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광열 광운대 교수
 김광열 광운대 교수
ⓒ 이국언

관련사진보기


한일관계사 전문가인 김광열 광운대 교수는 미불 임금 공탁 자료에 대해 "1961년 전반기만 하더라도 일본 정부 내에서조차 한국정부가 강하게 나오면 그 돈을 돌려주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다가 5·16쿠데타로 한국정치 상황이 바뀌니까 '잘 얘기하면 값싸게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한일협정 체결 직후 일본이 국내법으로 한국인의 채권행사를 일체 못하도록 만들어 버려, 그 법이 존재하는 한 그 돈은 못 찾는다고 봐야 한다"며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일본의 정부 및 동원 주체 기업들이 도의적 차원에서 기금을 조성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한국정부나 포스코 같은 청구권 자금 수혜기업들도 그 예외는 아니다"며 "우선 이번 자료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태도 표명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 이번 자료에 의미부여를 한다면 어떤 것인가?
"가장 큰 것은 개별기업의 미불임금 액수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물론 공탁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도 상당수 있지만 기업의 미불임금 규모나 전체 미불임금 총액이 얼마나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 군인군속 미불금 자료는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분석한 바 있는데, 노무동원 미불금은 아직 자료가 없었다."

- 공탁금 관련 자료로는 처음인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 측에 요구해 받은 자료 중에 일부 기업의 미불임금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기업에 한한 것이었다. 이번 공탁금 자료로 보면 1950년 당시 2억 4천만엔 정도의 미불임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당시 이는 상당한 돈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1950년 당시로 공탁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후에도 공탁이 계속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체 규모는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대부분 누락... 신고 안한 기업 많아"

일본 기타큐슈 외곽에 위치한 영생원에 모셔져 있는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무연고 유골. 해방 60년이 되도록 혼백마저 이국을 헤매고 있다.
 일본 기타큐슈 외곽에 위치한 영생원에 모셔져 있는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무연고 유골. 해방 60년이 되도록 혼백마저 이국을 헤매고 있다.
ⓒ 이국언

관련사진보기


- 왜 그렇게 됐나?
"군인, 군속 같은 경우 최종 사망을 확인하는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됐는데, 사망확인이 늦어지게 된 경우 공탁에 시차가 조금씩 있었다.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도 많다."

- 이번 자료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하나? 공탁에 빠진 기업들도 많은가?
"그렇다. 우선 대기업이 상당수 다 빠져 있다. 미쯔이나 미쯔비시 계열 탄광기업 중에서도 신고한 곳이 있고, 안한 곳도 있다. 어둠 속에 사라진 돈을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본다. 당시 후생성의 조사 목적은 조선인 노동자를 몇 명이나 썼고, 현재 미불금이 있으면 같이 신고해라 하는 정도여서, 사실 신고 안한 곳도 많을 것으로 본다."

- 누락된 기업들을 감안하더라도 2억 4천만엔 정도인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2억4천만엔은 1945년 해방 당시의 금액을 말한다. 그 후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시점에서 물가인상 등을 환산해도 큰돈인데, 지금이야 가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 당시 임금을 제대로 다 받지 못했나?
"노무동원의 경우 도망 못 가게 하려고 겨우 밥값, 담뱃값 정도만 주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강제로 저금을 시켰다. 전시중이라 일본 자체적으로 돈을 융통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또 돈을 다 줘 버리면 도망쳐 버리니까 탈주를 막기 위한 방편도 있었다. 저금을 한다지만 정작 본인 자신이 그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극소수였을 것이라 본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상황에서 감히 임금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는 거의 굶겨가다시피 하며 전쟁에 동원시킬 때라 육체노동자들은 그만큼 더 힘들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는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밀린 임금 돌려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겨우 차비나 받고 돌아오다시피 했다."

한국에 돌려주려던 일본, 5.16쿠데타 이후 돌변

일본 외무성이 문서공개 소송에 따라 마지못해 지난해 공개한 1965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 자료. 그러나 한일간 민감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먹칠을 한 채 자료를 내 놓아 또 한번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문서공개 소송에 따라 마지못해 지난해 공개한 1965년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 자료. 그러나 한일간 민감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먹칠을 한 채 자료를 내 놓아 또 한번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 이국언

관련사진보기

- 왜 공탁을 하게 됐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아마 일본정부가 국교 교섭 시에 분명히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올 것이어서 나름대로 준비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직간접적인 압력에 의해 한일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이 시작된 것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다음해인 1952년이었다."

- 정작 회담과정에서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 됐나?
"이 대목에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간의 교섭의 기술 차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이미 자기들이 다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있으면서,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때까지 이 사실을 숨겨왔다. 굳이 자기들이 먼저 내보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공개된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 자료에 의하면 1961년 전반기만 하더라도 일본 정부 내에서조차 그 총액을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한국정부가 강하게 나오면 그 돈을 돌려주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1961년 5.16쿠데타로 한국정치 상황이 바뀌니까 '잘 얘기하면 값싸게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협상한 것이다.

미국도 당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면서 한국과 일본 간에 국교정상화가 빨리 이뤄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1965년 접어들면서 이미 김종필-오히라 비밀회담에서 정했듯이 사실 수면 아래에서는 이미 무상 3억, 유상 2억불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막상 협상 과정에서는 오히려 강제연행자에 대한 증거가 있으면 한국정부에서 먼저 제시해 보라고 하면서 큰 소리까지 친 것이다. 결국 한일협정 문서에 배상이나 보상이라는 글자 한 구절도 없었지 않는가. 협정의 전문에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 "양국의 경제협력을 증진"이라고 했지만 일본정부는 사실 '독립축하금'이라고 하지 않았나."

채권 소멸시킨 일본 국내법 있는 한 쉽지 않아

- 막대한 금액인데,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겠나?
"쉽지 않은 게 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그 후 국내법으로 개인 채권행사를 일체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버렸다. 그 법이 존재하는 한 그 돈은 못 찾는다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재판이 모두 그 법 때문에 진 것 아닌가. 우선 개인 청구권 권리는 행사할 수 있다는 법적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국가 간의 협정으로 국내법을 만들어 개인이 받아야 할 돈까지 받지 못하도록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그건 상식적으로 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문제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입장이지, 일본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도의적 차원, 기금 조성해 해결책 찾아야

누구를 위한 한일협정이었나. 일제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이 경제협력 자금 명목으로 대일 청구권 문제를 포기한 정부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한일협정이었나. 일제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이 경제협력 자금 명목으로 대일 청구권 문제를 포기한 정부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관련사진보기


- 한일 간의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필요한 것 아닌가?
"피해자들에게 그 돈을 다 돌려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다. 신고를 안 한 기업이 많고, 자료를 폐기하거나 도중에 공중분해 된 기업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정부와 일본의 전범기업들이 도의적 차원에서 기금을 조성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국정부나 현재 재판을 벌이고 있는 포스코 같은 청구권 자금 수혜기업들도 그 예외는 아니다."

- 지금 우리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우선 이번 자료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태도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친구가 되려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책임을 묻고 언질을 받고 난 연후에 더 친하게 지내자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은 전혀 묻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러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사실은 직접 피해를 입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이지 않는가."


태그:#강제동원, #징용, #대일 청구권, #한일협정, #한일회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