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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추픽추 정상의 모습
 마추픽추 정상의 모습
ⓒ 엘리아나 세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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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광고가 없는 곳을 찾게 되어 행복하다." 마추픽추에 올라가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그 사람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호텔 방명록에 남겨진 이 글을 보고 감탄한 인물이 있다. 얼마나 감탄했는지 자신의 자서전에 이 방명록 내용을 그대로 남겼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가끔 글을 쓰면서 내 자랑을 슬쩍슬쩍 집어넣기는 해도, 독자들에게 여행기 도입부에 내 이름 알아맞히기 수수께끼를 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유적지를 보면 기껏해야 "야~호"라거나, "와! 멋지다"라는 감탄사급 탄식을 내뱉을 뿐이다. 코카콜라를 보면 반미감정이 일어날 정도로, 미국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하나의 탐험이자 탐사였다. 단순한 관광이나 여행이 아니었다.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대 유적을 찾아나서는 모험 그 자체였다. 여행은 목적지만큼이나 그곳에 이르는 여정이, 여행자의 마음을 더욱 흥분시키기도 한다. 쿠스코를 떠나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이 그랬다.

볼리비아에서 마추픽추를 가려면, 먼저 옛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 쿠스코를 거쳐야 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코파카바나를 거쳐,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페루 푸노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푸노에서 쿠스코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고산지대인데다 비까지 내리니, 날씨는 시베리아의 겨울추위를 방불케 했다.

잠과는 태어날 때부터 연인사이였던 나도, 이날 밤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춥던지 손을 내밀어 잠을 끌어안으려면, 어느새 추위가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나와 잠 사이를 밀쳐냈다. 나는 그 긴 밤 동안 단 한 번도 잠과의 따뜻한 포옹조차 할 수 없었다. 추위의 시샘은 인간의 시샘 못지않았다. 나는 사실 추위하고 사귄 적도 없는데, 왜 나와 잠 사이의 연애를 방해하는지....

 쿠스코의 밤 모습
 쿠스코의 밤 모습
ⓒ 엘리아나 세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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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실존주의는 만난다

해가 뜨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추위가 나를 고드름 미라로 만들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일어났다. 곧바로 나는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포로이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최근 연이은 폭우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난감했다. 이 추운 곳에서 다시 하루를 묵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철도회사에서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한 관광객들을 오얀타이탐보까지 버스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오얀타이탐보 역에서 마추픽추 종착역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까지는 철로가 뚫려 있었다. 나는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아 처음에는 버스 탑승을 거절당했으나, 마지막 순간 자리가 생겨 간신히 버스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아마도 행색이 초라한 아시아 배낭여행객이 불쌍해보였는지, 오얀타이탐보에서 기차표가 있는 지는 보장할 수 없다며, 나를 태워줬다. 비보호좌회전 탑승이다. 버스로 오얀타이탐보까지는 태워주는데, 그 이후부터는 책임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은 원래 태어나는 순간 비보호좌회전의 길을 가야하고, 여행은 출발할 때부터 비보호좌회전의 여정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도 쉽게 말하면, 인간의 삶은 태생적으로 비보호좌회전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비보호좌회전이다'는 말과, 인간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뭐가 다른가. 자기 책임 아래 좌회전하라는 말과, 자기 책임 아래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말은 도긴개긴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사르트르, 키르케고르, 포이어바흐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하고도 만난다. 철학자들은 쉬운 말을 두고 왜 그리 어렵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마추픽추로 가는 우루밤바 강 주변 모습
 마추픽추로 가는 우루밤바 강 주변 모습
ⓒ 엘리아나 세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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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기차와 우루밤바 강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오얀타이탐보에서 기차표를 끊어 마추픽추 종착역으로 가는 길은, 순식간에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하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따라갔듯, 나는 푸른색의 마추픽추 기차를 타고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어릴 적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 때의 설렘과 기대,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묘한 스릴과 쾌감이 느껴졌다.

기차는 역을 떠나자, 안데스 산맥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우루밤바 강과 끝없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기차가 안데스 산맥의 허리를 돌아 강물이 흐르는 계곡 쪽으로 다가가면, 갑자기 강물은 홍수가 되어 기차를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마치 암사자가 수사자의 접근을 경계하듯, 며칠 동안 쏟아진 폭우로 불어난 강물은 기차에게 멀리 가라고 포효까지 해댔다. 안데스 산맥의 강물이 울부짖는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강물의 쓰나미에 놀라 기차가 다시 안데스 산 쪽으로 달아나면, 순식간에 조용해진 강물은 계곡의 굽이굽이를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면 기차를 유혹하고 있었다. 수사자가 달아나면, 암사자가 꼬리를 흔들며 다시 오라고 하는 구애 짓과 안데스 강물의 하는 짓은 너무 닮았다.

