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A파이터로 유명한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35·크로아티아)은 익히 알려진데로 본래는 K-1에서 활동하던 정통 입식 타격가 출신이다.

 

현재 그의 위치는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한때 세계 MMA 헤비급에서 최강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활약상만큼은 종합격투기가 존재하는한 영원히 기억될 업적으로 꼽힌다.

 

크로캅은 K-1출신 파이터중 그나마 종합무대에서 제대로 성공한 유일한 파이터라고 볼 수 있다. 그보다 먼저 진출했던 '철권(鐵拳)' 브랑코 시가틱(54·크로아티아)을 비롯해 사다케 마사아키(44·일본) 등은 아예 제대로 적응조차 못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도전했던 스테판 '블리츠' 레코(35·독일)는 자존심만 잔뜩 구긴채 다시 입식무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모아괴인' 마크 헌트(35·뉴질랜드) 정도만이 어느 정도 흔적을 남겼지만 그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크로캅은 그랑프리 우승만 없었을뿐 K-1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보였던 파이터다. 천적과도 같은 어네스트 후스트(44·네덜란드)의 벽에 막혀 번번이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 외 파이터들과의 승부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 단판승부에 굉장히 강한 면모를 보여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37·프랑스)와 함께 '원매치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그는 K-1의 차세대 유망주나 변칙 파이터들을 잘 잡아냈다. 그중에는 이후 K-1의 레전드로 성장하게될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33·네덜란드)도 포함되어 있다. 때는 2002년 후쿠오카 대회였다.

 

 미르코 크로캅은 레미 본야스키에게 베테랑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미르코 크로캅은 레미 본야스키에게 베테랑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 격투용품 수집가 아이다호(박성수)

 

'불꽃 하이킥' 크로캅 VS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

 

크로캅과 본야스키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다. 일단 이들은 경쾌한 스탭을 바탕으로 난타전을 즐기지 않는 아웃파이터이면서도 강력한 화력을 갖추고 있어 기회가 오면 무섭게 몰아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나이퍼(sniper)' 스타일의 크로캅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해내다가 빈틈이 보이면 날카롭게 자신의 공격을 꽂아 넣는다. 반면 본야스키는 회피능력도 좋지만 웬만한 잔공격은 가드로 막아내면서 상대의 공세가 주춤할 때쯤 맹공을 퍼부어 버리는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다.

 

둘은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에서도 사뭇 다르다. 크로캅은 새하얀 피부에 굳게 다문 입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첫인상부터 무뚝뚝한 강인함을 풍기는데 비해 본야스키는 평소 안경에 정장 차림을 선호할 정도로 엘리트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자주 웃는 표정인지라 부드러운 느낌을 상대에게 전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경기에 들어서면 두 선수는 모두 흡사 한 마리 거친 '맹수'로 돌변하는데 특히 화려하고 다양한 발차기 기술들은 누가 위라고 평하기 힘들 정도로 동급 최고의 솜씨를 뽐냈다.

 

베테랑과 신예의 차이였을까? 당시 시합에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크로캅과 달리 본야스키는 왠지 다소 위축이 된 듯한 인상이었다. 매섭게 쏘아보며 눈싸움을 감행하는 크로캅에 비해 본야스키는 슬쩍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눈싸움의 여부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왠지 평소보다 기세가 떨어져 보이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한 기의 우열은 경기가 시작되자 바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아웃파이팅을 구사하는 선수답지 않게 크로캅은 공이 울리기 무섭게 성큼성큼 전진 스탭을 밟으며 본야스키를 압박해 나갔다.

 

선제공격은 가볍게 주변을 돌던 본야스키가 먼저 시도했다. 펀치와 로우킥으로 이어지는 선공으로 본야스키가 포문을 열어봤지만 크로캅은 별반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되려 더욱 강한 펀치와 킥의 컴비네이션으로 맞불을 놓아버렸다.

 

자신감이 팽배해있는 듯 겉으로 보여지는 위력에서도 힘이 넘쳐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본야스키의 공격은 다소 가벼운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양 선수는 번갈아 가며 펀치와 발차기를 뻗어냈고 대부분이 상대의 가드에 막혀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지만 힘이 실린 정도에서는 역시 크로캅 쪽이 우세했다. '안되겠다' 싶은 본야스키는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었고 1분여가 지날 무렵 조금씩 크로캅을 몰아가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몸이 풀리는 듯 특유의 탄력 넘치는 발차기도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 본야스키를 상대로 크로캅이 새로이 뽑아든 무기는 다름 아닌 접근전에서의 강력한 펀치연타였다. 발차기를 막아내며 거리를 좁힌 크로캅의 펀치가 송곳처럼 본야스키의 안면과 복부에 꽂혀 들어갔고, 펀치공방전이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차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짙어져 갔다.

 

복싱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한 크로캅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좀처럼 난타전을 즐기지 않는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본야스키의 가드 위를 두들겨댔는데 일부는 안쪽으로 들어가며 계속해서 충격을 전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펀치가 먹혀 들어가자 하이킥과 미들킥의 구사타이밍도 제대로 맞아떨어지며 비록 가드 위라고는 하나 본야스키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입혀나갔다.

 

기세싸움에서 밀려서는 안되겠다고 느낀 듯 본야스키는 2라운드가 시작하기 무섭게 니킥 공격을 감행하며 1라운드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공세를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크로캅의 자신감은 이미 하늘을 찌를 정도로 팽배해있었고 1라운드부터 이어진 펀치연타는 잔뜩 달궈져 있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장신인 본야스키의 접근을 앞차기로 밀어내며 거리싸움에서도 우세를 차지했고,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다양한 공격을 마치 폭격하듯 내뿜어댔다.

 

어쩌다 본야스키가 클린치라도 시도하면 크로캅은 거칠게 그를 바닥으로 내던져버리며 분위기가 반전될 일말의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았다.

 

결국 본야스키는 가드를 두텁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기회다 싶은 크로캅은 아예 대놓고 펀치연타를 쏟아냈다. 물론 본야스키도 일방적으로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간 중간 기습적으로 니킥 공격을 감행하며 방심한 크로캅의 허점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제대로 맞추지를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안면과 복부에 쏟아지는 공격량은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본야스키가 첫 번째 다운을 당했고 후다닥 일어나 봤지만 크로캅의 식을 줄 모르는 펀치세례는 이전보다 더욱 거칠게 난타를 거듭했다.

 

본야스키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코너로 밀려나갔고 이후부터는 양훅과 어퍼컷 등 크로캅의 일방적인 펀치만이 경기장을 달굴 뿐이었다. 결국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고, 크로캅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레이 세포(38·뉴질랜드) 등을 물리치며 겁없는 상승세를 타고있던 본야스키가 기존 베테랑의 무서움을 제대로 맛본 순간이었다.

2009.09.28 08:50 ⓒ 2009 OhmyNews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 레미 본야스키 플라잉잰틀맨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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