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의형제 ⓒ 네이버 영화

"나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의형제>의 주인공 송지원(강동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뱉는 대사다. 이 대사는 그의 인간적인 성품과 '의형제'라는 제목에 딱 맞아 떨어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의형제>는 남파간첩 송지원과 국정원 요원 이한규(송강호)의 의리를 다룬 영화다. 남북한 양측에서 버려진 두 남자는 아슬아슬하게 공동의 사업을 꾸려가면서 남북관계, 결혼이주여성 문제와 같은 한국 사회의 현안에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둘은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의형제'로 거듭난다. 그런 의미에서 송지원의 대사 "나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는 두 주인공의 의리를 강조하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그러나 과연 송지원은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지원은 북에 두고 온 자신의 가족 외에 모두를 배신했다. 우선, '그림자'와의 총격전에서 결정적인 시기에 상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 동지를 위험에 빠뜨렸다. 또 이한규가 국정원 직원임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함께 일한다.(송지원이 북에서 버려졌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는 물론이고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 밤마다 PC방을 찾아 상부에 신상을 보고할 때도 그가 이한규와 일하는 목적은 국정원 직원 염탐보다는 남파 간첩으로서의 어려운 경제상황 해결인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 신부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수갑을 풀어줄 뿐 돈을 받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브로커 일은 계속 한다. 집에서 쉬는 척 하면서 이한규를 미행하고 도청하기도 하고, 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교수를 처리하는 작전에도 동참한다. 이 모든 배신은 송지원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다.

 

가족을 모든 가치의 우선에 놓는 것은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퇴행으로 흐르기 쉽다. 사회적 정의나 연대,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수재로서 고민했을 법한 평등이나 인민의 안위 같은 보다 큰 가치들에 비하면 '내 가족'만을 위한 삶은 '내 가족'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있다. 송지원의 휴머니즘 역시 자기만족으로 그친다. 아파트 총격전에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생명을 구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아이의 부모를 죽인 살인자에 불과하다.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베트남 신부를 남편에게 데려다 주는 것을 포기하고 동생의 집에 두고 오지만, 그 남편이 그 이후에 다른 흥신소를 통해 신부를 찾아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송지원은 한국 사회의 예민한 상황들을 건드리지만, 그 뿐이다. 그는 결국 (북한에 남겨졌던) 옛 가족을 찾아 새 가족(이한규)과 영국으로 떠나버린다. 해피엔딩인 듯 보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족 외에 모든 것을 버린 이기적인 송지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앞으로도 한국의 결혼 이주여성 문제와 남북 긴장관계는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의형제>를 <공동경비구역JSA>처럼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영화의 계보에 놓는다. 그러나 남-북의 대치상황,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대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 싹트는 인간적 연대, 그것을 통한 분단극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JSA>에 <의형제>는 한참 못 미친다. 엘리트 남파간첩 송지원과 투철한 국정원직원 이한규 사이의 갈등은 '그림자'가 당의 지시가 아닌 개인행동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어이없게 해소되고, 인도적인 대북사업을 하는 목사와 방송국 PD를 '빨갱이'라고 욕하는 이한규의 대북관은 이중간첩 손태순을 시혜적으로 돕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두 주인공의 유일한 공감대라면 가족과 떨어져 있는 아버지가 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성애'다. 이 상황에서 남북관계라는 배경의 스펙터클은 영화의 액세서리에 불과해지고, 두 주인공은 보수적·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담지자로만 남는다.

 

<의형제>의 흥행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우아한 세계>이후 찌질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아버지 역할의 최고치를 보여주는 송강호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착한 성품을 가진 나쁜 놈으로서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 여지없이 공감을 이끌어냈던 강동원의 연기 앙상블은 평단과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킨 주된 원인이다. 그러고 보면 <의형제>는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정윤수가 '형제애'와 '가족애'로 뭉친 이야기에 불과하다. 보수적인 가족주의를 '의리'로 포장한 후 이 땅을 떠나버릴 것이 아니라, 생각과 문화가 다른 남북한 인민들과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 모두를 행복하게 할만한 연대의 가치를 둘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서 발견해낼 수는 없었을까. 그런 더 큰 가치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좀 '배신'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무엇을 위한 배신인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배신 자체를 두려워하는 우유부단함은 이기적일 뿐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2010.02.25 10:51 ⓒ 2010 OhmyNews
의형제 가족주의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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