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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강부자 정권'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 정권은 감세나 반값 아파트, 친서민 등 실제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들을 친근감 있는 언어로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친서민' 프레임이다.

'대안없는 진보'. 이것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보수진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에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몇 회에 걸쳐 우리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좋은정책포럼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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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책포럼은 참여정부 후반기인 2006년 1월, 진보개혁성향 100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 '지속가능한 진보'를 내세우며 설립한 민간연구단체다. '지속가능한 진보'란 국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넘어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면서도 독점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다시 말해 공정한 경쟁 속에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실현하는 발전모델이다.

이른바 '한국형 제3의 길'이라 명명된 이 발전전략은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고, 국내적으로는 개발독재모델까지 극복하는 대안적 모델로 여겨졌다. 특히 설립 당시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의 논리에 맞서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했던 민주개혁세력으로부터 많은 주목 받았다. 또 진보진영의 취약점으로 인식되던 '성장'을 한 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설립과 동시에 주목받았던 학자 중심 연구단체

좋은정책포럼의 구성원은 대부분 학자들이다. 대표직을 맡고 있는 경북대학교 김형기 교수(경제)를 필두로 임혁백(고려대·정치외교), 김호기(연세대·사회), 김윤태(고려대·사회), 유종일(KDI),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사회복지), 양재진(연세대·행정), 박태주(한국노동연구원), 김규원(경북대·사회), 임경순(포항공대·인문사회), 정해구(성공회대·정치), 김근식(경남대·정치외교), 조명래(단국대·환경), 홍덕률(대구대·교육), 고유환(동국대·통일), 김균(고려대·경제), 류동민(충남대·경제), 박진도(충남대·농업) 등 분야는 물론 지역적으로도 다양한 인적구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적구성이 발휘하는 힘은 강력하다. 어떤 의제도 다룰 수 있는 포용성과 그 모든 의제에 관한 전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정책포럼은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각종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신속하고 날카로운 진단을 내놓았다. 또 공동 의제로 진행된 세미나와 토론회를 통해 진보진영의 담론을 형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와 연구의 산물로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기업> <새로운 진보의 길> 등 두 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반면 이런 인적구성이 갖는 단점도 있다. 정권교체 이후 급변하는 정세에 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잃어갔고 이런 상황에선 '진보적이라고 해도 정세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교수집단도 예외일 수 없었다. 특히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원심력을 지속시킬 어떤 새로운 활동영역이 존재하는 않는 상황이 지속되자 내부적 동력도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정책수요자와의 연결기반에서도 취약점을 드러냈다. 소속 교수들은 좋은정책포럼 설립 이전부터 민주정권 10년 동안 직간접적인 정책자문의 역할을 수행하며 연구결과를 정책에 반영시켜왔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그러한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고, 그렇다고 정책의 실질적 수요자인 일반 국민들에게 다가가 소통하는 구조도 만들지 못했다.

이는 정책 수요자를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국한시키는 대부분의 민간 싱크탱크들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김형기 대표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실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생활밀착형 정책을 내놓는 일'을 앞으로 좋은정책포럼이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권교체 후 한계... 국민들에게 다가갈 소통구조 막막

좋은정책포럼의 창립2주년 토론회 장면
 좋은정책포럼의 창립2주년 토론회 장면
ⓒ 좋은정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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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정책포럼의 재정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 운영을 책임질 인력이 없다는 것. 그렇다고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진 않다. 이는 단체 재정운영이 기본적으로 '최소비용 원칙'으로 일관되어 왔기 때문이다. 상근인력 없이 경상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연구자인 구성원들도 모두 자원봉사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초창기 몇몇 프로젝트 연구로 확보된 재정은 이마 바닥난 상태고, 뜻을 함께하는 개인, 기업회원들의 정기후원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또 이러한 재정적 취약과 인력구성의 편중은 정책유통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생산된 연구과제가 정책결정자로부터 수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고립되고 소멸되지 않으려면,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내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담당할 최소한의 인력이 확보되지 못하는 건 싱크탱크로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연구결과를 모아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고, 출판, 토론회, 언론보도 등을 이용한 소통도 유효한 방법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위와 아래로부터 힘을 얻지 못하면 결국 고립, 소멸된다.

'지속가능한 진보' 지향하는 '좋은정책포럼'의 지속가능성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조금씩 고개를 들이미는 상황이라, 좋은정책포럼도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여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비즈니스 개념을 전면적으로 들여오는 것은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최소한의 재정확보와 순환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한다.

먼저, 미뤄두었던 회원정비 작업을 통해 기본적 재정을 채우는 안정을 취할 예정이고, 동시에 진보단체간의 연대를 통한 방법모색도 꾀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사회민주주의연대, 신진보연대와 함께 공동으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어려운 상황 속에 경상비를 최소화하려는 작은 뜻인 동시에 세 단체 간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보자는 큰 뜻이기도 하다.

