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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차 한 대로 아웃백에 들어간다고요?"

식사 중에 일행이 달랑 넷이며 차가 한 대라는 말을 듣고 네발로의 쨈비님이 깜짝 놀랐다.

"심슨과 그레이트 빅토리아를 차 한 대로 넘겠다니? 말릴 수 있다면 말리고 싶네요."

단독으로 나섰다가 심슨 사막 초입에서 차를 돌린 기억이 있는 쨈비님은 염려가 컸다.

"한 3개월 전에 아웃백에서 강도가 자동차 여행 중인 커플을 납치하여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일주일간 데리고 다니며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어요. 다행히 여자가 탈출하여 신고함으로써 사건이 알려졌으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웃백엔 총을 소지한 이들이 있어서 매우 위험합니다."

"아웃백에서 마주치게 되는 애보리진(Aborigine; 호주 원주민)들을 조심하세요."

"사고가 나도 치료할 의사가 없어요. 위성전화로 연락해도 비행기가 날아오는데 몇 시간이 걸립니다."

여기저기서 회원님들이 호주 아웃백 여행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웃백 단독 여행의 위험함을 경고해 주시는 네발로 클럽 회원님
▲ 아웃백이란? 아웃백 단독 여행의 위험함을 경고해 주시는 네발로 클럽 회원님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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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로 클럽의 산적님도 클럽에 가입하기 전에 가족과 아웃백 여행을 떠났다가 차량이 전복된 적이 있다 했다. 한 살 된 딸의 부상으로 이성을 잃은 채 피에 젖은 맨발로 정신없이 뛰었다 했다. 천만다행으로 지나가던 차가 있었기에 타운까지 후송하여 로열 플라잉 닥터 서비스(Roal Flying Doctor Service)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말 그대로 천운이라 했다.

작년에 있었던 네발로의 아웃백 여행 중에도 대열 맨 후미의 골프님이 전복된 줄을 모르고 한참을 진행했단다(먼지가 많이 날려 앞 차와의 거리를 1Km 가량 띄우니 후미 차량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오지 않고 무전도 되지 않아, 팀을 둘로 나누어 왔던 길을 되짚어 가다가 전복된 차량(왜 그리 차량 전복이 흔하냐고? 모래와 자글자글한 돌로 이루어진 아웃백의 비포장길을 접해본 사람은 안다. 속도를 낼 수는 있지만 타이어의 접지력이 약해져 흡사 얼음 없는 빙판을 방불케 한다)에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내외분을 구출해 다시 로열 플라잉 닥터의 도움을 받았다 했다.

아웃백은 수십,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 마을이 없는 곳을 지날 수도 있다. 혼자 여행하다 조난을 당할 경우 극복할 방법과 도움을 청할 만만의 대책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 아웃백의 비포장길 아웃백은 수십,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 마을이 없는 곳을 지날 수도 있다. 혼자 여행하다 조난을 당할 경우 극복할 방법과 도움을 청할 만만의 대책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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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러 팀이 가도 위험한 길을 단 한 대의 사륜구동으로 들어가겠다는 데에는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래서 두렵다. 아웃백을 여행하던 삼촌과 조카가 조난되어 물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사망한 지 2주 만에 발견되었다는 둥, 아웃백에서 발생하는 실종 사고가 매년 수십 건에 이른다는 둥, 거친 환경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수 없이 접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삶이 그런 것처럼. 그러나 언제까지 두려워하고만 있을 것인가? 두 대 이상의 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셈인가? 오지 않은 삶이 두려우면 늘 현재에 머물 것인가? 그러진 않을 것이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현재가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뿐이니까. 오늘 가보지 않은 길이라 해도 내일이면 가 본 길이 되고 그러면 두려움은 없는 것이니까. 만약 떠나지 않는다면 내일도 두려운 길로 남을 테니까.

