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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은 멋모르고 마시고, 둘째잔은 자세히 보니 기름이 둥둥 떠 있어 보기는 안좋았지만 추운날 마시기에는 딱 좋았다.
▲ 기름이 둥둥 뜬 해구신 담금주 한잔은 멋모르고 마시고, 둘째잔은 자세히 보니 기름이 둥둥 떠 있어 보기는 안좋았지만 추운날 마시기에는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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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저녁, 아내가 분주해졌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가니 저녁을 같이 먹자는 내 전화 한통이 아내를 그렇게 만들었다. 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맛을 보려고 고이 모셔뒀던(?) 해구신으로 담근 술을 꺼냈다. 결혼 9개월 차 초보 주부인 아내는 고추장 삼겹살을 한다고 부엌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이제부터 십족전갈주에 이어 해구신주 체험기를 시작한다.

일단 식탁을 정리하고 해구신 담근주가 들어있는 플라스틱통을 꺼냈다. 소주 유리잔에 조심스럽게 한 잔 따라 놓은 뒤 아내의 정성이 깃든 고추장 삼겹살을 한입 먹었다. 느끼함을 없애주는 것은 소주가 최고지만 오늘은 색다른 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구신 담근주.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담근술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돌배술을 능가할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따라놓은 입으로 가져간 뒤, 코로 냄새를 맡았다.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입에 닿자 뜨거운 기운이 전해지더니, 목을 넘어 위까지 뜨겁게 달궈줬다. 바로 이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필자를 위해 아내가 정성스럽게 고추장 삼결살을 만들어 줬다.
▲ 고추장 삼겹살 모처럼 일찍 퇴근한 필자를 위해 아내가 정성스럽게 고추장 삼결살을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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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개월 차 초보 주부지만 음식 정성 만큼은 최고다. 맛도 거의 최고(?)다.
▲ 먹음직스러운 고추장 삼겹살 결혼 9개월 차 초보 주부지만 음식 정성 만큼은 최고다. 맛도 거의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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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맛이 그렇게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에는 최고의 술이었다.
▲ 해구신 담근주를 마시고 비운 잔 뒷맛이 그렇게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에는 최고의 술이었다.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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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털어 넣은 지 1~2초가 지나자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음산한 기운이 코끝으로 다시 몰려 나왔다. 몇 년 묵은 목재 가구의 향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깔끔한 맛은 아니었다. 또 다시 소주잔에 술을 채운 뒤 자세히 보니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해구신으로부터 나오는 기름일 것이다. 보기에 그리 좋지 않았다.

도수는 알 수 없었지만 달콤하면서도 화끈하게 다가오는 맛이 꽤 독하게 느껴졌다. 인상은 저절로 꾸겨졌으며 코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기운은 온 몸을 떨게 만들었다. 결국 두 잔 이상은 마시질 못했다. 사실 좀 아껴먹고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전갈주를 너무 아쉽게 나눠 마셨기 때문인 듯 싶다.

조금 징그러워서 꺼림칙했지만 만저보니 말린 것이 느껴질 뿐 별 다른 느낌은 안 들었다.
▲ 해구신의 모습 조금 징그러워서 꺼림칙했지만 만저보니 말린 것이 느껴질 뿐 별 다른 느낌은 안 들었다.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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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구신은 물개의 음경 또는 음낭과 함께 건조한 한방약재다. 다른 이름으로는 올눌제라고도 한다. 본초학에서 해구신의 기원동물로 거론되는 것은 이중 북방물개속의 유일종인 북방물개(Callorhinus ursinus)인데, 하루에 10~20회씩 치르게 되는 교미가 2~3개월의 발정기간 내내 지속된다고 하니 번식기간 내내 1000~2000번의 교미횟수를 가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물개의 정력은 인간들의 경외의 대상이 됐다. 물개를 닮고 싶어서인지 해구신으로 담근 술도 인기를 얻었고, 우리집에도 저렇게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딱 두 잔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는데도 해구신의 질감이 궁금했다. 집개로 해구신을 꺼내들고 만져봤다. 말린 것은 오징어와 비슷한데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사실 많이 징그러웠다.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과감히 도전했다.

술이 전혀 몸에 도움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한 것 같다.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거라면 그냥 그것으로 족한 것. 2회에 걸쳐 쓴 이색(二色)주 체험기를 통해 과욕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 몸에 가장 좋은 것은 적당한 음식, 그리고 운동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태그:#해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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