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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강부자 정권'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 정권은 감세나 반값 아파트, 친서민 등 실제 서민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주지 않는 보수적인 정책들을 친근감 있는 언어로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른바 '무늬만 친서민' 프레임이다.

'대안없는 진보'. 이것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던 보수진영이 정해놓은 프레임이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이에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몇 회에 걸쳐 우리시대 진보의 대안을 만들고 있는 싱크탱크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새사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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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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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들어서 CD금리가 수직상승 했어요. 그거랑 연관된 금융상품들도 많이 올랐고. 기준금리가 서 있는 거랑 상관없이 말이죠. 이게 가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체크해 주시고요. 저기, 신종플루는 언제 마무리 할 거예요?"

지난 4일 홍대 인근에 위치한 어느 건물의 회의실. 40대 언저리로 보이는 남자 네 명이 화제를 바꿔가며 회의를 하고 있다. 저마다 수첩에 뭔가를 바쁘게 적는 남자들. '신종플루', '가계경제', '고용보험', '국정감사'…대화 속에 교차되는 얘깃거리들이 점점 범상치 않다.

어느새 오전 10시 40분. 오전 10시 부터 쉼 없이 이어진 회의는 "이번 주부터는 다들 매주 글 하나씩은 꼭 내도록 하자"는 말과 함께 마무리됐다. 회의를 마친 사람들이 떠난 탁자 위 재떨이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담배꽁초들이 촘촘하게 꽂혀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4년 전이었다면 아마 아무도 맞출 수 없었을 질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이들과 같은 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현상들과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연구하는 공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아래 새사연)' 얘기다.

새사연? 그게 뭐하는 곳인데?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가게 이름을 검색하면 자주 등장하는 핸드폰 대리점 이름이 있다. 바로 '싼 곳 찾다가 열 받아서 내가 차린 집'이다. 재치 있는 과장 속에 현실적인 필요와 절박함이 묻어난다. 지난 2006년 2월, '대안적인 진보정책 싱크탱크'를 표방하며 새사연이 만들어지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사실 이 핸드폰 가게가 만들어진 이유와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 중반 넘어서면서 진보 진영의 대안 부재, 콘텐츠 부재의 해결이 시급했어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이 필요한데 당시 학자들은 그걸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거나 대변해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웃으며 새사연의 설립 유래를 설명하는 윤찬영 미디어센터장. 지금이야 웃을지 모르지만 처음 연구소가 기획 될 때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저게 과연 될까"하고 반신반의할 정도로 재정과 인력 수급 등 모든 것이 실험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구조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여느 연구소처럼 학교에 소속되거나 특정 대기업, 정당의 후원을 받지 않으려다 보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나온 방안이 소득의 10분의 1을 연구소 운영비로 내는 '운영위원'을 100명 모으자는 것.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방법이 성공하면서 새사연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족한 연구 인원은 팀워크로 보완했다. 해당 현장에 있는 회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분과 제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새사연은 크게 경제연구센터와 정치사회연구센터, 두 곳으로 연구 분야가 나뉘어있고 각각의 연구센터 안에는 세부적인 연구 분과가 정해져 있다.

연구는 대개 분과 단위로 이뤄지는데, 분과 마다 상근 연구원과 외부 회원들로 구성된 '분과 위원'들이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함께 연구를 진행되게 된다. 가령 교육 분과의 회의에는 현직 교사인 회원 혹은 학부모인 회원들이 위원으로 참석해서 진행된 연구에 대해 함께 토론을 하는 식이다. 이 제도는 새사연의 보고서가 실제 현실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비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4년간 풀어낸 한국사회 '생얼' 700여 편

새사연 미디어센터 회의
 새사연 미디어센터 회의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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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조적인 기반위에 지금까지 쌓인 새사연의 생산물은 경제, 정치, 사회 분야의 보고서 700여 편과 단행본 8권. 언론에서 연구결과를 직접적으로 인용한 횟수는 약 380회다. 지난 2008년부터는 분야별로 한 해 전망도 내놓기 시작했다. 상근 연구원 12명이 만들어낸 결과물치고는 결코 가볍지 않은 양이다.

새사연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 분야에 강하다는 것. 실제로 연구소 개설 때부터 신자유주의 경제를 정조준 해왔던 만큼 700여 편의 보고서 중 상당 부분이 경제 이슈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7월부터 홈페이지에 정리되고 있는 '테마북'은 경제 분야에서 새사연이 가지고 있는 저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지난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진단한 테마북 4권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한국 경제의 진로'와 최근 한국 경제의 회복을 분석한 '한국경제의 고속회복,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일반 대중들에게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회원들의 호응이 좋은 편이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헌법 개정 문제나 의료민영화 문제도 정치사회연구센터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주제들이다. 요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는 분야는 보건복지 분과와 교육 분과. 이들 분과에서 만들어 낸 글 중에는 보건복지 분과 위원들이 참여한 대담을 엮은  '신종플루, 제대로 알고 대처하자'와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맞춤형 사교육을 넘어서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이 최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통을 향한 새사연의 실험, 성공할까?

