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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가 현재까지 보관중인 최소 4조원대로 추정되는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미지급임금(미불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부가 최근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미지급임금(미불금)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불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혀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공식 문서가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그것도 일본 총리의 국회 답변을 통해서다.

정부가 최근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상의 '무상 3억'을 근거로 일제 징용 노무자들의 공탁 미불금에 대해 '청구권 행사 불가' 입장을 표명한 가운데, '무상자금'과 '미불금'은 전혀 별개라는 2006년 아베 총리의 국회 답변 기록이 확인됐다.

아베총리 "경제협력이란, ...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 선 그어

최봉태 변호사가 일본으로부터 입수해 최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후쿠시마 미즈호 참의원(현 사민당 당수)은 2006년 12월 14일 ▲ 한일청구권 협정상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 ▲ 일본은행에 보관된 미불금 문제 ▲ 무사 생환자(生還者)에 대한 보상 문제 등 3가지 주제, 총 10개 항에 걸친 대정부 질의를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조선인 노무자 등에 대한 미불금 처리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특히 이 질문 내용들은 현재 한국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피해자지원법의 근간에 관한 핵심 내용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그 중 주목되는 질문은 구체적으로 ▲ 일본정부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상 무상자금에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이 포함되었는지? ▲ 포함돼 있다면 무상자금 3억 달러 중 어느 정도를 강제 징용자에 대한 몫으로 상정했는지? ▲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협의 중에, 한국 측에 제공한 무상자금(3억불) 안에 미불금을 포함한다는 논의가 있었는지? ▲ 일본정부가 전후,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자, 부상한 자 및 유족에 대해 지불한 보상액 및 연금 총액에 대한 여부.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일본에 방치되고 있는 조선인들의 유골.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일본에 방치되고 있는 조선인들의 유골.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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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의하면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는 그해 12월 20일, 총 5페이지 분량의 별지 답변서를 통해 '무상자금'에 대한 성격 규정을 명확히 했다. 아베 총리는 답변서에서 "'무상자금'을 포함한 한일청구권, 경제협력협정을 기초로 한 경제협력이란, ... 한일간 역사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고 이후 양국 간의 우호관계를 확립한다는 대국적 견지에 입각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흔히 청구권자금으로 알려진 무상 3억불은 청구권과는 전혀 별개이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명목으로 제공한 '경제협력자금'이라고 확실하게 선은 그은 것. '무상자금'의 성격에 대해 일본정부가 '경제협력'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3억불 안에 조선인 노무자들의 '미불금'이 포함돼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오히려 멋쩍어 보이는 대목이다.

"무상자금에 '미불금' 포함됐느냐?" vs "답변 못해"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던진 질문에 의해서도 미불금에 대한 처리문제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협상 당시 한국에 제공한 '무상자금'에 '미불금'을 포함한다는 논의가 있었느냐'는 구체적 질문에 대해, 아베 총리는 "조일(북일)간 협의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답변을 삼가겠다"며 답을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자, 부상한 자 및 유족에 대해 지불한 보상액과 연금 총액을 제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전후 지급 총액에 대해 파악되지 않아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역시 입을 닫았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가 즉답을 피한 것은 무상자금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다른 열쇠여서 주목된다. 즉,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일본이 과연 어느 한쪽만을 대상으로 청구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무상자금은 말 그대로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목의 '경제협력자금'일 수밖에 없다는 것.

국가 간의 협약에 의해 개인청구권인 미불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원초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정부 주장대로 '무상 3억'에 '미불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한국정부만을 대상으로 한 협정을 통해 북한 국적의 미불금 문제까지 처리했다는 결과나 마찬가지여서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액면가만 ▲ 노무피해자 2억 1514만 7000엔 ▲ 군인·군속 9131만 6115엔 등으로 최소 4조원대로 추정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미불 공탁금을 일본은행이 현재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 자체도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정부의 입장처럼 미불금이 해결됐다면 아직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

지난 3월 일제 징용 피해자의 한 유족이 서울 미쓰비시중공업 사무소 앞에서 매주 열리는 금요시위에서 설움에 북받친 듯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지난 3월 일제 징용 피해자의 한 유족이 서울 미쓰비시중공업 사무소 앞에서 매주 열리는 금요시위에서 설움에 북받친 듯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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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대일 과거사 소송을 주로 맡아 온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한 나머지 정부 스스로 자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며 "2005년 우리정부가 공개한 한일협정 문서를 보더라도 무상 3억불 속에 공탁금이 포함돼 있다는 대목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일본 총리마저 줬다는 말이 없는 공탁금을 왜 우리정부만 스스로 받았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무상자금에 미불 공탁금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정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한국정부. 한일회담 문서를 통해서도, 일본 총리의 입을 통해서도 '무상자금에 공탁금이 포함됐다'는 실체를 확인하기 힘든 지금, 만약 그 근거가 있다면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태그:#공탁금, #한일협정, #한일청구권자금, #징용, #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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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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