강물아, 너의 진짜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와 안데스 산맥의 계곡을 흐르는 우루밤바 강물은 그렇게 서로의 애간장을 태우며,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종착역에 닿았다. 푸른 하늘색을 닮아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 힘차게 달리던 푸른색의 마추픽추 기차도, 갑자기 멈춰버린 잉카문명처럼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에서 힘이 빠지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데스 산맥의 깊은 정글 속으로 가는 이런 기찻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조금만 비가 와도 계곡으로 총집결한 강물이 기차를 한 입에 삼켜버릴 듯 달려들고, 작은 바위덩어리 하나만 굴러도 철길이 막혀버리는데, 마추픽추 기차는 계곡의 강물과 안데스 산맥의 허리 사이를 교묘하게 왔다갔다하며 달리고 있었다.

이런 첩첩산중이니, 그 악랄한 스페인 침략자들도 이곳까지는 들어올 수 없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스페인 침략자들의 기마병들이 가는 길이 아니었다. 기찻길이 생기기 전에는, 오로지 사람의 발길로만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옛날 인디오들이 걸어서 다니던 길이었으나 지금은 트레킹 여행코스로 개발된 '잉카트레일'을 따라, 마추픽추 정상을 걸어서 오르는 세계의 여행자들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쿠스코에서 오얀타이탐보까지는 기차와 버스가 함께 다니지만, 오얀타이탐보에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기찻길이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우루밤바 강을 따라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우루밤바 강을 따라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 페루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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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와 역사의 연금술사들

종착역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산등성이를 마치 뱀이 휘감듯 올라간다. 절벽 같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계단식 밭들이 나타났다. 그 위로 해발 2400m의 높은 고원도시가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책들과 사진,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나의 상상력 속에서 살아 숨 쉬던 마추픽추 정상이 하얀 구름이 걷히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잃어버린 도시', '공중도시', '비밀도시'는 지난 500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추픽추는 말이 없었다. 역사의 패배자는 말이 없는 법인가. 스페인 백인 침략자에게 '문명'의 이름으로, 기독교 포교라는 '성전'의 이름으로, 영토의 개인소유라는 '정착'의 이름으로, 인디오 황인종의 '야만'과 태양신 숭배의 '이교도', 자연의 공동소유인 '유목'은 짓밟혀도 좋은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총, 균, 쇠>에 밀려, 데이비드 데이가 말한 <정복의 법칙>에 따라, 세계는 이렇게 남의 땅을 빼앗는 자들의 역사가 되었다.

패자의 아픈 이야기는 단지 신화나 전설, 민간신앙으로만 물러나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서낭당(성황당)이 있고, 사당이 있고, 무당이 있다. 사대주의자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한 최영 장군과, 간신들의 무고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 장군은 민간신앙에서 살아나고 있다.

정의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는 민중이 살려내는 법이다. 역사는 반전이 있어 대하드라마고, 스릴이 있어 탐정소설이다. 조지프 캠벨은 <신화의 세계>에서 "들어간 것은 족장들이고, 나온 것은 민중이다"고 했다. 모든 신화에서도 궁극적 신화의 주인공은 민중이고, 역사의 영웅은 민중이다.

마추픽추야, 슬퍼하지 마라. 너에게는 우리에게는, 위대한 시인과 소설가, 혁명가들이 있지 않은가. 정의가 패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연금술사들이다. 너를 말발굽으로 짓밟았던 스페인 침략자들을 무도한 학살자로 끌어내리고, 찬란했던 잉카제국의 문명을 역사의 승자로 다시 세우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잉카 민중의 영혼을 달래는 신원굿, 진혼굿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잉카트레일을 따라 마추픽추로 가는 숲속 길
 잉카트레일을 따라 마추픽추로 가는 숲속 길
ⓒ 엘리아나 세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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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와 네루다, 체 게바라, 빅토르 하라

"아메리카여, 나는 헛되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외친 파블로 네루다가, 68년 전 마추픽추에 바친 진혼시가 들려오는 듯 했다. 네루다는 1943년 "오르자 나와 함께, 아메리카의 사랑이여"라고 외치며, 나귀를 타고 마추픽추 정상에 올랐다. "죽은 왕국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고 네루다가 마추픽추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순간, 마추픽추는 남미의 투쟁과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네루다는 "쓸모없는 행동들의 곡창, 불쌍한 사건들의 곡창에서 옥수수처럼 인간의 영혼이 탈곡되었다"고 민중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두들 낙담하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하던 네루다의 탄식은, 마추픽추의 비밀스런 돌 사이에 울부짖음으로, 계단식 밭에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네루다가 마추픽추에 오른 뒤 9년이 지난 1952년, 한 젊은이가 네루다의 <마추픽추 산정>이란 시를 가슴에 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그 젊은이는 "칠레의 시인 네루다처럼 마음을 다져먹은 난, 저 멀리 비춰오는 황혼마저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왔다. … 마추픽추의 언덕에 고여 있는 잉카문명의 흔적들을 보노라면, 네루다가 느낀 감동이 느껴진다"며 마추픽추를 바라보며 네루다를 칭송했다.