그 큰 뜻의 첫 번째 작업으로 기존의 신진보연대가 발행하는 리포트를 확대해서 세 단체가 함께 만드는 계간지를 발행할 계획이다. 계간지 발행은 시장 확산을 위해 공동 노력을 하자는 합의 아래 나온 결과물인데, 이들은 이것을 새로운 진보이념의 확산 기회로 삼을 예정이다. 더불어 더 큰 시너지를 얻기 위해 다른 단체들에게도 공동발행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사실 좋은정책포럼은 학술과 정책의 경계에 있는 약간 특수한 형태의 싱크탱크다. 대부분의 연구인력이 소속대학이 있는 교수인, 말하자면 온전한 소속감을 발휘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따라서 일반 싱크탱크 구조로의 대대적 전환도 옳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좋은정책포럼은 이대로 위축되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한민국의 의제를 담아낼 그릇은 어느 싱크탱크보다 크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인적자원의 활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그 그릇에 잃어버린 희망을 가득 채워 진보개혁진영의 '좋은정책'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고, '좋은정책포럼'의 지속성도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정책포럼이 발간한 도서.
 좋은정책포럼이 발간한 도서.
ⓒ 송정문화사·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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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에 나라 맡길 수 있나? 이 물음에 답이 필요하다"
[인터뷰] 좋은정책포럼 대표 김형기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

- 출범 이후 4년여 간의 활동을 자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지속가능한 진보', '한국형 제3의 길' 등 진보개혁진영의 커다란 담론을 형성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를 한 것으로 본다. 또 얼마 전 그간의 논의와 연구과정을 <새로운 진보의 길>이란 책으로 정리해 내놓은 것도 가시적 성과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제안의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이념적인 방향에 국한돼 있던 한계도 있었다. 앞으로는 실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제안의 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본다."

- 출범 당시 지방분권시대, 지식기반경제시대, 탈냉전민주주의시대로의 3중의 이행이 이루어지는 대전환기라는 상황인식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모든 전환에 있어 3중의 퇴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지금도 이러한 상황인식에는 변함이 없나.
"큰 틀은 맞다고 본다. 비록 주도적 역할을 하던 민주정부가 그 이행을 미처 다 수행하지 못하고 정권이 넘어간 상황이라 한국사회의 퇴화현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신자유주의와 개발독재국가 모델을 동시에 넘어서는 모델을 지향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대안이라고 보고, 그러한 문제의식은 더욱 더 필요하다."



- 이명박 정부 들어 진보적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탄압은 그 도를 넘어선 지 오래고, 급기야 희망제작소와 같은 민간연구소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오늘날 진보 싱크탱크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전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과거에는 이런 싱크탱크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 지원한 것이 없었음에도, 정책 분위기상 환경 자체가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도실용을 주창하는 현 정부가 개혁적 보수나 합리적 진보를 포괄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런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조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이게 과연 이 정부가 중도를 지향하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점에서 어렵고 동시에 진보 싱크탱크 내부에도 '새로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 상황이다."

- 혹시 좋은정책포럼에도 이와 같은 유무형의 압력이 있었는지.
"그런 건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진 건 사실이다. 예컨대 과거 민주정부 하에선 보수적 단체라 하더라도, 또 기업이 보수단체를 지원한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행여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걸 그렇게 문제 삼거나 하지 않고 자유로웠는데, 이 정부는 배제해나가는, 그런 것을 은밀히 추진해나가는 감이 있으니까. 그렇게 주창하는 중도실용과는 달리 굉장히 이념편향적인 방식, 배제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으니까,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보고 있다."

- 어찌 보면 진보진영전체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진보진영의 상황과 문제점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전히 위기이고 대안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방법적으로 지역과 생활에 밀착하는 부분. 예컨대 일본민주당 성공요인을 보면 지역생활밀착형 정책이라 볼 수 있는데 한국의 진보가 아직 그런 쪽으로 가지 못한 채 허공에 떠있다. 물론 나조차도 그랬고. 그런 면에서 있어서 좋은정책포럼에서도 지방에 있는 교수님들과 함께 방향을 모색 중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진보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기도 하다. (진보진영은) 정책이 없어서 고립된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이 그룹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나? 국정수행능력이 있는 집단인가? 그러한 국민의 불신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다. 진보진영이 하나의 비판세력으로 남는 게 아닌 집권을 생각한다면 신뢰성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함께 행동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불신의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진행하고 또 진보진영의 여러 자원들 진보정당, 민주노총, 전교조 등 진보그룹들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느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기존의 의구심을 해소하고 국정운영집단으로서 신뢰를 얻는 작업이 시급하다."


태그:#진보싱크탱크, #좋은정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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