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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6일 국장'으로 결정됐다. 정부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국장'으로 예우하기로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국민통합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며 미래지향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국장의 최대허용일인 9일장을 치름으로써 더 많은 국민들과 해외 지도자들이 애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식을 보느냐 내용을 보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국장'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지만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장례기간은 세계적으로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고, 더구나 김 전 대통령의 유족들도 어려운 국가 경제 상황과 국민통합을 고려해 6일장을 수용했다고 하니 그 판단 또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보수세력 일각에서 김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에 흠집 내기를 시도하려는 현실적인 움직임도 있는 상황에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나름대로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 또한 평가할 만한 일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먼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국장을 건의했어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지도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현 정부도 그런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나는 이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결코 야박하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단순한 장례형식을 뛰어넘는 역사 해석의 문제

 

이번의 경우는 단순히 국장인지 국민장인지 한 전직 대통령의 장례형식을 가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지난 한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앞으로 우리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를 정하는 중요한 합의 과정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지난 이틀 동안 이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을 유심히 지켜본 이유다.

 

우리 법은 "대통령의 직에 있었던 자"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자"에 대해 국장 또는 국민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만 국장을 치렀을 뿐이니, 현직이냐 전직이냐를 기준으로 '국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관례라는 주장은 처음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공훈' 여부에 대한 국민적 판단인 것이다. 나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추구해 온 역사적 3대 가치는 민주주의와 통일, 경제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통해 통일로 가는 문을 열었으며,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정책과 정치적 노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있어서는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 그동안 보수세력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훈'을 들어 산업화의 상징으로 추앙해 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는데, 김 전 대통령을 마땅히 예우하지 않는다면 상식과 균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장'을 뛰어넘는 최초의 '민족장'

 

현 정부가 만약 정치적 이유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장을 거부했다면, 장례 과정뿐 아니라 장례 이후에 상당한 국론분열과 정치적 후유증을 남겼을 것이다. 정권을 잡았다고 전직 대통령의 객관적인 업적과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 상대방의 마음의 한과 상처는 오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이번 결정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을 박 전 대통령이 묻힌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정한 것도 잘한 일이다. 해방 이후 파란만장했던 한 시대를 이끌었던 두 지도자가 한 곳에 나란히 안장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다. 아울러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선의의 경쟁, 나아가 국민통합의 상징적 의미도 갖게 될 것이다.

 

더욱 뜻깊은 일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애도의 뜻을 담은 조전을 보낸 데 이어 조문단을 특사로 파견한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조문단 파견은 인도적 차원으로 보나, 남북화해 협력에 기여한 김 전 대통령의 공로로 보나 당연한 조처라 할 수 있다. 이로써 김 전 대통령의 23일 장례식은 남북한 최초의 '민족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게 되었다.

 

북한이 남한의 전·현직 대통령의 장례에 조문단을 보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냉전 시대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이미 남과 북은 상대방 국가원수의 서거 때 조전을 보내고 조문단을 파견할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이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김 전 대통령의 공이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장례는 인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정책과 정치적 노선에 대해서는 경쟁하고 비판할 수 있으나, 누구라도 장례를 두고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정치적 논란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수구보수세력들의 언행에 대해서는 또다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찾기 전에 그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에 이어 이번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서도 도가 지나친 발언들을 늘어놓고 있다.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라면, 정말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인정할 것은 깨끗이 인정하고 정책과 대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진보개혁세력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탄압, 재벌중심 경제개발에 대해서는 비판했어도,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것에 대해 비난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이제 국장을 뛰어넘어 최초의 '민족장'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정파적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경건하게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조문에는 정치적 차이나 옛날의 사사로운 악연이 있다하더라도 어떠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통령이 바라던 그런 장례식이 아닐까.

 

장례기간 동안, 정치적 논쟁이나 이념적 공방을 자제하는 사려 깊은 자세와 아량이 필요할 때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정적들마저 용서하고 화해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이다. 그 길이 국민통합과 민족통합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




태그:#김대중 서거, #국장, #민족장, #박정희, #국립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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