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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2000년 2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민참여저널리즘의 새 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매년 시민들과 함께 한 참여민주주의의 현장 속에서 의미있는 뉴스의 인물들을 찾아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왔습니다. 그들의 면면이 바로 <오마이뉴스>가 만들어낸 지난 10년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창간 10돌 기념] '올해의 인물, 그 후'를 조망하는 연속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머리를 왜 안 깎느냐고요? 귀찮아서……."

박경석(51) 노들야학 교장은 말총머리를 매만지며 껄껄 웃었다. 그의 말총머리는 멋이 아니라 장애인의 현실이란다. 휠체어 탄 몸으로 이발소에 가기 힘들어 그냥 계속 기르고 있다.

"이발 비용 안 들어서 좋다"며 너스레를 떠는 박 교장은 장애인운동의 상징적 존재다. '노들야학 교장' 외에도 수많은 직함을 가졌다. 장애인운동의 현장에는 늘 그가 맨 앞에 있었다. 박 교장의 지난 10년은 곧 '한국 장애인운동사 10년'이다. 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노들야학 청솔반 교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동권 운동'은 살인적 속도 막으려 한 행동

 박경석(51) 교장이 노들야학 교무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경석(51) 교장이 노들야학 교무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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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장은 '장애인 이동권' 운동으로 지난 2001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관련기사 비장애인의 편견 허문 '버스타기 혁명'). 그 해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사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리프트 정비가 허술해 장애인이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한 가운데 사망 사건까지 일어난 것이다. 리프트를 이용하다 다친 장애인들 중에 노들야학 학생들도 있었다. 박 교장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지하철역 선로와 버스정류장을 점거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버스 같이 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떠나는 버스를 침만 질질 흘리며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거죠. 세상의 속도를 멈추려는 행동이었어요."

당시에는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비장애인들에게 이동이란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동이 절박한 '권리'였다. 버스 차체 높이 45cm는 장애인들에게 절망적인 높이다.

마침내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승강기가 설치됐고, 신설하는 지하철역은 의무적으로 승강기를 설치해야 한다. 2013년까지 시내버스의 50%가 저상버스로 교체된다. 장애인 콜택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똥물 맞으며 이룬 '에바다 농아원' 민주화

경기도 평택의 에바다 농아원은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비리재단은 토호세력과 결탁해 노동착취, 폭력, 성추행, 공금횡령을 저지르며 농아들을 감금했다. 96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조직국장을 맡고 있던 박경석 교장은 2003년까지 7년 동안 에바다 인권투쟁에 나섰다.

재단은 농아들을 시켜 그의 얼굴에 똥물까지 퍼부었지만 결국 민주 이사진이 농아원을 정상화시켰다. 박 교장은 "시설비리 투쟁을 수없이 많이 했는데 에바다처럼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고 농아원이 정상화된 2003년을 회고했다.

"에바다는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아주 의미 있는 투쟁이에요. 오래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서 시설 법인 자체를 완전히 바꾼 투쟁입니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아요. 새롭게 만들어가는 에바다를 보면 뿌듯해요. 함께 싸웠던 사람들에게도 고맙죠."

박경석 교장은 에바다 농아원 비리를 "빙산의 일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설 비리가 많은데 당장 알려지지 않고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며 "장애인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시설의 민주화가 꼭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경석 교장은 장애인시설민주화연대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시설의 민주화'를 넘어서는 '장애인의 탈시설'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꾼다.

"장애인을 사랑과 복지의 이름으로 시설에 가두고 있어요. 장애인들이 시설을 넘어서 지역사회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모두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4월 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2008년 1월 8일 석암베데스타요양원 이전 반대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재단은 시설이 자기들 재산인 줄 아는데, 우리가 낸 세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며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장애인들에게 시혜를 내리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2008년 1월 8일 석암베데스타요양원 이전 반대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재단은 시설이 자기들 재산인 줄 아는데, 우리가 낸 세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며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장애인들에게 시혜를 내리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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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하지만 박경석 교장은 이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특히 2005년 4월 20일에 장애인 700여명이 참가한 마포대교 점거시위는 장애인단체 사이에서 이른바 '마포대첩'으로 유명하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해서 영화 보여주고 꽃구경 시켜준다고 장애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요. 장애인을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권리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부끄러운 '장애인의 날'을 권리를 찾는 날로 만들자는 것이죠. 그래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사다리와 쇠사슬을 몸에 묶는 장애인들의 시위는 비장애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일부에서는 장애인 운동이 과격하고 폭력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 교장은 "도로점거는 가장 평화적인 시위"라고 차분하게 반박한다.

