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인 내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립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본선에 7회 연속으로 진출했지만, 아직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월드컵 본선을 향한 뜨거운 경쟁이 한창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한국시간) 국제축구연맹(이하 FIFA)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치러지는 국제경기(A매치)를 제한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천명해서 남미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FIFA가 선수보호 차원에서 국제경기 개최지의 고도를 제한하려 했다가 남미국가들의 반대 때문에 없었던 일로 한 지 2년 만에 다시 개최지의 고도 제한을 재추진하려 하는 것입니다.

남미 국가들의 반발은 상당합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가 3600m,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가 2850m,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가 2650m 이상의 매우 높은 고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FIFA는 지난 5월 선수 보호를 위해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는 국제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한 전례로 비춰볼 때 이들 국가의 거센 반발이 예상됩니다.

콜롬비아의 2014년 월드컵 유치전 합류를 보도하는 영국 BBC 공식 웹사이트. 사진은 지금은 은퇴한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 카를로스 발데라마(44). 콜롬비아의 2014년 월드컵 유치전 합류를 보도하는 영국 BBC 공식 웹사이트. 사진은 지금은 은퇴한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 카를로스 발데라마(44).

2006년 당시 콜롬비아의 2014년 월드컵 유치전 합류를 보도하는 영국 BBC 공식 웹사이트. 고지대국가인 콜롬비아는 FIFA의 고도제한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 BBC


높은 고도에서 경기력이 얼마나 떨어지나?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나라인 브라질의 경우 지난 12일 해발 고도 3600m인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벌어진 2010년 남아공월드컵 남미예선 원정 경기에서 홈팀 볼리비아에 1대 2로 졌습니다.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리와 비겼던 볼리비아는 남미 예선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는 팀입니다.

하지만 최약체인 볼리비아는 이전에도 강호 아르헨티나에게 홈에서 1대 6의 끔찍한 대패를 선물했고, 브라질과 함께 월드컵 본선무대에 진출한 강호 파라과이도 볼리비아 원정에서 2대 4로 무너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도가 높은 국가에서 경기를 할 경우 홈팀의 승률이 무려 82.5%나 됩니다.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자웅을 겨뤄왔던 이란의 경우에도 수도 테헤란에서의 원정 국가의 성적이 처참합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1300m 정도이지만, 이란 대표팀은 2004년 10월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0-2로 패한 뒤로 이곳에서 31경기 무패 행진을 거듭하고 있을 정도로 원정 국가의 경기력 저하는 생각보다 큽니다. 지난 2월 이란의 수도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1-1 극적인 무승부를 거뒀던 허정무 감독은 "원정경기이고 고지대인 이란에서 싸우는 것은 힘들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지성이 17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네쿠남의 수비를 피해 볼을 다루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지성이 17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네쿠남의 수비를 피해 볼을 다루고 있다. ⓒ 유성호


고지대에서는 경기력 저하가 심하다?

FIFA에서 고지대 경기를 제한하려는 이유는 선수들의 건강상 문제. 현재 FIFA에서는 해발 3000m 이상의 지역에서 개최되는 A매치를 할 때에는 선수들이 최소 2주 전부터 희박한 산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2750~3000m 사이의 고도에서 열리는 A매치의 경우 1주의 적응기간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해발고도 2500~3000m, 그 이상의 산에 올랐을 때에는 고산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산에서는 기압이 내려가는 동시에 공기 속의 산소분압이 감소합니다.

즉, 높은 산에서는 같은 부피 속에 들어 있는 산소의 총량이 그만큼 감소하는데 그러므로 고지대에서는 똑같은 숨을 들이쉬게 되더라도 산소가 몸 속에 흡수되는 총량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고산병에 걸리게 되면 불쾌해지거나 피로해질 뿐 아니라 두통·청색증·식욕부진·구토 등이 일어나게 되고, 더 고도가 높아지면 졸음·현기증·정신혼미 또는 정신흥분이나 감각 이상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높은 지대에서 2~3주간 머무르며 적응하게 되면, 적혈구와 심박출량이 증가하여 일반적으로는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높은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는 '순화'된다고 하는데, 고지대에 적절히 '순화'된다면 경기력 저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지대에 사는 국가들은 고지대에서의 홈경기가 홈그라운드의 이점 중 하나라며, 선수들의 건강상 문제로 홈경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축구 강대국의 이기주의라고 일축합니다.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이승현 선수가 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이승현 선수가 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 권우성


남아공 월드컵은 고지대 월드컵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83년 고지대인 멕시코에서 청소년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룩한 바가 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불가리아를 상대로 1-1로 비기며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올렸고, 강호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점차 승부를 벌이는 등 고지대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둬왔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의 경우 요하네스버그(1700m), 블룸폰테인(1400m), 프리토리아(1370m), 폴로과네(1290m)가 테헤란의 고도보다 높고 루스턴버그(1170m)도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경기장이 있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최근 A매치에서 26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전력이 탄탄해졌고, 유럽이나 남미 등에서 월드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와 맞붙을 팀들의 응원단 규모가 예전보다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경기장 분위기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지대에서 90분 뛰는 것은 평지에서 130분 이상 뛰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듯이 사전 고지 훈련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 6월 열린 남아공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한 이탈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는 "한 번 뛰고 나면 회복에 12초가 걸렸는데, 여기서는 두 배가 걸린다"며 고지대 적응이 힘들다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잉글랜드 카펠로 감독은 최근 영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남아공 월드컵의 관건은 고지 적응"이라고 밝히며 "잉글랜드는 해발 1300m 고지에서 훈련을 하고 남아공 현지에서도 비슷한 고도인 루스텐버그에 캠프를 차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허정무 감독도 최근 사전 훈련캠프지로 유럽의 고지대 알프스를 선택했습니다. 여러 월드컵 출전국 감독들이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고지대 적응을 가장 신경 쓰는 것입니다.

FIFA의 고지 제한 결론은 어떻게 날지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남아공 월드컵이 고지대에서 열리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지대에서의 경기도 축구 경기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우리 대표팀도 마지막까지 잘 준비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기쁜 선물을 안겨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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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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