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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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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를 위해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민족사와 민주주의의 숨 막히는 위기 속에서의 명료한 정치적 결단의 상징이었다. 80년대 망월동에서의 사무치는 통곡과 '내 몸의 반쪽이 무너졌다'고 말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의 통곡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다"-한국작가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함' 성명 몇 토막

우리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 김대중 전 대통령. 그 분이 서거한 18일(화) 오후부터 밥을 먹지 않았다. 이빨도 닦지 않았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세수도 하지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때에 당한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그런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나가 오래 앉아 있다가 종로 낙원상가 돼지골목으로 가 막걸리를 밤새 퍼 마시며 혼잣말을 수없이 지껄였다. '바보 노무현 형님도 가시고, 이제 우리 민족의 등대였던 애비까지 잃었으니 이제 누구를 바라보며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건단 말인가'라고.       

19일(수) 오후 3시에는 그 분 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을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김영현) 조문단과 함께 찾았다. 1층까지 길게 이어진 조문객들 사이에 끼여 1시간 가량 기다려 조문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조문단 일행들과 병원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소주를 마셨다.

시인 홍일선, 이승철, 모윤태, 김규철 등은 소주를 마시며 한결같이 말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말문이 닫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그 식당에 있는 TV에서는 그분 서거보다 나로호 발사에 따른 생중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가 막혔다. 그날 저녁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작가회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애도 특별성명이 나왔다.  

길거리에 내걸린 김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
▲ 김대중 전 대통령 길거리에 내걸린 김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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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세브란스에 내걸린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
▲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세대 세브란스에 내걸린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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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스 신, 세계적인 정치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전 생애 동안 엄청난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세상'을 염원, 실천한 분이셨다. 엄혹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인생의 사표로 추앙받았다"-'<한국문학평화포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애도 특별성명' 몇 토막

진보적 문화예술단체 <한국문학평화포럼>과 <한국작가회의>(옛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19일(수) 저녁,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특별 애도성명을 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보다 하루 빨리 나온 성명이다. 이들 단체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자 한민족의 위대한 선각자"라고 평가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한다'는 제목을 단 성명에서 "평생을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발전, 분단체제 극복과 민족의 상생과 평화통일, 사회적 약자보호와 인권옹호, 이 땅의 문화발전을 위해 온갖 고초와 시련을 겪으면서도 불퇴전의 용기를 갖고 헌신한 분이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서거 앞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비탄과 애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다름 아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일컫는 대명사였다"라며 "그분은 격동과 시련의 한국 최현대사를 온몸으로 맞받아치며, 5차례 죽음의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 그리고 55차례의 가택연금과 2차례에 걸친 10년간의 망명생활 속에서도 불퇴전의 용기를 갖고, 절망을 모르는 시지프스 신처럼 역사에의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삶을 최후의 그 순간까지 감행한 세계적인 정치지도자였다"고 적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체의 정치보복을 반대하는 비폭력주의 평화운동가, 그리고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된 이 땅의 민주투사"라며 "그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오직 국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치적 삶을 이룩한 민주주의의 위대한 실천가"라고 썼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
▲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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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서명하고 있는 조문객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서명하고 있는 조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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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어를 비범한 시적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

<한국문학평화포럼>보다 3시간 가량 늦게 성명을 발표한 <한국작가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함'이라는 제목을 단 성명에서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이 서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통한 서거를 목격한 지 87일째 되는 날이었다"라며 "고인의 죽음을 접한 우리 문학인들은 애통함에 말길이 끊어진다"고 밝혔다.

<한국작가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으며, 분단된 민족사의 혈로를 뚫었고, 인권과 평화에 대한 투철한 신념은 물론 행동하는 양심의 중요성을 영면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역설했던 정치인이자 비판적 지식인이었고, 정치의 언어를 비범한 시적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이어 "고인의 서거 앞에서 애도의 수사는 높고 슬픔의 몸부림은 깊다. 그러나 애도에 함몰되는 것은 고인의 유지를 계승하는 것으로 흡족하지 않다" 라며 "애도는 깊되 고인이 쉰 목소리로, 피맺힌 심정으로 죽음 직전까지 말했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단말마의 선언을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고 적었다.

