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일(29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초읽기에 들어간 전주국제영화제. 지금 몸과 마음이 가장 바쁜 사람은 민병록 집행위원장일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맡은 지 올해로 8년째. 처음도 아니건만 영화제를 앞두고는 몸과 마음이 늘 처음처럼 긴장된단다.  민 위원장을 지난 20일, 성하훈 기자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실에서 만났다.

 

- 올해로 11년째다. 10년을 넘긴 기분이 어떤가?

"한고비를 넘겼다는 기분이 든다. 이제 누구도 건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 시작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4회부터 전주국제영화제를 맡았는데 그 당시에는 예산을 반으로 줄이자, 격년으로 줄이자, 누구를 위한 영화제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이병헌, 이미연 등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동원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참가시켰다. 그러자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4~6회까지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7회부터 시민들이 영화제 보는 눈 달라져"

 

 전주국제영화제가 펼쳐질 고사동 영화의 거리. 영화제를 알리는 홍보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펼쳐질 고사동 영화의 거리. 영화제를 알리는 홍보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 성하훈

- '자유 독립 소통'으로 슬로건을 바꾼 장본인도 민 위원장이라고 들었다.

"처음 슬로건은 '대안영화 '디지털영화''였다. '대안'이라는 단어가 어려웠다. 영화제작비 50억 원이 넘어가면 그건 PD영화지 감독영화가 아니다. 독립영화는 저예산으로 하기 때문에 감독의 스타일과 표현이 존중된다. 영화제작 환경과 제작비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했다."

 

- 몇 회가 가장 기억에 남나?

"딱히 몇 회가 기억난다기보다는… 7~8회 때쯤 되자 전주시민들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맡고난 후 3~4년이 고비였는데 그 후부터는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 처음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매우 나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영화제냐'는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궁전', '야외상영'과 같은 섹션을 늘렸다.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어렵다. 지금은 많이 호응해주는 것을 느낀다.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촬영소, 영화제작소도 만들었다. 인프라가 많이 확장되었다. 전주시의 변화 덕분이다."

 

- 촬영지로서 전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연환경이 많이 보존되어있고 옛 모습이 그대로 잘 유지되고 있다. 인심도 좋고 음식 숙박료도 저렴하고 서울과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된다."

 

"전주영화제, 로카르노 영화제처럼 만들고 싶다"

 

민병록 위원장은 전주출신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 전주출신이기 때문에 책임감은 더 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지는 않았을까. 민 위원장은 명쾌하게 '아니다'고 말했다.

 

민 위원장은 "영화제는 영화제를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한다, 어떤 지위나 명예에 있다고 해서 영화제를 운영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과 수많은 영화제에 참석한 경험 등으로 인해 영화제에 관한 전문성은 자부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개막식도 정각에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디 개막식뿐인가. 정시상영을 목표로 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단 10초만 늦어도 극장에 들어갈 수 없다. 가끔 관객들과 스태프들 사이를 불편하게도 만드는 이러한 원칙은 바로 민 위원장의 철두철미함에서 비롯됐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철저함이 오늘날의 전주국제영화제를 이루는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것.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 로카르노 영화제를 '역할모델'로 삼는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로카르노 영화제는 60회가 넘었다. 하지만 신인감독을 발굴해서 널리 알려주는 본연 임무는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칸도 원래는 그런 취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규모가 커지고 상업적으로 가다보니 오늘날의 칸이 되었다. 그러나 로카르노는 지금도 변함없다. 전주국제영화제도 그런 영화제로 만들고 싶다."

 

- 신임감독을 발굴해서 육성한다는 점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홍보대사다. 세계영화제에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린 일등공신이다. 그 영화들이 세계 영화제에 출품되면서 전주국제영화제를 소개했다. 영화제에서 돈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영화관계자나 평론가들 입장에선 굉장히 신선했던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세계무대에 비교적 빨리 알려진 비결이기도 하다."

 

- 일부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이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약간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초창기 때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실제로 어려운 영화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섹션별로 다양한 영화가 소개된다. 시네마 스케이프는 현재 세계영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섹션인 반면, '영화궁전'이나 '야외상영' 섹션에는 가족끼리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들을 상영한다. 물론 실험영화와 예술영화가 따로 있는데 이것으로 전체적인 특성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 올해는 애니메이션이 많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3D? 하나의 장르일뿐, 영화 흐름 끌어가진 못해"

 

- 전주국제영화제 하면 '특별전'을 빼놓을 수 없다. 

"특별전을 통해서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 이란 등의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했다. 나도 베트남에 관한 영화를 수준을 낮게 봤는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좋은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 아직도 할리우드 영화나 프랑스 영화가 최고인 줄 알지만 그런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게 영화제가 할 일이다."

 

- 8년째 전주국제영화제를 꾸려오면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터. 어떤 게 기억에 남나?