"간디도 비폭력 운동하면서 길바닥 점거했어요. 비장애인들은 빨리 가지 못해 짜증나겠죠.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폭력인지 생각해봐요. 장애인은 사회에서 아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어요. 장애인을 버려두고 비장애인의 속도로 가버리는 게 더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장애인 운동을 20년 넘게 했지만 아직까지 현역 활동가로 남았다. 현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로 활동하며 바쁘게 산다.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를 권유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살다 죽고 싶다"며 빙그레 웃었다.

삶의 수확을 함께 일구는 '노란 들판'

보건사회연구원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중 49.5%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1993년 3월에 개교한 노들장애인학교(노들야학)는 장애인 교육의 희망이다. 박경석은 94년 노들야학의 교사가 됐고, 97년부터 지금까지 교장을 지내고 있다.

노들야학은 교양이나 예능도 가르치지만 비장애인과 똑같은 교육을 하려고 노력한다. 학생이 50명, 교사가 20명 정도 되는데 교사는 매월 회비 1만원을 내면서 가르친다. '노들'은 가을에 벼가 풍성하게 익은 '노란 들판'이란 뜻이다. 삶의 수확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구자는 학교다.

그의 '교육열'은 강남 엄마 뺨친다. 2007년 3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식'에 참석했을 때 박경석 교장은 대통령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의 교육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마침내 '장애인교육지원법'이 그 해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하는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희망은 실망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가 법은 있는데 예산이 없다면서 안 하네. 장애인들 학교, 학급 없는 게 돈 없는 이유도 있지만 교사가 없는 이유도 있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교원 동결해서 선생님이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4대강에 돈 다 썼는지 모르겠지만 돈 없다고 해요."

그는 2006년 3월에 사회적 기업 '노란들판'도 만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현수막 공장이다. 직원 17명 중 절반이 장애인이다. 장애인 직원이 비장애인 직원의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박 교장은 "물건 만들다 '빵꾸' 내기도 한다"며 웃었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그래도 어떻게 하면 함께 하느냐는 고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예산이 4대강에 빠져 죽었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며 "좀 웃어달라" 청하자 박경석 교장은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며 "좀 웃어달라" 청하자 박경석 교장은 '진지하게' 웃어주었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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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31일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장애인 복지예산이 2361억 원 삭감됐다. 이에 그는 "장애인 예산이 4대강에 빠져 죽어버렸다"며 목청을 높였다. 박 교장은 이명박 정부가 장애인까지 시장의 영역으로 몰아낸다며 비판하고 "장애인은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신체를 가졌다"고 덧붙였다.

"대소변 못 가리는 중증장애인들에게 '경쟁' 같은 시장논리는 안 되죠. 일부 성공한 장애인은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가나다'도 못 쓰는 많은 장애인에게 경쟁은 폭력이에요."

보건복지가족부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이 224만 6965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4.7%니까 대한민국 국민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인 셈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목소리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박 교장은 "장애인 문제를 장애인 시각으로 알리기 위해" 올해 1월 15일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를 창간했다.

그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숫자 '10'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3' 정도라고 본다"며 지난 10년을 정리했다. 이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거치면서 일정한 법과 제도가 마련됐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참 황량한 시절이 돼 버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헤어질 때 그가 악수를 청했다. 손가락이 억셌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퍼져 있었다. 상식적인 권리마저도 힘겹게 싸워야만 쟁취할 수 시대, 투사의 손이었다.

덧붙이는 글 | 허진무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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