오직 지평선과 붉은 땅을 보며 달리게 되는 아웃백의 길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삶이 그런 것처럼.
▲ 아웃백 오직 지평선과 붉은 땅을 보며 달리게 되는 아웃백의 길들.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삶이 그런 것처럼.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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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러 여기에 온 것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막상 출발을 앞둔 지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으면 했던 처음의 바람이 욕심임을 알겠습니다. 그저 무사히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케이크까지 마련된 돌쇠의 환영식에서 이렇게 시시한 답사를 했다. 여행의 목적이 고작 '무사귀환'이라니. 실크로드 횡단 때도 그랬다. 횡단 중 빙링쓰(炳靈寺) 석굴에서 아내가 머리를 조아려 간절히 소망하였던 것은 무사히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리하여 집에서 다시 그 '지겨운'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결국 여행의 목적이 무사귀환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멀고 위험한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 답사하는 필자와 아내 결국 여행의 목적이 무사귀환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멀고 위험한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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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운전이란 게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무사(無事)'를 생각할 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난생 처음 겪는 오른쪽 운전석과 온전한 야생의 땅 아웃백은 위험의 부담을 더했다. 그러나 나는 루쉰(魯迅)의 말을 믿기로 했다.

"위험? 위험은 사람을 긴장시킨다. 긴장은 자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위험 속에서의 만유(漫遊)는 좋은 것이다."

호주 시드니 교민 오프로드 클럽 '네발로'회원들이 필자의 여정을 축복하고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 무사귀환 염원 호주 시드니 교민 오프로드 클럽 '네발로'회원들이 필자의 여정을 축복하고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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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와의 조우, 한밤의 질주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차를 인수하러 국내선 공항 근처로 떠났다. 네발로 클럽의 회원 몇 분이 동행했다. 렌트카 회사로부터의 차량인수를 돕고 그 차에 내게 빌려주기로 한 장비들을 실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시드니에 지사를 두지 않은 브리즈번 업체(www.australia4wdhire.com)와 계약한지라 약속 시간을 정해 브리즈번으로부터 배달된 차를 받아야 했다. 국내선 공항 옆 F1호텔에서 이뤄진 닛산 패트롤(Nissan Patrol)과 첫대면. 호주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신뢰받는 도요타 랜드크루저에 이어 두 번째 인기를 누리는 차다. 3000cc 디젤엔진에 솔리드 엑슬 방식이어서 사막 여행에 적합한 차로 여겨 선택했다(랜드크루저는 4000cc 가솔린 엔진이어서 사막 주행 시, 고알피엠을 유지해야 하므로 연료소모가 크다).

다만 수동기어(manual) 운전이 서툰 아내와 후배 경숙을 위해 자동기어(automatic) 모델을 요구했는데 수동기어가 대세인 호주에서는 자동기어가 드물어 애를 먹었다. 때문에 스노클(엔진이 물에 잠겨도 흡기구를 연장하여 연소가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 장착된 자동기어 모델이 없어 그것은 포기하였다. 단독차량으로 움직이니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추가금을 주고 윈치를 장착하도록 했고, 아무래도 짐을 실을 공간이 부족할 것이니 루프렉(지붕위에 설치해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한 선반)이 설치된 차량을 요구했었다.

닛산 패트롤을 인수하고 있는 장면. 계약 내용과 일부가 달랐다.
▲ 차량 인수 닛산 패트롤을 인수하고 있는 장면. 계약 내용과 일부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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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놓인 차량은 외형상 내 요구사항을 다 반영하긴 했다. 그러나 내심 장거리 아웃백 여행용라 여러 차례 밝혔으니 배려해 주리라 기대했던 사항은 전혀 없었다. 비포장길 위주의 주행을 고려한 하체 서스펜션 튜닝도 없고 두 개의 예비타이어 확보도 안 되어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타이어는 일반 SUV용 타이어다. 험하기로 이름난 아웃백의 비포장길들을 생각하면 험로 전용의 MT(Mud Terrain)는 아니더라도 비포장과 포장도로 겸용의 AT(All Terrain) 타이어는 끼워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차량의 상세사항을 문의할 때에도 직원은 분명 오프로드 타이어(Off-road tyre)라 밝혔었는데 서로 인식차이가 있었나 보다.

