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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 오마이뉴스 배주환


"어이, 어디 가는 거야, 화장실 가는 거 아니었어?"
대뜸 반말이었다. 휠체어에 의지한 박경석(41) 씨가 세종문화회관 구내 찻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극장 안전요원이 다급히 불러 세웠다. 집회 도중 구내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을 '배려'했던 그에게 '휠체어를 탄 손님'은 낯설었던 탓이다.

올해 마지막이 될, 아홉 번째 장애인 버스 타기 행사가 열린 19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 집회를 마치고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터뷰하려 했던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41) 공동대표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장애인 문제는 동정이나 시혜 차원으로 해결될 게 아닙니다. 사회구조 자체를 바꿔야 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말이죠."

'아홉 번의 반란'...장애인 버스 타기 행사


ⓒ 오마이뉴스 김시연
"누구나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당연하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동의할 뿐이지 지하철 편의시설을 늘리고 저상버스를 도입해 달라는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다들 외면하기 바빠요."

서울 구의동에서 노들장애인야학을 이끌고 있는 박경석(41) 교장에게 장애인 이동권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당장 30여 명의 장애인 제자들이 등하교길에 직접적인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년 전엔 야학에 다니던 이규식 씨가 혜화역 장애인용 리프트를 이용하다 크게 다치는 바람에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법정 투쟁으로 벌이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뛰어든 건 지난 1월20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한 70대 장애인 노인이 장애인용 리프트 고장으로 추락사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에서는 보상금 1억8천만 원을 물고 단순 사고로 무마하려 했어요.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사고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 하나 없는 정부에 맞서 대책위를 꾸렸고 지금의 이동권연대 투쟁으로 이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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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역대책위 지하철 선로서 농성(2월6일)- 김형수/이종호 기자

"이동권 문제 얘깃거리라도 돼 봤으면..."

▲ 19일 종로3가 점거 농성 현장의 박경석 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2월6일 지하철1호선 서울역 철로 점거를 시작으로 아홉 차례에 걸친 장애인 버스 타기 행사, 서울역 천막 농성, 버스 및 도로 점거 농성 등을 통한 장애인들의 처절한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박경석 교장과 동료 장애인들은 수 차례에 걸쳐 구치소에 수감되고 수백만 원 벌금을 무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장애인이 죽고 다쳐도 말 한마디 없는 세상에서 아무리 말로 이동권을 호소해 봤자 소용이 없었어요. 이런 식으로 투쟁해서라도 사회적인 담론이나 얘깃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경찰과의 충돌도 불사한 채 벌어진 휠체어 장애인들의 강경 투쟁은 장애인단체 내부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껏 장애인 문제를 다루면서 사랑과 동정을 먼저 이야기했어요. 장애인 스스로도 아름답고 순종적으로 보여 사람들의 눈물을 자극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죠. 하지만 그럴수록 장애인 문제는 더욱 왜곡되고 본질은 가려질 수밖에 없어요. 더 이상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물리적인) 힘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봐요."

20년 휠체어 인생, 버스에 올랐을 때

▲ 20일 저녁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 시상식에서 박경석 교장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자신이 오마이뉴스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신들의 활동이 인정받았다는데 반가워하는 한편으론 무척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전교생 500여 명중 500등 정도 하다가 한 번 열심히 공부해서 300등 정도로 껑충 뛰었을 때 '성적 진보상'을 받은 것밖에 없는데..."

83년 패러글라이딩 사고를 당한 뒤 20년 가까이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그가 스스로의 의지로 버스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사고 직후 5년 동안 버스는커녕 집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던 그는 91년 대학에 다시 입학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스티브 호킹이나 헬렌 켈러 같은 능력 있는 장애인이 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공부에만 매달렸어요. 하지만 (장애인으로서) 깰 수 없는 사회의 벽을 실감했고 한 사람의 성공보다는 모든 장애인들이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 깨달음이 실천으로 구체화된 것이 94년 노들장애인야학 설립이었다. 당시 실무자로 참여해 교사와 학생들을 모집했던 그는 스스로 수습교사가 됐고 교사 대표를 거쳐 교장직까지 맡게 됐다.

박경석 교장 인터뷰 / 시민방송


"비장애인과 함께 버스 타고 싶을 뿐"


ⓒ 오마이뉴스 김시연
"시민의 발목을 잡는 투쟁 방식이라고 지탄을 받을지라도 우리에겐 너무나 절박한 생존권 문제입니다.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큰 성과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요구해온 것은 장애인과 노약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전면 도입해 달라는 것. 하지만 서울시는 장애인용 무료셔틀버스 운행으로 이를 무마하려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건설교통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상황이다

"지난달 저상버스 시승식에서 혼자 힘으로 버스에 올랐을 때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결국 장애인 정책의 근본 문제는 장애인을 사회에서 단절, 격리시키려 한다는 거예요. 노동, 교육도 모두 분리된 상황에서 교통정책마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시키려 해선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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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