"쿠바영화특별전(2004년)할 때 무척 힘들었다. 쿠바에서 3명의 영화관계자가 캐나다를 거쳐 오기로 되었는데 비자를 발행 안 해준다는 거다. 망명할까봐 비자발급이 안 됐던 것이었다. 당시 전주시장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쓴 뒤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페이퍼 비자를 발급해달라고 하지 않나. 당시엔 쿠바와 우리나라가 수교가 안 되었기 때문에 곤란한 일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문광부, 법무부의 허락을 받아서 천신만고 끝에 발급했다. 그런데 이제는 비행기표가 없는 거다. 간신히 비즈니스로 끊어서 데리고 왔다. 이 사람들이 영화제 끝나고 갈 때는 상금 1만불까지 타 갔다.(일동 웃음) 그 후로 쿠바에서 영화를 만들면 우리에게 연락해준다. 이렇게 인적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게 성과가 아닌가 싶다."

 

민 위원장의 영화인으로서의 '개인의 취향'은 무엇일까. 영화제를 앞두고 수백편의 필름을 검토해야 하는 위원장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장르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요즘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3D영화'에 관한 의견도 물어보았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예술영화, 실험영화를 좋아한다. <품행제로>라는 영화가 있다. 30년대에 만들었는데 시적 리얼리즘 영화다. 80년대 미국에서 그 영화를 만났다. 대사도 없고 드라마도 없지만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 영화를 보고 충격 받았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이론으로만 배웠다. 영화를 실제로 본 건 유학을 가서부터였다.

 

TV 속 드라마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라면 영화는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매체다. 그렇게 찍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안토니오니의 <정사>는 칸 영화제에서 개봉했을 때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여주인공이 중간에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인 영화였는데 다음날 프랑스 일간지에 매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라고 호평이 났다. 그런 영화들이 좋다."

 

- 요즘 3D영화 붐이다. 비주얼이 강조되는 이런 상황이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나.

"3D영화는 판타스틱 영화나 공상과학 영화에나 어울리지 일반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세계시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국내에만 보급한다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3D영화는)일반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3배 정도 든다. 3D영화는 그냥 장르의 하나일 뿐, 영화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임권택 <달빛 길어올리기> 상영 무산, 많이 아쉬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키스할것을> 박진오 감독과 민병록 집행위원장. 개폐막작은 민병록 위원장이 직접 결정한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키스할것을> 박진오 감독과 민병록 집행위원장. 개폐막작은 민병록 위원장이 직접 결정한다 ⓒ 성하훈

 

- 이번 영화제에서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와초(Huacho)>라는 칠레영화다. DVD로 보는 것과 필름으로 보는 것과의 차이가 크다.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스크린에서는 11스텝으로 표현되는데 DVD에서는 5스텝으로 줄어든다. 꼭 필름으로 보기를 권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이야기할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당초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상영이 무산된 것. 지난겨울, 유독 눈도 많이 내리고 기후도 나빴다. 악천후로 인해 영화촬영이 지연되었고 영화제 개막일에 영화를 완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달빛 길어올리기>의 개막작 무산에 대한 아쉬움이 클 텐데.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얼마나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드느냐가 중요하지 개막일에 맞추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감독을 압박할수록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 영화작품 선정은 어떻게 하나?

"영화제의 성격에 맞는 영화들을 프로그래머들이 맡아서한다. 개막작과 폐막작의 최종적 선정은 내가 한다."

 

- 영화제에 변수가 많아 1년 동안 늘 조마조마하겠다.

"올해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어서 필름이 수급되지 못한 게 몇 개 있다. 그러나 큰 걱정 안 한다. 자원봉사부터 시작해서 모든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기 때문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을 늘릴 계획은 없는지.

"200편 전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부산영화제가 10회 때 상영작을 2배로 늘렸는데 과부하가 걸렸다."

 

"영화제 몇 년 더 하고, 감독으로 돌아갈 예정"

 

- JPP(전주 프로젝트 프로모션)을 작년부터 시작했다. 독립영화시장을 어떻게 보나?

"일본,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요즘 독립영화시장이 엄청 크다. 우리나라는 상업영화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데 요즘 틈새를 뚫고 올라오고 있다. 차츰 독립영화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독립영화를 활성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서서히 키워나가야 한다."

 

- 매해 통역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는데.

"영화 전문 동시통역사가 부족하다. 영화만 전문으로 할 수 있는 통역사 발굴이 필요하다."

 

민 위원장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한 작가를 5년 동안 지원해주는 영국과 1년에 4억 원씩 10편을 지원해주는 대만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오늘날의 '에드워드양', '허우샤오시엔'과 같은 감독의 출현이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회 영화제를 마치고 난 후 드는 아쉬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우선은 영화제의 기반을 잘 닦아놓는 뒤, 집행위원장을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감독으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는 일이다. 앞으로 약 2년 정도 영화제 일을 더 하고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시나리오도 몇 편 써놓았다."

덧붙이는 글 |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오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열린다. 

2010.04.27 10:55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오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열린다.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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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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