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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국민은 군을 탓하고 군은 국민과 언론을 탓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자들의 지나친 상상력이 안보 위기를 부른다?

2일 오후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군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2일 오후 국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군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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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인 지난 4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백령도 현장을 다녀온 뒤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기자들에게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너무 근거 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나오는 보도는 국민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방 전문가들도 거들고 나섰다. 국방연구원의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언론 보도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하며 "우리 군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어떻게 전파하는가 하는 것이 노출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방연구원의 김태우 책임연구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우리 해군이 발가벗었다. 북한 좋은 일만 한 것 아니냐"고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았다. 천안함의 항로가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는 "군이 밝혀서도 안 되고 언론이 요구해서도 안 되는 사안"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이상 <매일경제>, 4월 5일자).

과연 그럴까. 지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정말 기자들의 지나친 상상력 때문일까.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는 이유가 우리 군의 정보 수집 루트가 노출됐기 때문일까. 혹시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군이 파악했다는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해서는 아닐까. 아니, 오히려 국민들은 군이 제대로 된 정보 수집 루트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 불안 막으려면 군 '입' 단속부터

김태영 장관의 '어뢰 가능성'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는 3일자 신문에서 집중보도했다.
 김태영 장관의 '어뢰 가능성' 발언에 대해 <조선일보>는 3일자 신문에서 집중보도했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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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잦아들던 북한 관련설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김태영 국방장관 자신이었다.

지난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김동성 한나라당 의원이 "기뢰와 어뢰의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높나"는 질문에 "어뢰일 가능성이 조금 더 실질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결국 며칠 뒤 김 장관은 기뢰와 어뢰 가운데 어느 쪽이 유력하냐는 '2지선다형'으로 몰고 간 탓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윗선으로부터 '답변 지침'을 내려 받아야 할 정도로 그 파장은 컸다(<오마이뉴스> 4월 5일자).

문제는 또 있다.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북한 위협론을 퍼뜨리려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 보도다.

백악관과 청와대, 또 국방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조선일보>는 10년도 훨씬 지난 9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며 북한 잠수정의 침투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총 21차례의 동해 침투일지가 기록돼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는 이름 모를 '한 소식통'의 흐릿한 기억을 그대로 헤드라인("北 잠수정, 21차례나 몰래 동해 들락거렸다")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따라서 정말로 국민들이 불안해할까 걱정된다면 장관 자신과 <조선일보> 입단속부터 하는 것이 옳다.

나라 지킬 60만 장병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서해 백령도 서남쪽 1마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 침몰한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의 실종자 수색이 기상 악화로 어려워진 가운데 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장촌포구 해안가에서 특전사 대원들이이 고무보트를 옮기고 있다.
 서해 백령도 서남쪽 1마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 침몰한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의 실종자 수색이 기상 악화로 어려워진 가운데 1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장촌포구 해안가에서 특전사 대원들이이 고무보트를 옮기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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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부름을 받은 청춘들이었다. 어쩌면 생의 가장 푸른 시절일지 모를 그 수년의 시간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바치겠노라며 달려간 그들이었다. 어두운 바다 속에 갇혀있는 동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나라가 온 힘을 다해 자신들에게 달려와 주리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 믿음 하나로 그 두렵고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지 않았을까.

만일 그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 나라가 당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자신이 없다. 사고 발생 지점으로부터 180m 떨어진 곳에 있던 당신들을 60시간이 지나서야, 그것도 민간 어선의 도움을 받아 발견했다는 사실을 차마 전해줄 자신이 없다. "초기 대응을 잘 했다"는 군 최고통수권자의 낯부끄러운 발언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잠수 장비조차 없어 당신들과 같은 힘없는 젊은이들을 또 다시 위험한 바다 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결국 당신들을 진심으로 염려했던 한 명의 준위가 목숨을 잃고 9명의 민간인 선원들이 사망·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그리고 그 사이 번쩍이는 다이아몬드와 대나무잎과 별을 가슴에 달고 있는 그 무수한 장교들대부분은 전투화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는 사실도 차마 전할 수가 없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전투에서 적장의 목을 베려했던 이유는 그것이 곧 수천 수만 군사의 사기를 꺾어 적을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기는 어쩌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보이지 않는 전투력'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을 대한민국 60만 장병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위기에 처한 군인에게 이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 정도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보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느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북한이 1200t급 초계함에 몇 명이 타는지,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 다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이상 시간 끌지 말고 진실의 입을 열어라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맞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력이 지나친 기자들 때문도, 지나친 정보를 요구하는 국민들 때문도 아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책임 있는 모습도, 뭐 하나 속 시원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의 한심한 행태 때문이다.

진정 국가 안보가 걱정된다면 지금이라도 유족들과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더 수습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진실을 꺼내 놓아야 한다. 아무리 군대라 해도 더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고 한주호 준위의 영면을 빈다.


태그:#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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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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