보수 성향이 짙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수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받아왔던 지원금이 끊겨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원래 정부 지원금이 없었던 새사연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재정적으로는 여유로운 편이다. 독립적인 재정 구조 덕에 연구 규모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문제는 할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보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연구해야 할 분야, 다뤄야 할 이슈가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분야를 정교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재정과 연구할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100명의 운영위원이 전체 예산의 50%를 마련하고 거기에 유료회원 700여명이 다달이 내는 1, 2만원의 회비, 연구용역비와 인세 수입이 재정의 전부인 새사연의 입장에서는 연구 규모를 확장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사실 해결책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후원회비도 내고 분과 위원으로 연구에도 참여하는 '적극적인 회원'을 더 모으면 된다. 현재 운영위원 100명과 유료회원 700명 중 분과 위원으로 참여하는 회원 수는 약 20여 명. 기존의 회원 중 새로 분과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의 수만 늘려도 해당 분야의 연구 여력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새사연이 '대중과의 소통'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윤찬영 세사연 미디어센터장
 윤찬영 세사연 미디어센터장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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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생활인들을 기반으로 만든 연구소예요. 대중들과 함께 연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800여 명의 유료 회원과 4천여 명의 무료 회원들이 참여,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윤찬영 미디어센터장은 요즘 대중들이 쉽게 연구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게끔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 나온 보고서들 중 어려운 글들의 길이를 짧게 줄이고 이해하기 쉽게 고쳐 블로그에 올리는 일 역시 미디어센터의 몫이다.

대중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경제연구센터는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연구원을 아예 내부적으로 정해 놓았다. <오마이뉴스>에 경제 브리핑 '생얼 한국경제'를 연재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딱딱하다',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항상 더 쉽게 쓰는 것을 고민 한다"는 것이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새사연이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시도해왔던 기존의 방법들과 크게 차별되지 않는 것이라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재정 및 연구인원이 확충되어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는 선순환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계기가 필요해 보인다.

진보를 넘어 상식적인 싱크탱크로

"사회에 무심했던 공대생입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일러 난방일을 해오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경제 정의가 바로 세워져가는 사회를 희망하며, 새사연의 연구정신 지지합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입니다 세상 공부가 될까 해서 가입합니다."
"중3 아들,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두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동참합니다."
"법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융통성 없는 세상을 꿈꾸는 또는 그런 땅에 살고 싶은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
"대리운전일을 하고 있으며 40대 후반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데이터와 통계가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그 자료들이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서 좀 더 다수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보와 자료와 나아가 정책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됩니다."
"부산에서 화장품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10개월 된 애기가 있습니다. 저희 애기가 살아갈 세상은 좀 더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새사연을 찾았습니다."
"현재 상장업체의 해외법인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자유주의자에 가깝습니다만 새사연에서 발표한 자료를 읽어보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새사연 회원들의 가입인사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새사연이 분명 진보 싱크탱크지만 어떤 정치적 성향을 보고 이곳에 오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새사연의 작업물들이 단순히 진보적인 성향을 넘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상식의 범위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안이 되는 새로운 상식. 매일 나오는 새사연의 보고서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민 대다수 경제살리기 가능하다는 확신 나누고 싶다"
[인터뷰]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싱크탱크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인 진보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손석춘 새사연 원장에게 들어보았다.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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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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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탱크 운동을 하며 만족스러웠던 부분이나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있다면요.
"새사연이 준비위원회를 결성한 시점은 해방 60년, 분단 60년을 맞았던 2005년 9월입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위치에 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새사연이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대안의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여론화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창립 초기 때의 구상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창립 때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삼성경제연구소라고 공언했는데요. 4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평가하자면 삼성의 맞수로 절반쯤은 성공한 듯합니다. 12명의 상근자로 꾸려가는 새사연이 천문학적 재정과 인력의 뒷받침을 받는 골리앗 삼성경제연구소와 맞서 싸우기란 원천적 한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에겐 삼성연구소가 지니고 있지 못한 가장 중요한 자산, 곧 새사연을 믿어주고 월 회비를 내주시는 국민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간절한 정성, 간곡한 바람에 견주면 새사연 원장으로서 더 치열하게 저들과 싸우지 못해온 저 자신이 가장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 지금 우리사회의 진보싱크탱크의 수준과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떤 것인지, 가장 주력해야 할 부분을 중심으로 말해주세요.
"새사연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드는 곳입니다. 이미 노동중심의 민주경제와 통일민족경제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지요. 비전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프로그램으로 촛불정국 때 출간한 <주권혁명>에서 국민주권운동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주권혁명의 정책, 곧 민주경제와 통일경제의 비전을 당장 실행 가능한 정책 수준으로 구체화해나가는 게 새사연이 당면한 핵심과제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싱크탱크 운동을 해온 단체의 원장으로서 꿈꾸는 것들이 있다면요.
"갈수록 심화되는 비인간적 경쟁체제, 돈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장만능주의 체제에서 고통 받고 있는 국민 대다수에게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 부익부빈익빈의 이명박식 경제살리기와 다른 국민 대다수의 경제살리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희가 비전으로 내놓은 노동중심의 민주경제와 통일민족경제가 실현 가능한지 진지하게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분명히 답합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라고."


태그:#진보싱크탱크,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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