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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의 세월도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사그라뜨리지 못했다. 아니 가족을 찾고 싶은 심정은 더욱 간절해졌다.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도 최근 두번째 시집 <고의적 구경>을 펴낸 강원도 출신 고철(48·본명 김금철) 시인은 사연이 많다.


어린 시절 춘천시 후평동 후생원에 6~7세의 어린 그를 맡기며 "며칠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1995년 '한겨레 문학'으로 등단한 고철 시인은 부모를 찾겠다며 표지에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을 실은 1집 시집 '핏줄'을 지난 2006년 출간했다.


혈혈단신 고아가 된 그는 첫 시집 <핏줄>에서 어릴 적 자신의 사진과 보육원의 서류, 당시 정황을 공개하며 가족을 찾으려 애썼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후생원이 사라지면서 홍천 명동보육원으로 옮긴 고씨는 그가 신철원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고, 본명 '김금철'도 홍천 명동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필명인 '고철'은 자신의 본명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고향 철원을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첫 번째 시집은 부모를 찾아야겠다는 집념이 담긴 '찌라시' 성격의 작품집이었고, 이번 시집도 뿌리를 찾는 일의 일환입니다. 훌륭한 시인이 되어 필명을 날리면 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요?"

 

 

자신의 핏줄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그늘진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고철 시인의 어린 모습 사진이 그려진 1집과 달리 2집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가 '찌라시' 개념이라고 말한 1집이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다면 2집은 '자아'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파트 외벽 페인트공, 2집의 시들은 높고 위태로운 허공에서 외롭게 탄생했다. 차가운 아파트벽을 마주보며 가족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새겨나갔다.


"고아란 사실과 가난한 현실이 싫고, 숨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저를 완전히 드러냈고 이를 통해 저를 찾고 싶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펴냈던 시집 <핏줄>의 첫장을 넘기면 그의 어린시절 비망록이 펼쳐진다.

30년 전에도 지금도, 고철의 특기는 '시와 노는' 것이다. 고철은 시쓰기를 심오한 문학적 작업이 아닌 놀기로 규정함으로써 친근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이입하는 것이다.


용접공 시인 최종천씨는 "고철 시인은 잘 놀줄 안다"며 "그가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평을 내 놓기도 했다.


"시 말고는 제가 자랑삼아 내 놓을 좋은 놀이가 없습니다. 시가 없었다면 제 팔둑에는 십이지상 같은 세월 좋은 지문과 문신이 여러 날이었을 겁니다."


고철씨는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균열을 아파트의 균열을 치료하는 방법처럼 시를 통해 치료하고 있다.


그것이 곧 죽어도 핏'줄'을 놓을 수 없는 간절하고 끈질긴 시편들인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던 1980년대 명절 때 '고향에 가십니까'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 예'하고 대답하며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쌓인 외로움을 시를 통해 풀었습니다."


그토록 찾고 싶은 혈육을 위해 그는 방송국 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이번이 아니면 영영 못 찾을 것 같아 한 밤중 오금을 접고 잠에서 깨어나 강원일보를 뒤지고 연락했다"며 "예닐곱살 때의 어린 사진 한장을 유일한 단서지만 부모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일보에도 실렸습니다.


고의적 구경

고철 지음, 천년의시작(2009)


태그:#고철, #고의적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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