는 '부동산 재산세 세율을 전체 보유 부동산 현가의 1% 이하로 묶고, 연간 재산세 인상률을 2% 이내로 제한하며, 재산세 인상을 위해서는 주의 상․하원에서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재산세 격감으로 주재정이 어려워지자 시민발의 13호의 수정을 요구하는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공화당이 완고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법안을 바꿀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 재정위기가 직접민주제의 불가피한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법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스위스 성공적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직접민주제와 관련해 스위스의 성공과 캘리포니아의 실패를 가르는 결정요인은 '심의'(deliberation) 과정의 존부라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의 시민발안제는 시민사회와 의회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지한 심의과정, 즉 하버머스(J. Habermas)의 "양면심의정치"(two-track deliberative politics)를 결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시민발안제는 심의민주주의 관점에서 준직접민주제의 나라 스위스 시민발의제와 비교해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캘리포니아 주민발의는 정부(의회 포함)의 점검을 거치지 않는다. 반면, 스위스에서는 정부가 시민발의의 적격성을 점검한다. 스위스에서 정부가 시민발의의 부적격을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런 점검절차가 신중한 시민발의를 유도한다.

둘째, 캘리포니아에서는 시민발의에 대한 정부의 대안발의(counter proposal)와 공식의견 제시가 허용되지 않는 반면, 스위스에서는 정부가 시민발의에 대한 대안을 발의하고 공식의견을 표명함으로써 정부 관점에서 시민발의의 장단점을 드러내고 정책적 적실성과 정치적 실현가능성을 높인다.
     
직접민주제의 장점을 살리는 열쇠는?           

직접민주제의 질은 설계에 의해 결정된다.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경험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직접민주제 설계를 위한 지침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접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는 열쇠는 심의민주주의를 확충하는 데 있다. 직접민주제의 전 과정은 정부(의회)와 시민이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심사숙고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정부의 영향력이 심의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사되도록 직접민주제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관제(官制) 직접민주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민주제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사안은 시민투표로, 중요한 사안은 의회가, 덜 중요한 사안은 집행부가 결정하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특히 시민발안의 경우 시민에게 자유로운 의제설정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발의 대상에 대한 제한은 풀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시민발의와 다른 의견을 갖는 경우 최종 결정권은 시민에게 주어져야 한다.  

셋째, 직접민주제의 전 과정은 소통(communication)을 고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참여와 승인에 문턱을 설정하는 것은 소통을 막아 현상(現狀)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유리할 뿐이다. 최소 투표율 정족수 규정은 없애야 한다.   

넷째, 상호작용, 심사숙고, 토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어야 진지하게 발의할 수 있고 사회통합도 이룰 수 있다. 속전속결은 도전받기를 바라지 않는 기득권자들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서명기간은 최소한 6개월 내지 1년이 필요하다. 투표운동기간도 최소한 6개월 이상 보장되어야 한다. 중요한 정책과 법제의 경우에는 적어도 1년 또는 18개월이 필요하다.

다섯째, 시민발의 및 투표운동 기간에 사용된 기부금과 후원금은 투명성 원칙에 따라 철저히 공개되어야 한다. 

한국의 직접민주제 현황과 과제

근래 직접민주주주의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도 2000년부터 지방 수준에서 다양한 직접민주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2000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한국형 주민발의제도인 조례제정개폐청구제(제15조)와 주민감사청구제(제16조)가 도입되었다. 2004년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었고, 2006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소송제(제17조)가 도입된 데 이어, 2007년 주민소환법이 제정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처럼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직접민주주의의 정신과 장점을 살릴 만큼 충실한 내용을 갖춘 제도는 잘 눈에 띠지 않는다. 무엇보다, 핵심 직접민주제인 주민발의제와 주민투표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청구자의 수, 청구기간과 대상, 주민투표운동기간 등 직접민주제 활용 요건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 결과, 주민 직접참정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홍보되었던 주민투표제도는 발효된 지 6년이 지나도록 중앙정부의 요구로 실시된 세 차례의 주민투표('제주도 시·군 자치 폐지' 주민투표, '청주시-청원군 통합' 주민투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경쟁' 주민투표) 이외에 주민이 청구해 실시된 주민투표는 단 한 건도 없다.

더욱이, 조례제정개폐청구제도는 지방의회가 주민발의 안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의회가 수정가결 또는 부결, 심지어 심의를 거부해도 주민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 제도가 발효된 이후 발의된 130여 안건 중 대다수가 수정가결·부결 또는 심의거부로 폐기되고 말았다. 무늬만 주민발안인 셈이다. 

국가 수준의 직접참정은 극히 제한적이다.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다. 이 밖에 헌법 제72조에 규정된, 대통령에게만 발의권이 인정되는 국민투표제는 국민 주도의 직접참정제가 아니다. 헌법 제26조에 규정된 청원권 역시 부탁이나 탄원에 그쳐 직접참정제로 보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한국 헌법은 대의민주주의를 헌정질서의 기본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사전 허락을 받은 방청인에게 지방의회 회의장에서 발언하는 것을 허용하는 완주군의회의 조례를 위헌으로 판정한 대법원 판례는 이런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스위스가 누려온 직접민주제의 장점을 살리는 선진적 직접민주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발안제와 주민투표제의 '직접민주적 개방성'(direct democratic openness)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심의민주적 절차를 확충함으로써 필요한 정보의 공유, 심사숙고, 진지한 토의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직접민주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재정주민투표제를 비롯한 의무적 주민투표제의 도입도 필요하다. 나아가, 국가 수준의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의 도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 특별취재팀 : 오연호 대표기자(팀장), 안성호(편집자문위원, 대전대 교수), 윤석준(기획위원), 남소연 기자(사진), 박정호 기자(동영상), 앤드류 그루엔(Andrew Gruen, 영문판)

덧붙이는 글 | 필자 안성호는 대전대 교수이며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의 편집 자문위원이다. 저서로 <스위스 연방 민주주의 연구> 등이 있다.



태그:#직접민주주의, #스위스, #글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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