<한국작가회의>는 또 "그 피맺힌 선언이 고인의 죽음을 앞당긴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라며 "오늘의 비상한 시국상황 속에서 우리가 다시금 결심하게 되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있는 시민들이 단지 짜디짠 눈물을 뿌리는 것만으로 산 자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명백한 다짐이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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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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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생님이라 불러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분

"살아 계실 때 그분을 가까이 모시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안타깝다. 원칙과 명분을 중시했던 그 분을 더 훌륭한 대통령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 분은 현실정치인이자 재야시민운동의 구심체였으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다"- 한국문학예술인총연합 임진택(연극연출가, 국악인) 부회장

문학예술인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큰 충격과 깊은 슬픔에 휩싸였다. 19~20일(목) 이틀 동안 전화통화 혹은 직접 만난 문학예술인들 대부분은 "할 말을 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셔서 그런지 말문이 닫히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하도 훌륭하게 사신 분이라서 더 이상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라며 "그분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늘 우리 민중들 삶과 같은 길을 걸어왔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 불러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분이며, 그 분의 삶은 민주화에 민족통일에 맞춰져 있었다"고 평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로시인 임수생은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래야 그분의 업적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이명박 정부 봐라. 세상에, 한 해에 두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이게 무슨 정부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조사를 하고, 여러 국가에서 애도하고, 북한에서 조문단까지 파견하는 것을 보면 그 분은 전 세계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청 앞 광장
▲ 김대중 전 대통령 서울시청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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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문학, 언론은 한몸이다"

"그분은 70년대 박정희와 맞대결한 대선후보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민주화운동만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이미 70년대부터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고, 남북통일을 위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분은 일관된 정책으로 수평적 정권을 이끌어가는 인물이었다. 그분은 남북을 아우르는 민족지도자였으며, 이러한 지도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두 분뿐이었다"-임효림 스님(시인,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

시인이자 언론인 윤재걸은 "그분은 캄캄한 시대 우리에게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주었다"며 "한때 내가 정치에 몸담았던 것은 정치와 문학, 언론은 한몸이라는 것을 그분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도 정치를 통해서만이 모순된 한국 현실을 극복하고 타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정목일(수필가)은 "18일 서거하신 그분은 전 국민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에 국민들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며 "고인의 뜻은 남북통일과 평화를 위해 한몫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서거로 인해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디딤돌이 마련되었다. 온 국민이 그분을 추모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한국문학평화포럼> 홍일선(시인) 수석부회장은 "김대중 선생이 실천했던 인권신장, 민족통일, 민족화해를 위한 간절한 소망들이 작가들의 꿈이 아니겠느냐"라며 "그런 뜻에서 작가들, 특히 시인들은 김 전 대통령을 피붙이로 느끼고 살았다. 그분의 서거는 그 어떤 죽음보다도 무겁고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 분이 있어야 북한과 미국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었는데...

"비록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우리 곁을 황망히 떠나가셨지만 그분이 타계 직전까지 우리에게 강조하고, 유언으로 남긴 이 땅의 민주회복과 한반도의 상생평화, 민생 및 인권확장이라는 화두는 우리 모두에게 미완의 숙제로 남겨졌다... 그분은 우리 판소리 중 춘향가를 가장 좋아했다. 시를 쓰기도 했던 그분은 모든 예술을 가슴 속에 맺힌 한풀이로 여겼다."-이승철(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작가 박도는 "내가 김홍걸 군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3월이었다. 그 뒤 그의 아버지(김대중)는 사형수가 되었다"라며 "그때 나는 학교 교지 편집지도 교사였는데, 1981년 가을 교내 문예현상 모집을 했다. 그때 홍걸이가 응모를 했고, 나는 그에게 장원을 주었다. 그 인연으로 나는 김 전 대통령을 몇 차례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의 정치철학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시인 김창규(목사)는 "이런 어려운 시대에 그분이 돌아가셔서 안타깝고 슬프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100일이 채 지나지도 않은 때에 돌아가셔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나는 지난 97년 대선 때 시인이자 목사 신분으로 그분 선거운동원을 했다. 이제 우리 문학예술인과 종교인들 모두가 그분 뜻을 잘 헤아려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인 이적(목사)은 "그분이 있어야 경색된 남북관계도 쉬이 풀리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었는데…"라며 "그분의 영향력은 북한에서 절대적이다. 오래 살아 있어야 했는데…. 이제 진보진영의 남북통일을 향한 영향력이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문학예술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그날 글쓴이도 휴대폰 메모란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렇게 가시나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만나셨나요 / 님께서 심어놓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세계평화 / 너무 걱정 마세요 / 살아 남은 저희들이 잘 키워낼게요 / 님께서 저승에서 지켜주시니 / 저희들도 걱정하지 않아요"라고.




태그:#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문학예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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