또 차량의 나이가 벌써 6살이고 10만5000Km나 주행한 녀석이다. 계약할 땐 분명 자기 회사의 차들은 다 3년 이내의 싱싱한 것들만 보유하고 있다며 호언장담을 했는데 차량 등록증엔 그 두 배의 세월이 적혀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회사와 거래하는 것이 아닌데 온라인상으로는 가장 듬직하게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었고, 내 차를 가져갈까 몇 달이나 고민하는 사이 계약할 시기를 놓쳐 메이저급 렌트카 회사에서는 차량을 구할 수도 없었다. 호주 아웃백 여행은 건기인 7, 8월이 최적기이므로 사륜구동과 캠핑카 임대도 이때가 최성수기이다. 그래서 적어도 3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한 달을 약간 더 남겨놓은 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후에 기술할 일이 있겠지만 신뢰 없는 이 회사와의 인연은 정말 악연이었다).

어차피 함께 움직일 후배 경숙과 그녀의 남편 철호씨가 브리즈번으로 날아와 합류하기로 했으니 자세한 문제는 그때 렌트카 사무실을 방문해 따지기로 하고 우선 차량을 인수했다. 그나마 엔진음이 듬직하고 차의 상태도 양호한 것 같아 다행이다. 집에 남겨 두고 온 백구(무쏘 스포츠)보다 실내 공간이 1.5배는 넓은 것도 맘에 든다. 네 사람이 바글바글하며 여행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넓은 공간의 아쉬움이라면 옆좌석의 아내가 멀게 느껴진다는 것 뿐. 

네발로 클럽에서 다량의 장비를 임대해 주었다. 필자가 오른손으로 짚고 있는 것은 차량용 냉장고. 장거리 아웃백 여행에서 필수품목이다.
▲ 차량에 적재할 장비들 네발로 클럽에서 다량의 장비를 임대해 주었다. 필자가 오른손으로 짚고 있는 것은 차량용 냉장고. 장거리 아웃백 여행에서 필수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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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절감을 위해서 그랬겠지만 전륜허브가 수동이라는 점에 마음이 놓인다. 공기압으로 조절되는 자동허브는 오작동되어 정작 필요할 때 결정적으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한국에서라면야 사륜이 안 되면 그냥 이륜으로 가면 되고, 그도 안 되면 보험회사 출동 서비스를 부르면 된다. 사막 한 가운데서 사륜이 안 먹힌다면? 그러면 사막을 빠져 나올 수 없게 되겠지. 사막을 빠져 나올 수 없다면?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차마 상상도 하기 싫은….

저녁 늦은 시간까지 캡틴님과 윌리엄님은 차량에 장비를 세팅해 주시면서 장비사용법을 일러 주셨다. 쨈비님은 에이전시로부터 차량을 받을 때 계약사항을 꼼꼼히 챙겨주셨고 자신의 차와 같은 종류여서 차량의 조작법까지 소상히 일러주셨다. 말로만 듣던 듀얼 탱크를 처음 접했다. 90L용량의 메인 연료탱크가 소진되면 버튼 하나로 35L용량의 보조 연료탱크에 있는 연료를 보내게 되는 체계다. 비로소 실감한다, 이곳은 이런 장비가 필요한 넓은 세상이라는 것을.

인수한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 차량 점검 인수한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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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차를 받아 혼스비(Hornsby)로 향했다. 시드니 있는 동안 신세질 친구 병희네가 있는 동네다. 오른쪽 운전석의 어색함은 차를 움직이자마자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방향지시등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키기 일쑤고 우회전할 때 중앙선 오른쪽으로 머리를 들이밀려는 충동에 휘말린다. 두어 번은 충동으로 끝나지 않아 마주오던 차가 경적을 울려대며 정지했다. 차체마저 넓어 차폭의 감이 오지 않으니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차가 자꾸 왼쪽 차선으로 붙는다며 아우성이다. 마차가 다니던 길을 그대로 자동차 도로화해 차선이 좁기로 유명한 시드니에서 한 밤의 활극이 시작되었다.

"어허, 이거 왜 이래. 중국 시안(西安)과 시닝(西寧)의 아수라 지옥에서도 운전을 했던 사람이. 돌쇠, 침착하자. 침착하자."

마음을 다잡지만 차는 자꾸 왼쪽으로 붙고, 아내는 비명을 지르고, 나란히 달리던 차는 놀라 경적을 울린다. 교차로 신호등은 계속 난해하고 좌측으로 달리는 이 길이 자꾸 역주행 같아 혼란스럽다.

아, 나는 한밤의 시드니를 살아서 지날 것인가.


태그:#호주, #대륙횡단, #아웃백, #자동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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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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