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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를 다닐 때, 그러니까 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의 등교길이, 난 두려웠다. 학교는 이른바 '서울대 많이 보내는' 명문고였는데, 강한 체벌과 함께 '고교 3년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고를 주입시키며 학생들을 휘어잡았다. 멀리 살면서도 일부러 그 학교를 선택한 많은 학생들을 위해 스쿨버스가 운행됐다. 그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으니 육체적으론 전혀 힘들지 않은 등교길. 그러나 버스 안에서 난 생각했다. 오늘은 또 몇 대나 맞을까. 꼭 밀린 학습지를 다 풀어야 할텐데. 종종 이를 악물기도 했다. 내 주변 친구들은 친구들이 아닐 수도 있어, 이겨야지. A고로 향하던 등교길의 풍경과 과정을,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B고를 다닐 때, 그러니까 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의 등교길이, 난 즐거웠다. 일터를 옮기신 아버지를 따라 전학한 학교는 소위 명문고가 아닌, 그저 축구로 유명한 시골 고등학교였다. 체벌이 있었으나 이전 학교에 비해선 애교 수준이었고, 선생님들은 가르침과 동시에 학생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멀리 살면서도 일부러 그 학교를 선택하는 이는 없었으니 스쿨버스는 당연히 운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등교시간에는 학교로 향하는 차도가 통제됐는데, 학생들의 자전거 통학을 위해서였다. 학교 바로 앞에는 섬진강 하구를 따라 남해로 흐르는 바다가 있었고, 거의 전교생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의 해안도로를 달렸다. 그때, 자전거를 탄 나는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바다를 보았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맞았다. B고로 향하던 등교길의 풍경과 과정을, 나는 아직도 또렷히 기억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자전거 타기 열풍에 나라 곳곳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소리가 요란한 지금, 나는 가만히 내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했다. 버스를 타고 A고를 갔고 자전거를 타고 B고를 갔으나 그 차이가 '두려움'과 '즐거움'이라는 내 감정의 차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분위기의 차이, '이겨야지'라고 이를 악물며 A고를 가던 나와 친구들과 재밌게 놀려고 B고를 가던 나의 차이에서 나온다.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하루종일 압박하며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킨 A고는 감옥 같았고, 복도에서 커플들이 재잘거리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큰 압박을 가하지 않고 학생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려 한 B고는 놀이터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A고에 갔더라도 나는 두려워하며 페달을 밟았을 것이고, 버스를 타고 B고에 갔더라도 나는 급우들과 장난을 치고 깔깔거리며 갔을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전국을 연결하는 '자전거 길'을 만든다 하고, 국토해양부는 '4대강 자전거 도로' 계획을 추진중이라 한다. 이 땅을 자전거 나라로 만들고 싶은가 본데, 그 원대한 구상에 조목조목 토를 달 순 없다. 그러나 만약 자전거 나라를 만드는 목적이 성인병 예방, 유류 절약, 운송과 레저 같은 전후방 연관산업의 동반성장 등에 머무른다면, 그래서 결국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성적(경쟁력)이 좋았던 A고로 향하던 길은 불행한 길이었고, 성적(다시, 경쟁력)이 나빴던 B고로 향하던 길은 행복한 길이었으므로. B고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난 비로소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게 됐고, '좋은 선생님도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으므로.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단지 '자전거 도로' 하나만 달랑 갖다 놓는다고 얻어진 게 아니었으므로. 요컨대,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과 분위기다. 이걸 좀 어려운 말로 '철학'이라고 하더라.

덧붙이는 글 | 다음 뷰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자전거, #자전거 도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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