"아, 마추픽추, 어느 영국인 여행객의 표현대로 코카콜라 광고가 없어 행복한 곳.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위대한 토착문명이 숨 쉬고 있는 고대의 도시. 정복자들의 침략 속에 숨죽인 영혼들이 석벽과 돌계단 틈에서 여전히 꿈틀대는 곳"이라며, 그는 네루다처럼 시인이 되어갔다. 

여기까지는 그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다음 말을 들어봐야 한다. "실용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편협하가 짝이 없는 북아메리카의 관광객들은 모르지만, 순수한 토착정신을 가진 남아메리카 사람들만이 몰락한 잉카인들의 우수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북아메리카, 즉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제 짐작이 가는가. 이 젊은이는 바로 미래의 혁명가 체 게바라다. 한 영국 여행자가 호텔 방명록에 쓴 "코카콜라 광고가 없는 곳을 찾게 되어 행복하다"는 글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체 게바라는 마추픽추 여행기를 쓴 자신의 노트에 이를 기록해 놓았다. 체 게바라의 마음을 대변했던 것이다.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당시 살해된 칠레 민중가수인 빅토르 하라도, 1972년 마추픽추에 올라 "엄청난 역사에 눈떴다"는 기념으로 기타를 들고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었다. 그의 부인 조안 하라가 대신 쓴 자서전 <빅토르 하라>에는 빅토르 하라가 마추픽추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온 열망과, 자기 민족과 같은 고통을 겪은 그곳 사람들의 엄청난 고통을 봤다"고 했다.

 태양을 묶어두려는 의식을 행하는 마추픽추의 인티와타나 돌
 태양을 묶어두려는 의식을 행하는 마추픽추의 인티와타나 돌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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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돌에 묶으려했던 잉카의 상상력

네루다도, 체 게바라도, 빅토르 하라도 모두 마추픽추에서 남미 아메리카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아메리카 인디오 혁명'의 길로 나섰던 것이다. 마추픽추에 올라, 잉카의 영혼들이 울부짖는 절규를 들어서 일까. 마추픽추는 중남미 혁명가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마추픽추가 잉카 왕궁이든,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이든, 마지막 피난처든, 군사 비밀도시든, 그 도시의 성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잉카의 정신과 영혼이 살아 있는 잉카 문명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추픽추 정상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축물은 동지 때 줄을 달아 태양을 묶으려 했던 인티와타나라는 돌이었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생긴다는 믿음에 따라, 태양을 돌에 매달아 놓은 의식을 치렀다.

세계 어떤 민족이 태양을 돌에 매달겠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적이 있는가. 잉카의 몰락과 함께 잉카인의 이런 초현실적 상상력도 사라졌다. 마추픽추 정상에서 풀을 뜯던 두 마리의 라마가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픽추를 마주보며 우뚝 솟은 '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와이나픽추를 보고 있었다.

체 게바라는 와이나픽추에 올라 마추픽추를 내려다보며, "돌의 어머니여, 콘도르의 잔해여"라는 네루다의 시 <마추픽추 산정>을 큰 소리로 불렀다. 장 코르미에가 지은 <체 게바라 평전>이나, 영화 <모터싸이클다이어리>를 보면 체 게바라가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 감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풀을 뜯어먹고 있는 라마 뒤쪽으로 마추픽추와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
 풀을 뜯어먹고 있는 라마 뒤쪽으로 마추픽추와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
ⓒ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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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 콘도르가 비상할 때

마추픽추 정상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정상 출입구를 나오자, 바로 옆에 뷔페식 식당이 있었다. 마추픽추 정상에 딱 하나 있는 식당이라, 많은 여행자들이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북적거렸다. 식당에서는 5인조 인디오 밴드가 부르는 <엘 콘도르 파사(콘도르는 날아가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디오 밴드의 노래는 빅토르 하라가 마추픽추 정상에서 부르는 '끝나지 않은 노래'였다.

마추픽추 어디에도 잉카를 상징하는 콘도르는 보이지 않았다. 콘도르 날개 모양을 한 돌만이 콘도르 신전으로 남아 있었다. 안데스 산맥을 구름처럼, 이불처럼 덮었다던, 그 많던 콘도르는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마추픽추 뿐 아니라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안데스 산맥 어디서도 콘도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잉카의 몰락과 함께, 인디오의 도피와 함께, 콘도르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행위는 서구백인에 의한 잉카와 마야, 아스텍 등 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의 파괴일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독자적인 문명을 일궈온 인디언(인디오) 문명 전체가 한 대륙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상 한 대륙의 문명 전체가 사라진 적은 없다.

만약 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이 스페인의 침략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면, 세계는 백인의 유럽문명과, 황인종의 아시아 문명, 흑인의 아프리카 문명, 인디오의 아메리카 문명으로 다양한 문명을 꽃피웠을 것이다. 인디오 문명은 르네상스를 맞기도 전에 짓밟혔다.

이제는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되살릴 때다. 올해는 그렇잖아도, 잊혔던 마추픽추를 미국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이 다시 발견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콘도르가 다시 안데스 산맥을 따라 마추픽추 정상으로 비상할 때, 잉카의 부활은 시작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 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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