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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오랜만에 만났다. 길가에서였다. 그는 얼큰하게 한 잔 한 상태였다. 제수씨도 함께 있었다.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어~! 그래. 제수씨도 안녕하셨어요."

"임마, 연락 좀 함 하지 그랬냐. 처남이랑 한 잔 했다."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더니 이사했다고 한다.

 

"나, 가게 옮겼다. 흑석골로."

"왜 옮겨. 거기 괜찮았잖여."

"그러긴 헌디 세가 좀 쌔서."

"옮긴데는 괜찮냐."

"그냥 그런다. 요즘 다 먹고 살기 힘들잖냐."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엔 왠지 모를 어둔 그림자가 담겨있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잔 더 하자며 실내 포장마차로 끌고 갔다.

 

여기서 그는 내 친구이다. 절친은 아니지만 뜸하면 한두 번 정도 통화나 하는 중학교 동창이다. 그런데 그 친구와 근 3년 만에 길가에서 얼굴을 마주쳤다. 연락만 했지 만나지는 않았었다. 이번에 만나기 전까진 1년에 두세 번 모임에서 보았었다.

 

1년에 두세 번 만나던 친구를 3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된 것은 그놈의 주사 때문이다. 그는 괜찮은 대학도 나왔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강했다. 대학을 나오고 어엿한 직장 생활도 했다. 그러나 그놈의 기질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자꾸 엇나갔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그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내려와 여러 장사를 했다. 문구점도 하고, 서점도 하고, 포장마차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엇나간 생활은 자꾸 엇나갔다. 그렇지만 그의 표현대로 마누라는 잘 얻어서 장사 밑천을 마련하여 바지락 칼국수집을 냈다. 제수씨는 직장에 다니고 그는 바지락 칼국수집을 열어 장사를 했다. 그러던 그가 친구들 모임에서 강퇴를 당한 건 4년 전 송년회 모임 이후다.

 

2005년 쯤의 12월 29일.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그날 우리는 한 횟집에서 송년 모임을 가졌다. 술잔이 오고가고 이야기가 오고갔다. 당시 모임 회장을 맡고 있었던 그는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말이 많아졌다. 그의 말 속엔 그때부터 임마, 점마부터 자식, 새끼까지 튀어나왔다. 말의 효과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금세 퍼졌다.

 

"야, 너 말이 너무 세다. 좀 쥑이라 임마."

"자식, 머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냅둬라, 저 자식은 욕이 양념이다 양념."

"야, 그래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디 욕은 좀 그런게 하지 마라."

"그래 그건 니 말이 맞다. 회장 니가 쪼매 조심혀라."

 

그런 와중에 사건은 엉뚱하게 터졌다. 좋은 안주에다 모처럼의 만남에 세상사는 이야기, 잘난 이야기, 못난 이야기 등등 말이 오가는 중에 그날 첫모임에 참석했던 연식(가명)이에게 불똥이 튀었다.

 

모임에 처음 나온 연식이 또한 말이 많았다. 대부분 자기 자랑이었다. 뭐해서 돈을 벌었다느니, 아파트는 어디에 얼마를 주고 샀다느니 하면서 그 못지않게 입담을 자랑했다. 그러는 중에 둘 사이에 욕설이 섞인 고성이 올라갔다.

 

"얌마, 니가 잘 났으면 얼매나 잘났다고 처음 와서 지껄이는겨?"

"머임마. 내가 멀 지껄여? 미친놈 괜히 시비야."

"머, 미친놈? 이 XX가 뒤질려고 환장 했나."

"머? 먼 XX. 야, 저 자식 술만 먹으면 아직도 개냐?

"야! 니네 그만들 좀 해라. 그러다 쌈 나겠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그는 점차 술이 취해가고 있었다. 친구들도 취해갔다. 그렇게 술잔이 오고가고 말이 오고가는데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소주병 모가지를 꼬나 쥐더니 연식이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다행이 연식이 머리를 정통으로 맞지 않고 위를 살짝 스쳐가 큰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야!, 너 뭐하는 짓이야. 친구끼리."

"이럴꺼면 이거 없애버리자. 모처럼 만나서 즐거운 시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싸움질이 뭐냐."

"저 자식, 술만 쳐 먹으면 저지랄이야."

 

그 뒤로 몇 번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는 지 술버릇 개 못준다고 술만 들어갔다 하면 싸움을 걸었고 욕설을 양념 삼아 말을 이어갔다. 이에 친구들은 의견을 모아 그를 강퇴라는 철퇴를 내려버렸다. 철퇴를 맞은 뒤로 그는 친구들의 머릿속에서 멀어져갔다. 그런데 들리는 말은 그가 다시 모임에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몇 몇 친구도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술 마시면 똑같은 행동이 반복될게 뻔한데 함께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술 때문에 친구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그와 친한 친구들도 그를 외면하곤 했다. 언젠가 그 친구의 부인은 날 만나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술만 마시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술이란 게 잘만 마시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는 게 술이다. 그 친구는 여전히 술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나오는 거친 입담도 여전했다. 그러면 답답함도 드러냈다.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그만은 모난 돌멩이마냥 덩그러이 한 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놈의 술이 성격 좋은 그를 외톨이로 만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의 특별한 술버릇을 공개합니다> 응모글


태그:#술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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